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공급난과 전기·자율주행차 시대 대응 위해 필수

현대자동차그룹이 반도체 내재화를 추진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주간한국 송철호 기자] 전 세계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이 내년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동시에 글로벌 완성차기업들의 반도체 내재화 움직임까지 포착되고 있다. 따라서 국내에서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투자 확대가 시급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상황이다. 미국과 일본은 정부 주도로 파운드리 현지 생산라인 유치 및 완성차와 팹리스(반도체 설계기업)·파운드리 간 협력관계 강화를 적극적으로 추진 중이다.

국내 자동차업계에도 반도체 내재화 움직임이 감지된다. 아직 공식 발표는 없었지만 지난 13일(현시시간) 호세 무뇨스 현대자동차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COO) 겸 북미권역본부장(사장)은 현지 기자들과의 화상 간담회에서 “반도체 제조기업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현대차그룹이 반도체를 직접 생산하기를 원한다”고 언급해 큰 주목을 받기도 했다.

현대모비스, 현대오트론 반도체 사업 부문 인수

현대차그룹의 반도체 내재화와 관련해 가장 유의미한 행보는 현대모비스에서 찾아볼 수 있다. 현대모비스는 차량용 반도체 분야 개발 역량을 확보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그룹사 내 현대오트론의 반도체 사업 부문을 인수했다. 친환경차, 자율주행차 등 미래자동차 분야 기술 우위를 선점하기 위해서는 반도체 기술의 차별적 경쟁력이 필수적이라는 판단에서다.

현대모비스는 이 인수를 통해 차량용 반도체의 전문적인 설계, 개발, 검증 역량을 키워 미래차 전장 분야에서 차별화된 통합 제어 기술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시스템 및 전력 반도체 핵심 기술을 조기에 내재화해 해당 역량을 더욱 고도화하고 차세대 고성능 반도체 분야로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간다는 전략이다.

현대모비스는 기존 차량용 반도체 분야에서 개발 역량을 강화한 후 시스템 반도체, 전력 반도체, 고성능 반도체 개발에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다. 자율주행, 전동화 등 미래차 분야로 갈수록 반도체 성능이 제어기 경쟁력을 좌우하고 이러한 환경에 맞는 반도체 수요가 크게 늘어나기 때문이다.

현대모비스 관계자는 “기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기술 역량에 반도체 개발 자체 역량까지 강화할 것”이라며 “이를 통해 미래차 분야에서 차별화된 기술 경쟁력을 선보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어 “장기화되는 차량용 반도체 수급 부족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반도체 사업 부문 인수에 뛰어들었다”고 덧붙였다.

완성차기업들에게는 반도체 공급난이 아니더라도 전기·자율주행차 시대 대응에 반도체 내재화는 필수인 것으로 보인다. 전기차와 자율주행차의 경우 내연기관차에 비해 5~8배 가량의 반도체가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재 파운드리 기업들이 생산 능력을 늘리고 있지만 공장 증설까지는 2~3년 정도가 소요돼 당장 급증하는 물량을 감당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차량용 반도체 생산라인 미흡 등 한계점 명확

한국자동차연구원이 하반기 들어 발표한 산업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은 내년까지 국내 자동차산업에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된다. 또 마이크로컨트롤유닛(MCU)·고성능 반도체 중심의 대만 TSMC 생산 의존도가 급증해 잠재적 공급망 위험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높은 상황이다. 현대차그룹을 비롯해 글로벌 완성차기업들이 반도체 내재화를 추진하는 이유다.

장홍창 자동차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미국은 인텔이 파운드리 산업에 진출해 포드·제너럴모터스(GM)에 반도체를 공급할 예정”이라며 “추가공정 설립 없이 기존 공정에 차량용 제품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9개월 내 양산이 예상되고 정부는 보조금 및 전방위 협력을 지원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일본 도요타·덴소의 경우도 자동차 반도체기업 르네사스 지분 투자 및 팹리스 합작회사 미라이즈를 설립했고 정부 주도 공동 투자를 통한 TSMC 현지 공장 설립으로 반도체 공급망 위험 관리를 추진하고 있다”면서 “현대차그룹 역시 반도체 내재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정부의 ‘미래차-반도체 연대·협력 협의체’를 통한 수급난 품목 정보 공유에 그치는 등 협업 초기 단계”라고 덧붙였다.

국내에서는 가장 시급한 차량용 반도체 공급을 위해 자동차 전용공정·협력을 통한 국내 파운드리 육성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자동차연구원에 따르면 12인치 웨이퍼 공정이 필요한 고성능 반도체의 경우 삼성전자 외에는 파운드리 공정이 부재해 현대차그룹과 삼성전자의 직접적인 협력 중개와 타 파운드리 기업의 수요 기반을 전략적으로 육성할 필요가 있다.

다만 기존 PC나 모바일용 칩을 생산하던 파운드리 기업들이 차량용 반도체 생산을 위해 라인을 바꾸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차량용 반도체가 PC나 스마트폰용 반도체보다 제조, 품질관리가 훨씬 까다롭지만 수익률은 낮아 사업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차량용 반도체 시장이 아직까지는 전체 반도체 시장의 9% 정도로 규모가 작다는 사실도 극복해야 한다.

자동차업계의 한 관계자는 “한국의 경우 정부 지원과 자동차업계의 반도체 내재화 노력이 이어지고 있지만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파운드리 확대는 아직 미비한 상태”라며 “특히 차량용 반도체 협업 생태계 및 생산라인 미흡 등의 한계점이 명확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가전 대비 국내 차량용 반도체 수요량이 적어 파운드리 기업의 투자·생산 동기가 크지 않기 때문에 인증 및 경쟁력을 구비한 자동차 반도체 전용 파운드리 공정 육성을 위한 정부의 지원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송철호 기자 song@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