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매매 계약 파기 한앤코 책임’ 주장에도 잇단 패소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지난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의 공정거래위원회·한국소비자원·한국공정거래조정원에 대한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의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주간한국 이재형 기자] 홍원식 회장을 비롯한 남양유업의 오너 일가가 불가리스 파동으로 파생한 경영권 위기를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홍 회장의 지분을 요구하며 대치 중인 한앤컴퍼니(한안코) 측이 제기한 가처분 신청이 잇달아 받아들여지면서 위기 국면은 점차 실질적인 제약으로 비화되고 있다. 홍 회장 일가는 제3자에 주식을 양도할 수도, 주주총회에서 의결권도 행사할 수도 없는 이중고에 처했다. 한앤코 측의 주장을 법원이 상당부분 받아들였다는 의미로도 읽혀 향후 지분 매매 청구가 걸린 본안 소송에서도 불리한 국면으로 흐를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남양맨’ 채우려던 홍 회장 주총 카드 결국 무산
남양유업은 29일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신규 사내ㆍ외 이사 선임 안건을 올렸지만 통과시키지 못했다. 남양유업 정관에 따르면 출석 주주의 과반 찬성 및 전체 주식의 4분의 1 이상 의결 시 이사를 선임할 수 있는데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부결됐다.
신규 사내이사 후보로 올라왔던 김승언 남양유업 수석본부장, 정재연 남양유업 세종공장장, 이창원 남양유업 나주공장장 등 남양유업에서 수십년 일한 정통 ‘남양맨’ 인사들이었다. 앞서 지난 27일 법원 가처분에 따라 지분 53.08%를 보유한 홍 회장 등 오너 일가가 의결권 행사가 금지됐다. 법원은 홍 회장과 그의 아내인 이운경 고문, 그리고 손자인 홍승의 군을 상대로 제기된 의결권 행사 금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다. 또한 홍 회장측이 결정을 어기고 의결권을 행사할 경우 100억 원을 한앤코에 지급해야 하는 조건도 부가했다.
가처분을 신청한 한앤코 측은 홍 회장의 영향력이 남아 있는 인물들이 등기이사로 선임될 경우 향후 경영권 이전이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나머지 소액주주들도 인사 계획에 지지를 보이지 않은 가운데 이날 주총은 10여분만에 끝났다.
현재 남양유업 등기이사에는 홍 회장과 어머니 지송죽 씨, 장남 홍진석 상무, 이광범 남양유업 전 대표가 있지만 남양유업의 경영 공백은 장기화될 전망이다. 가처분 결정이 앞으로 주주총회에서도 효력을 가져 향후 회사의 주요 의사 결정 때마다 홍 회장은 제약이 불가피하다. 이 전 대표는 자사 제품인 불가리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예방 효과가 있다고 소개했다가 고발돼 식품표시광고법 위반 혐의로 지난 9월 검찰에 송치돼 조사를 받았다.
당초 매각 결정을 되돌리려던 홍 회장 의도 꺾여
지난 9월 홍 회장이 남양유업 지분을 3107억 원에 한앤코로 넘기는 주식매매계약(SPA)의 결렬을 통보한 지 2달여 기간이 지났다. 지난 4월 불가리스 과장 광고사건 이후 홍 회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사퇴 의사와 함께 경영권을 가족에게 물려주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주가 급등 등 변수가 변심의 계기가 됐다.
홍 회장은 “매수자 측이 계약 체결 후 태도를 바꿔 사전 합의 사항에 대한 이행을 거부했다”며 매각 결렬의 원인을 한앤코 측으로 돌리고 있다. 27일 의결권 가처분 소송에서 홍 회장 측은 ‘백미당 등 주식매매계약에서 외식사업부 매각은 제외’, ‘오너일가에 대한 예우’ 등 선행조건을 확약했음에도 한앤코 측이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홍 회장은 지난 9월에도 한앤코19호유한회사를 상대로 매각계약 해제에 따른 310억원 상당의 배상을 요구하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지난 5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참석해 "주주가치를 높이고 대리점, 종업원 등이 같이 혜택을 보기 위해 (매각을 위한) 제3자를 찾는데 전력을 쏟고 있다"며 개선 의지를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앤코 측에 유리한 행정·사법당국 등의 판단이 잇따라 나오면서 홍 회장의 영향력은 갈수록 축소되고 있다. 앞서 지난 9월 한앤코가 홍 회장을 상대로 제기한 전자등록주식처분금지 가처분 신청 역시 법원이 인용하면서 현재 홍 회장은 지분 매각과 의결권 모두 묶인 처지에 놓여 있다.
한앤코는 법원의 지분 매각 금지 가처분 결정 직후 입장문을 내고 “경영권 주식 매매계약의 해제 여부는 중대한 사안으로서, 8월 31일이 도과해 해제됐다는 홍 회장의 발표는 사실이 아니고 법적으로도 전혀 타당하지 않다”면서 “법원에서도 한앤코의 입장을 받아들여 홍 회장의 지분이 임의로 처분되지 못하도록 가처분 명령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국세청도 홍 회장 일가를 겨냥한 특별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국세청은 지난 27일 남양유업 본사를 방문, 불가리스가 코로나에 효과가 있다고 발표한 후 회사 주가가 폭등했던 점을 비롯해 자금 유용 의혹 등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앤코는 홍 회장이 주식매매계약을 이행할 것을 촉구하는 본안 소송도 진행 중이다. 지금껏 두 차례 가처분 소송에서 법원이 한앤코의 손을 들어주면서 매도인측이 매각이 결렬될 만한 과실을 초래하지 않았으며 주식매매계약이 아직 유효하다는 한앤코 측 입장에 힘이 실리는 모양새다.
유가증권시장 역시 홍 회장 측에 불리한 소식이 나올 때마다 주가가 급등하면서 투자심리가 회복되는 등 홍 회장 측에 불리한 여론이 계속되고 있다. 홍 회장의 의결권 금지 가처분 소식이 알려진 지난 27일 유가증권시장에서 남양유업의 주가는 개장 초부터 상승세로 출발해 전날보다 2.8% 높은 가격인 종가 44만1500원을 기록했다. 남양유업우는 4.7% 급등, 20만원 대를 회복했다. 28일 남양유업 주식은 전일대비 5만3500원(12.12%) 높은 49만5000원으로 거래를 마치며 2거래일 연속 강세를 기록했다.
이재형 기자



이재형 기자 silentroc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