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한국 기업 무덤되나

한국의 지난해 중국 메모리반도체 수출은 2018년 대비 29.1% 감소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주간한국 송철호 기자] 국내 대기업들의 중국에 대한 사업이 2016년 이후 크게 위축되고 있다. 중국 매출 자체가 감소한 가운데 현지 법인들의 타격이 특히 컸던 것으로 보인다. 2016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반발로 불거진 경제 보복이 장기화되면서 한국 30개 대기업이 중국에서 거둔 매출이 4년 새 대폭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 큰 문제는 중국 시장에서 인기가 높았던 효자 품목 상당수가 부진한 양상이라는 것이다. 특히 미국과 중국의 무역갈등 격화로 중국 주력 수출 품목인 반도체 등이 큰 피해를 입은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반도체, 배터리 등에서 한미동맹이 강화되고 있어 앞으로도 중국 수출 기업들 입장에서 부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매출액·이익률·시장점유율 하락 등 3중고

국내 30대 대기업의 중국 발생 매출이 최근 4년 간 약 7%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력 수출 품목인 자동차, 스마트폰, 화장품 등의 중국 현지 점유율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 6일 발표한 2016년 이후 ‘중국 투자 한국 법인의 경영실적’ 분석 결과에 따르면 관련 기업은 매출액·이익률·시장점유율 하락 등 3중고를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출 100대 기업 중 중국 매출 공시 30개 대기업의 중국 매출은 지난해 117조 1000억 원으로 2016년 대비 6.9% 감소했다. 전경련은 2018년부터 미국의 대중 무역규제로 화웨이 등 중국 기업의 한국산 메모리반도체 수요가 감소한 것이 매출 감소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실제 한국의 지난해 중국 메모리반도체 수출은 2018년 대비 29.1% 감소했다. 중국 매출이 감소함에 따라 30개 대기업 전체 해외 매출 중 중국 비중은 2016년 25.6%에서 지난해 22.1%로 3.5% 포인트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봉만 전경련 국제협력실장은 “지난해 한국의 중국에 대한 직접투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미국의 중국 기술굴기 차단 조치 등에 따른 대중 비즈니스 리스크 확대로 전년 대비 23.1%나 감소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양국 정부 간 공식·비공식 경제협의체를 활발히 가동해 기업의 당면 중국 비즈니스 애로 해소, 2018년 3월 이후 3년 이상 진행 중인 한중 FTA 서비스·투자 협상의 조속한 타결 등에 힘써야 한다”며 “이를 통해 기업들이 문화콘텐츠, 수소에너지, 바이오 등 신성장 분야에서 새로운 중국 비즈니스 기회를 발굴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한국 전체 중국법인의 매출은 2013년 약 261조 원을 정점으로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전경련은 2018년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에 따른 화웨이 등 중국 기업의 한국 반도체 등에 대한 수요 감소, 현지수요 감소, 경쟁심화 등이 겹쳤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실제로 중국한국상회의 지난 2월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 기업들은 중국 매출 감소 원인으로 ▲현지수요 감소 ▲경쟁심화 등을 꼽았다. 중국법인 매출 부진이 이어지면서 2015년 이후 한국 기업의 중국 신규 법인 및 총인원 역시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같은 기간 한국 기업의 아세안 10개국 신규법인 및 총인원이 꾸준히 증가한 것과 대조를 이룬다.

자동차·스마트폰·화장품 부진으로 수익성 일본 보다 낮아

매출 감소는 수익성에도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전경련 통계 자료에 따르면 한국 전체 중국법인의 영업이익률은 2016년 4.6%에서 2019년 2.1%로 2.5% 포인트 감소한 반면, 일본 전체 중국법인의 영업이익률은 2016년 5.5%에서 2019년 5.3%로 0.2% 포인트 감소하는데 그쳤다.

2016년 이후 한국 중국법인의 수익성이 일본보다 부진한 것은 한국 브랜드 자동차, 스마트폰, 화장품 등 주요 품목의 중국 시장점유율이 계속 감소하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승용차의 중국 점유율은 2016년 7.7%에서 지난해(1~9월) 4.0%로 3.7% 포인트 감소한 반면, 일본 승용차의 중국 점유율은 2016년 15.1%에서 지난해(1~9월) 22.3%로 7.2% 포인트 증가했다.

중국 수입 화장품에서의 한국 점유율도 2016년 27.0%에서 지난해 18.9%로 8.1% 포인트 감소한 반면, 일본 점유율은 2016년 16.8%에서 지난해 24.8%로 8.0% 포인트 증가했다. 또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한국 점유율은 화웨이, 샤오미 등 중국 기업의 파상공세로 2016년 4.9%에서 2019년부터 1% 미만으로 떨어져 존재감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 9일 김·장 법률사무소와 공동으로 ‘최신 글로벌 통상환경의 이해와 대응방안’ 세미나를 열었다. 이번 세미나 발표자들은 한국 기업이 주목해야 할 리스크 5대 요인으로 ▲미국의 대중국 견제 심화 ▲첨단기술 탈동조화 ▲기후변화대응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중국의 반발 등을 꼽았다.

특히 안총기 김·장 법률사무소 고문은 이날 ‘최근 글로벌 통상환경 변화기조’를 주제로 한 발표에서 “최근 세계무역기구(WTO) 중심 다자무역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주의적 중국 견제 정책이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심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안 고문은 이어 “각국의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됨과 동시에 새로운 통상 규범들이 부상하고 있고 글로벌 공급망 복원력의 중요성이 주목받고 있다”면서 “기업들은 중장기적 무역 및 투자의사를 결정할 때 이러한 글로벌 통상환경 변화 기조를 적절히 반영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정훈 김·장 법률사무소 미국 변호사도 이날 ‘바이든 행정부 대외정책 및 서방의 대중국 견제심화’라는 주제로 발표를 했다. 신 변호사는 “트럼프는 중국에 대해 근본적으로 무역 적자에 대한 우려가 컸다”면서 “바이든은 중국을 글로벌 가치 훼손과 규범 위반 국가로 규정하고 가용한 수단을 통해 중국에 대한 우월적 패권 유지에 노력 중”이라고 분석했다.

이처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민주국가들이 연대를 맺어 중국을 적극적으로 견제하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견제의 폭과 질이 훨씬 더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하원 군사위원회가 미국 기밀정보 동맹체인 ‘파이브 아이즈’(Five Eyes)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을 담은 법안을 통과시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앞으로도 한국 기업들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지속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송철호 기자 song@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