당분간 주식시장은 큰 상승도, 그렇다고 하락도 하지 않는 상태에 있을 것이다. 8월 중순의 하락을 통해 코스피 3000의 지지력이 다시 한번 입증됐다. 한 달 사이에 외국인이 7조 원 가까이 주식을 내다 팔았고, 주요 매도종목이 시장 영향력이 큰 반도체였지만 3000에서 하락이 막힌 만큼 당장 이 선을 뚫고 내려가긴 힘들다. 마찬가지로 4개월 동안 여러 차례 3300을 뚫기 위한 시도를 했지만 실패해 고점을 넘기도 힘들다.

8월 주가 하락을 통해 분명해진 사실이 몇 개 있다. 우선 선진국 시장의 영향력이 달라졌다. 글로벌 주식시장이 층층이 분리되고 있다. 미국 시장이 가장 잘 오르고, 유럽이 그 다음이며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 시장은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 5~6월까지만 해도 미국 시장이 오를 때 우리시장도 따라서 오르는 형태였지만, 7월 이후는 미국시장이 코스피를 올리지 못하고 주가를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지 않게 묶어 놓은 역할을 하고 있다.

8월에 또 한번의 변화가 일어났다. 미국 시장이 최고치를 경신해도 유럽시장이 소폭 오르는데 그쳤다. 상승 쪽에 속한 지역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인데, 미국 주식시장의 상승이 마냥 계속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

반도체와 IT(정보통신)가 반등 정도의 힘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도 분명해졌다. 반도체 주식이 처음 하락했을 때만 사람들의 기대가 컸었다. 기업 내용이 좋은 우량주의 가격이 갑자기 내려왔기 때문에 좋은 매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주가가 떨어진 것에 비해 8월말의 반등이 크지 않아 반도체에 대한 기대가 약해졌다. 당분간 반도체와 IT주식이 반등 이상의 의미있는 상승을 하긴 힘들다. 우리나라 시가총액의 30%를 차지하는 주식이 이런 상태이니 코스피가 크게 오르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원화 약세로 내수 부진이 심해질 수 있어

코스피가 안정 국면에 들어갔지만 시장의 변동성을 키울 수 있는 요인이 없는 건 아니다. 먼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융정책이다. 8월말 열린 잭슨홀 미팅에서 연준의장이 자신도 연내 유동성 공급을 줄이는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에 찬성했다고 얘기했다. 긴축 시작이 가시권에 들어온 것이다. 테이퍼링 얘기가 연초에서부터 나왔기 때문에 이미 주가에 반영된 게 아닌가 생각할 수 있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과거 미국 주식시장을 보면 긴축 이벤트가 벌어질 때마다 주가가 하락했다 회복하기를 반복했는데 이번에도 비슷한 모양이 되지 않을까 싶다.

환율 부담도 커졌다. 원/달러 환율이 한때 1,180원까지 상승했다. 여러 요인이 원화를 끌어올렸지만 그 중 달러 강세가 가장 큰 역할을 했다. 달러 인덱스가 89에서 두 달 만에 94까지 상승해 단기에 4% 넘는 상승을 기록했다. 4개월 넘게 해당 지수를 89 밑으로 밀어내려다 실패하고 반대로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달러가 추가로 오를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테이퍼링으로 자금 공급을 줄이고, 내년에 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더해져 달러 강세 요인이 더 세졌다. 달러 강세가 원화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상항에 따라서는 원/달러 환율이 1200원을 넘어갈 수도 있다. 그만큼 외국인 매수가 줄어들 수 있다. 국내 경제의 문제는 내수 둔화에 있다. 원화가 추가로 약해지면 원자재 수입 가격이 상승해 제품 가격을 끌어올릴 수 있다. 가뜩이나 좋지 않은 내수에 적신호가 켜진 것이다.

PBR 1.2배 수준…높은 주가 부담 계속

주가 부담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도 관심사다. 주가가 높으면 시장으로 유동성이 들어오지 않는다. 주가가 계속 오르는 상황에서는 다르지만, 지금처럼 주가가 상승한 후 높은 상태에서 머물고 있을 때에는 돈이 들어오기 힘들다. 추가 상승보다 높은 주가가 더 눈에 띄기 때문이다. 이 상태가 되면 주식시장은 현재 들어와 있는 유동성만을 사용해 대처해야 하는데 이 힘이 다할 경우 주가가 하락으로 기울 수 있다.

주식시장이 하락할 때 주가가 얼마나 낮은지를 보여주는 지표로 자주 거론되는 게 주가순자산배율(PBR)이다. 주가가 주당순자산의 몇 배로 거래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로, 회사의 자산은 오랜 시간 축적된 것이기 때문에 변동이 작아 주가 수준을 판단할 때 유용하게 쓰인다.

코스피가 하락해 PBR이 1배 밑으로 내려오면 시장에서는 조만간 하락이 멈추고 상승이 시작될 거라 기대한다. PBR이 1배 밑으로 떨어졌다는 것은 상장된 모든 회사의 문을 닫고 남은 자산을 주주들에게 나눠줘도 지금 주가만큼의 돈을 분배해 줄 수 있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지난 20년간 코스피 PBR은 0.8~1.2배 사이에 있었다. 1.2배를 넘었던 적이 두 번 있는데, 첫 번째가 2007년 금융위기 직전이다. 당시 코스피는 2000을 처음 돌파해 단기 급등의 우려가 제기되고 있었다. 두 번째는 2011년 이다. 금융위기로 급락했던 주가가 2년동안 상승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두 번 모두 PBR이 1.2배를 넘은 후 주가가 빠르고 크게 떨어졌다.

2007년은 1년 후에 금융위기가 발생했고, 2011년은 2200에서 1600까지 한꺼번에 떨어졌다. 현재 코스피 PBR은 1.2배를 조금 넘었다가 다시 하락한 상태다. 주가가 여전히 높기 때문에 당분간 고주가 부담에서 벗어나기는 힘들다.



● 이종우 전 리서치센터장 프로필

이종우 전 리서치센터장은 ▶대우증권 리서치센터 투자전략팀장 ▶한화증권, 교보증권, HMC증권, IM투자증권, IBK투자증권 등 리서치센터장 등을 역임한 한국의 대표적 증권시장 전문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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