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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호 객원기자 칼럼] 파월 언급으로 가시화되는 인플레이션 공포

  •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유가인상으로 인한 석유류 가격상승과 달걀이나 우유와 같은 식품류 가격상승이 눈에 띈다. 실제로 서울우유는 지난 1일부터 우유 제품 가격을 평균 5.4% 인상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지난달 29일 유럽중앙은행(ECB) 주최 콘퍼런스에서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지금의 인플레이션 현상이 당황스럽고 예상보다 길어질 수 있다고 말해 참석자들을 놀라게 했다. 그동안 연준은 한결같이 지금의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이며 지나가는 비와 같은 것이라고 말해 왔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연준이 애써 인플레이션 현상을 무시한 이유가 시장을 놀라지 않게 하려고 의도적으로 그랬던 것인지 아니면 진정으로 그렇게 생각했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지금의 인플레이션 현상은 뚜렷할 뿐만 아니라 곧 사라질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누구의 눈에도 분명해 보인다.

미국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지난 6월부터 전년 동기 대비 5% 대 중반을 이어가고 있고 8월 생산자물가상승률은 8.3%로 기록적이다. 이러한 현상은 글로벌하게 나타나고 있는데 독일의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1%로 30년 내 최고 수준이며 유로존의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3.4%로 13년 내 가장 높은 수준을 보였다. 중국의 8월 생산자물가도 9.5% 상승해 13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러한 물가상승 기저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훼손, 노동공급 부족, 원자재가격 상승 등 공급 측 요인이 깔려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동남아 등 주요 생산기지의 공장이 봉쇄되고 물류에서도 심각한 체증이 나타나 배들이 항구 근처에서 며칠씩 기다리는 일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 채용공고는 지난 7월 1093만 건을 넘어섰지만 정작 채용건수는 667만 건으로 빈 자리가 수두룩하다. 이러한 노동공급 부족은 그대로 임금상승으로 이어진다. 원자재가격 상승도 심각하다. 미국 서부 테사스산 원유(WTI) 11월 인도분은 지난 6일 77.43달러를 기록했는데 지난해 초 한때 마이너스까지 내려갔던 것을 생각하면 상전벽해의 느낌이다.

수요 측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코로나19로부터 회복되면서 수요가 다시 살아난 것이 근본적인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시장 자체적인 복원이라기보다는 정부의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통한 지원의 영향이 크다.

연준은 매달 1200억 달러의 국채와 모기지채권을 구매하는 데 이에 상응하는 돈이 금융기관 등을 통해 시중에 풀려나간다. 이 자금의 일부는 부동산과 주식 등에 투자돼 자산가격을 끌어올리고 더욱 부자가 된 부유층의 소비로 이어진다. 또 미국 정부는 코로나19 지원금으로 이제까지 무려 5조 2000억 달러를 투입했다. 소비자 주머니에 직접 꽂아주는 막대한 자금은 그대로 수요증대로 나타났다.

이처럼 수요는 느는데 공급이 부족하니 물가가 오르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빨리 해소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동안 기업들은 비용을 줄이기 위해 재고를 최소화하고 글로벌 공급망에 의존해 왔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백신이 집중 접종됨으로써 코로나19가 잡힌다고 하더라도 여타 국가 상황이 호전되지 않으면 글로벌 공급망의 병목현상은 계속될 것이다.

지원금 지급이 중단되면서 노동공급이 늘어날 것으로 예측되나 이 역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서비스업 위주로 노동 수요가 늘어나지만 여전히 델타 바이러스로 인한 코로나19의 공포가 존재하고, 온라인수업으로 인해 여성 노동자의 복귀가 늦어지고 있으며, 임금인상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그 효과가 상쇄되고 있기 때문이다.

원자재가격 상승도 마찬가지이다. 산유국 간 첨예한 이해갈등으로 인해 석유 증산이 쉽게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유럽은 천연가스 가격 상승으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는데 그 주공급자인 러시아는 공급량 증가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호주와의 분쟁과 탄소중립 정책 때문에 석탄 부족을 겪고 있는 중국 상황도 쉽게 개선되기 어렵다.

연준은 인플레이션의 심각성과 지속가능성을 인지하고 이미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 착수를 공언했다. 2023년으로 예정된 금리인상도 내년으로 당겨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지나치게 급속히 통화긴축을 앞당기면 그에 의존하던 자산시장 붕괴를 가져올 수 있다.

연준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지극히 조심스럽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데 인플레이션이 계속되면서 자칫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자극할 수 있다. 사람들 마음속에 인플레이션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 더구나 미국은 상당한 규모의 재정투입을 준비하고 있다. 자칫 ‘물가상승→임금상승→물가상승’이라는 악순환에 빠져 인플레이션이 가속화될 수 있다.

이러한 해외 사정이 한국과 무관할 리가 없다. 우리나라도 지난 4월부터 전년 동기 대비 2% 대 소비자 물가상승률을 유지하고 있고 지난달의 경우에는 2.5%에 이르러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의 경우에는 유가인상으로 인한 석유류 가격상승과 달걀이나 우유와 같은 식품류 가격상승이 눈에 띈다. 모두 소비자 생활에 민감하게 영향을 미치는 품목들이다. 정부는 공공요금 동결을 통해 최대한 물가상승을 억제하려고 하지만 올해 2% 대 소비자물가상승률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2% 대 물가상승을 가지고 뭐 그렇게 호들갑이냐고 반응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나라 소비자물가지수에는 집값이 온전히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소비자물가지수에 포함되는 것은 전월세 가격이지만 집값 변동을 적절히 반영하는 지표는 ‘자가주거비’다. 이는 자가주택을 유지할 때 드는 모든 금융비용을 의미하며 미국에서도 이 지표를 사용하고 있다.

서영경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에 따르면 이를 반영할 경우 소비자물가지수는 3% 대 중반에 이른다고 한다. 이것이 높은 집값 상승에 시달리고 있는 일반 국민에게 더욱 적절한 물가상승률로 느껴질 것이다.

우리나라 실물경기도 썩 좋다고 말하기 어렵다. 통계청이 지난달 30일 발표한 ‘8월 산업활동동향’ 자료를 보면 전월 대비 생산은 0.2%, 소매판매는 0.8%, 설비투자는 5.1% 줄어 생산·소비·투자 3측면에서 모두 하향세를 보이고 있다.

더구나 1800조 원에 이르는 가계부채를 줄이기 위해 금융당국은 대출억제와 금리인상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글로벌한 이유로 인플레이션이 가속화되면 금리는 더욱 올라가고 경제는 더욱 위축될 수 있다.

인플레이션은 이제 부정하기 어려운 현실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세계경제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우리에게 큰 충격을 줄 수 있다. 인플레이션 가속화 또는 더욱 심하게 스태그플레이션이 나타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우리 경제 내부 문제를 하나하나 점검해야 할 시국으로 보인다.

정인호 객원기자 yourinho@naver.com

● 정인호 객원기자 프로필

▲캘리포니아 주립대 데이비스 캠퍼스 경제학 박사 ▲KT경제경영연구소 IT정책연구담당(상무보) ▲KT그룹컨설팅지원실 이사 ▲건국대 경제학과 겸임교수 등을 지낸 경제 및 IT정책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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