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허가·투자·세금 지원으로 경제안보 선봉 맡긴다

변재일 더불어민주당 반도체기술특별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반도체기술특별위원회 제8차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주간한국 송철호 기자] 우리나라 수출의 20%를 차지하면서 9년째 수출 1위를 유지 중인 반도체 산업은 최근 ‘산업의 쌀’이자 ‘전략무기’로 부각되고 있다. 반도체 기술력 확보 경쟁은 민간 중심에서 국가 간 경쟁으로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글로벌 반도체 패권전쟁이 뜨겁다.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세계 각국의 경쟁은 이미 단순한 산업 경쟁 수준을 넘어서는 모습이다.

특히 미국과 중국의 공격적인 반도체 경쟁에서 한국 반도체 산업이 경쟁력을 확보키 위해서는 국내 반도체 제조 인프라 구축을 위한 민·관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이에 국회가 조만간 반도체 특별법을 제정할 것으로 보이고 정부도 국가핵심전략산업 특별법과 관련해 부처들이 머리를 맞대고 있다.

국가 핵심전략산업으로 지정되면 해외이직도 제한

국회는 반도체 특별법 제정을 서두르고 있다. 일단 국민의힘이 지난 6일 조세 감면, 공장 신설 등의 지원책을 담은 ‘반도체 특별법’을 발의한 바 있다. 이 특별법은 첨단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총괄할 심의 기구로 ‘국가첨단산업경쟁력강화위원회’를 국무총리 산하에 설치토록 했다. 위원회 심의를 거쳐 관련 기업에 수도권 내 공장을 신설·증설·이전할 수 있게 하고 국세와 지방세를 감면해주는 내용이 포함됐다.

더불어민주당도 반도체 등 경제 안보와 직결된 핵심 산업에 파격적인 지원을 위한 ‘국가핵심전략산업특별법’을 발의했다. 민주당 반도체기술특별위원회는 지난 15일 제8차 회의에서 당정청이 협의해 온 ‘국가핵심전략산업 경쟁력 강화 및 보호에 관한 특별조치법안’을 확정했다.

이 특별법은 당초 ‘반도체 특별법’으로 논의를 시작했으나 세계무역기구(WTO) 보조금 협정 문제와 추가적인 전략산업 지원 시 유연한 대응 필요성을 감안해 ‘국가전략산업 특별법’으로 범위를 넓혔다. 국가핵심전략기술로 지정되면 투자 관련 인허가와 자금, 세제 등을 패키지로 지원받는다.

변재일 민주당 반도체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이날 회의에서 “핵심 전략산업의 경쟁력 약화는 국가적 위기라는 인식 하에 특별법을 마련했다”며 “송영길 당대표가 직접 대표 발의한 뒤 당론으로 추진해 정기국회 내 통과시키겠다”고 말했다. 이어 “특별법은 부칙을 제외한 총 8개의 장, 49개의 조문으로 만들어졌다”면서 “지원 추진체계, 경쟁력 강화 지원 대책, 기술·인력 보호대책 세 부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번에 발의되는 법안은 정부가 전략산업 육성·보호를 위해 적극 지원을 하되 기업은 기술·전문인력을 보호하는 것을 핵심 내용으로 한다. 또 국무총리 산하의 국가핵심전략산업위원회는 주요 사항을 의결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담당하고 국무총리가 위원장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간사 역할을 맡게 된다.

국가적 운명 건 美·中·日 참고해 정부 지원 더 늘려야

당정청이 협의해 온 국가핵심전략산업특별법이 제정되면 반도체와 배터리 등 국가핵심전략산업에 소속된 전문 인력의 해외 취업이 상당부분 제한될 수 있다. 인력보호를 위해 기업 필요에 따라 전문인력 지정을 신청하면 해외이직 제한, 비밀유출 방지 등을 포함하는 계약체결이 가능토록 해 기업 주도로 전문인력 보호체계가 구축되도록 했다.

국가핵심전략기술을 수출하거나 관련 기업을 인수합병(M&A)할 때 의무적으로 정부의 사전승인도 받도록 했다. 또 국가핵심전략기술 보호기업에 대해 보호구역 설정, 출입허가 운영 등의 의무도 부과했다.

반도체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가핵심전략산업 특별법 추진은 환영할 일이지만 당초 반도체 특별법 제정 취지와는 결이 다른 것으로 보인다”면서 “법안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인프라 비용 지원 부문 규모를 얼마나 확대할 수 있느냐에 따라 이 법안의 실효성이 판가름 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 중국, 일본 등에 비해 한국 정부의 지원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단 미국 정부는 자국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5년간 520억 달러(약 60조 원) 규모 보조금을 지급할 계획이다. 중국은 10년간 1조 위안(180조 원) 규모 투자를 감행한다. 일본은 대만 TSMC 공장을 유치하면서 1조 엔(약 10조 원) 규모 투자액 가운데 절반가량을 지원할 것으로 알려졌다.

양향자 무소속 의원도 지난 5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미국은 반도체 설비투자에 최대 40% 세액공제 혜택을 주고 중국은 1조 위안을 투자해 반도체 자급률 70%를 목표로 하는 등 반도체 산업은 이제 국가 대항전이 되고 있다”며 “하지만 한국은 반도체 산업 성장 걸림돌인 인프라 규제가 상상초월”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향후 국가핵심전략산업 특별법이 구체화되면 그 지원 규모가 달라질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지난 5월 13일 정부가 발표한 ‘K-반도체 전략’만 놓고 보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의 510조 원 이상 대규모 민간투자에 비해 정부의 지원책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부가 지원키로 한 것은 투자세액공제 5배 이상 상향, 1조 원 규모 반도체 등 설비투자 특별자금이 전부다. 세액공제도 시설투자가 아니라 연구개발(R&D)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물론 정부가 반도체와 같은 특정 산업에 대해 집중적으로 특별법을 마련하고 지원할 경우 배터리, 바이오, 미래차 등 다른 신성장 산업이 상대적 차별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목되고 있다. 또 WTO가 특정 산업에 대한 정부 지원을 금지하고 있는 것도 정부로서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특정 산업에 대한 특별법이 전례가 없기 때문에 형평성 논란이 불거지고 WTO도 의식해야 하지만 현재 세계 반도체 시장의 패권 경쟁이 격화되고 공급망이 재편되는 상황에서 반도체 산업에 대해서는 경제 안보적 측면으로 접근할 필요는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형태는 다를 수 있지만 국내에서도 첨단의료복합단지, 에너지융복합단지, 해양클러스터 등과 같이 특정 산업 육성을 위한 특별법 입법 사례가 있다는 것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송철호 기자 song@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