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업계 부담 한층 가중…정부 차원 대응 절실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오른쪽)이 지난 5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산업부 국정감사에서 직원과 대화하고 있다. 왼쪽은 박진규 1차관. (사진=국회사진기자단 제공)
[주간한국 송철호 기자] 미국 정부가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에게 자국 투자에 이어 기업 정보 공개까지 요구하고 나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업계의 부담이 한층 가중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또 미국 정부의 이러한 요구에 대해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도 함께 나오고 있다.

이성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5일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산업부 국감에서 “미국이 국방물자생산법(DPA)을 이야기한 것은 기업을 국유화할 수 있다는 뜻까지 내포하는 것으로 배터리 등 다른 산업으로의 전환 가능성도 엄청 크다”며 “만약 반도체를 생산하는 국가가 중국이나 러시아였다면 이럴 수 있었겠나 하는 생각도 든다”고 우려했다.

생산 차질 있는 차량용 반도체 공급망이 타깃

지난달 24일 현지 외신과 업계에 따르면 미국 백악관은 브라이언 디스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과 지나 러몬도 상무부 장관 주관으로 화상 회의를 개최했다. 회의에는 삼성전자를 비롯해 TSMC, 인텔,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제너럴 모터스, 포드, 다임러, BMW 등 주요 글로벌 반도체·IT·완성차 기업들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부는 이 자리에서 반도체 기업들의 기업 정보 공개를 요구했다. 물론 미국 정부가 이번 요구에 대해 글로벌 반도체 공급난의 원인을 파악하려는 취지라고 밝히긴 했지만 협조하지 않으면 제재할 가능성까지 언급해 기업들 입장에서 민감한 기업 정보를 공개할 수도 있는 처지에 빠지게 됐다.

특히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45일 내로 반도체 재고와 주문, 판매 등 공급망 정보를 담은 설문지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미국 정부가 밝힌 것처럼 일단 차량용 반도체 부족 현상의 원인을 파악하고 공급난 사태를 해소하려는 목적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DPA를 근거로 정보 제출을 강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보도도 이어져 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반도체업계의 한 관계자는 “미국 정부의 이번 요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미국 내 자동차 생산에 지속적인 문제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반도체 공급망을 점검하겠다는 차원으로 보인다”며 “특히 정보 제출 기간 45일을 감안하면 생산 기간이 짧은 차량용 반도체 공급망을 타깃으로 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IT 반도체가 주력인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당장 직접적인 영향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면서도 “미국 정부가 구체적으로 어떤 정보를 요구할지에 따라 내부 정보 노출 여부 가능성은 여전히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삼성전자, 초격차 기술 통한 정면승부 예고

전 세계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이 내년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동시에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의 반도체 내재화 움직임까지 포착되고 있어 국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투자 확대가 시급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또 한국자동차산업협회는 원유, 철강, 구리 등의 원자재 부족과 해상운송 수요 급증에 따른 공급 차질 등의 악재도 우려하고 있다.

그럼에도 세계반도체무역통계기구(WSTS)는 하반기 공개한 보고서에서 올해 반도체 시장 예상 매출액이 5272억 23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19.7%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3월 발표한 10.9% 성장률보다 두 배 가까이 상향 조정된 수치다. 또 글로벌 채권운용사인 핌코는 전반적인 반도체 공급 부족이 올해 하반기에는 다소 완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러한 전망 속에 삼성전자의 경우 170억 달러 규모 미국 파운드리 제2공장 부지 선정을 앞두고 있다. IT 반도체가 주력인 삼성전자는 이를 기점으로 차량용 반도체 생산에 대해 부담을 안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에 미국 정부의 반도체 공급망 정보 공개 요구까지 불거지면서 부담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이번 미국 정부의 정보 공개 요구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는 않았다. 오히려 공정기술·라인운영·파운드리 서비스를 한 차원 더 발전시켜 빠르게 성장하는 파운드리 시장에서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는 등 초격차 기술을 통한 정면승부를 예고하고 있다.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최시영 사장은 지난 6일(미국 현지시간) 온라인으로 개최된 ‘삼성 파운드리 포럼 2021’ 기조연설에서 “대규모 투자를 통해 생산 역량을 확대하고 GAA(Gate All Around) 등 첨단 미세공정뿐만 아니라 기존 공정에서도 차별화된 기술 혁신을 이어갈 것”이라며 “코로나19로 인해 급격한 디지털 전환이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고객들의 다양한 아이디어가 칩으로 구현될 수 있도록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도마 위에 오른 韓 정부…‘경제 안보차원’ 접근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번 국감에서는 우리 정부가 한국 기업에 대한 미국 정부의 과도한 요구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왔다. 특히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국감에서 “미국 정부의 깡패 같은 짓인데 우리 정부는 한 마디도 못 하고 있다”며 “동맹국이 경제 주권을 침해하는 과정에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얘기해야 한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문승욱 산업부 장관은 이에 대해 “정부가 손 놓고 있거나 민간 기업에만 맡기고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며 “우리 기업에 불리한 상황이 되지 않도록 필요하면 미국 정부와 적극 협의할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문 장관은 “반도체 등 국가 경제 안보 차원에서 중요한 산업에 대해서는 더 강력하게 지원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실제로 정부는 물가상승 압력과 코로나19 변이로 인한 수급 불안, 국가 간 기술경쟁 심화 등 대내외 불확실성이 계속되는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산업구조 재편과 성장잠재력 확충이라는 중대한 과제를 해결하고 성장 동력을 마련하기 위한 정책 방향을 제시한 바 있다.

향후 정부는 산업대전환을 통해 선도형 경제로 도약하고 반도체 등 국가 경제 안보 차원에서 중요한 산업에 대해서는 ‘국가핵신점략산업 특별법’을 제정해 범국가적으로 더 과감하고 강력한 지원을 추진할 예정이다. 이미 정부는 ‘K반도체 전략’, ‘배터리 발전 전략’ 등을 수립해 첨단기술 경쟁력 강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송철호 기자 song@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