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공급-소비’까지 대규모 투자·수소 동맹 본격화

에쓰오일 공장 전경. 에쓰오일은 자체적으로도 대규모 수소 수요를 확보할 예정이다. (사진=에쓰오일 제공)
[주간한국 송철호 기자] 수소경제는 문재인 정부가 ‘혁신성장을 위한 3대 전략투자 분야’로 선정할 당시만 해도 논란이 꾸준히 제기됐던 것이 사실이다. 심지어 탈원전 정책을 후방지원키 위해 급하게 전시용으로 수소경제를 내세우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커졌다. 하지만 최근 세계 각국에서 탄소중립화가 이슈로 부각되면서 상황이 반전되는 분위기다.

특히 수소 경제 실현을 위해 수소 생산부터 공급, 소비까지 밸류체인 전 분야의 협력이 필수적인 만큼 석유화학업계를 중심으로 기업들이 동맹체를 구성해 시장 선점에 발 빠르게 나서고 있다. 가까운 미래에 현실로 다가올 수소시대를 대비해 기업들이 앞다퉈 시장 주도권 전쟁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수소 ‘밸류체인’ 통합…수소경제 수익화 앞당긴다

수소시대를 맞이하는 석유화학기업들은 각사가 가진 강점을 바탕으로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인프라 구축 분야에 협력하고 각 밸류체인을 통합해 경쟁력 있는 사업모델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를 통해 신사업인 수소 경제의 수익화를 앞당기고 글로벌 시장의 주도권을 선점하겠다는 전략이다.

먼저 롯데케미칼은 수소산업 선진 기술을 선점하고 관련 인프라를 구축키 위해 글로벌 수소 투자 펀드에 약 1억 유로(약 1400억 원)를 투자한다고 지난달 21일 밝혔다. 롯데케미칼이 투자하는 ‘클린 H2 인프라 펀드’는 2017년 다보스포럼에서 발족된 수소경제 글로벌 기업 협의체인 ‘수소 위원회’ 공동 의장사 에어 리퀴드와 회원사 토탈이 공동으로 주도해 만든 펀드다.

약 15억 유로(약 2조 원) 규모의 이 펀드는 전 세계 수소 저장, 유통 인프라, 수소차량 활용 분야와 신재생 에너지를 연계한 수소 생산 등의 프로젝트에 전략적으로 투입될 예정이다. 롯데케미칼은 지난 7월 탄소중립 성장을 달성하고 국내 수소 수요의 30%를 공급한다는 계획을 담은 ‘친환경 수소 성장 로드맵’을 발표하고 다양한 기업들과 협력 관계를 만들어 가고 있다.

SK그룹은 최근 수소 사업에 2025년까지 18조 5000억 원을 투자해 수소 생산, 유통, 공급에 이르는 수소 밸류체인 전 과정을 통합 운영한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SK그룹 수소사업의 주축인 SK E&S도 최근 미국 수소에너지 선도기업 플러그파워와 함께 수도권 내 수소사업 핵심 설비를 대량 생산하는 ‘기가 팩토리&연구개발센터’를 짓는다고 발표했다.

SK이노베이션 석유사업 자회사인 SK에너지는 두산퓨얼셀과 함께 각자 보유한 연료전지 사업역량 및 수소 정제기술·인프라를 활용해 수소충전형 연료전지 활용을 위한 공동 기술 개발 및 사업화에 나서기로 했다고 지난달 28일 밝혔다. 양사는 이번 업무 협약을 통해 수소연료전지를 활용한 친환경 분산 발전 및 수소 충전 거점 확대를 위한 협력을 강화키로 했다.

에쓰오일(S-OIL)은 국내 수소 생태계 조성을 위한 대규모 청정 수소 프로젝트에 참여한다고 지난달 12일 밝혔다. 에쓰오일은 대주주인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와 협력해 사우디에서 생산한 블루 암모니아를 국내에 공급한다. 또 최근 파트너십을 체결한 삼성물산과 국내 발전회사에 청정수소와 암모니아 혼소(mixed firing) 연료를 공급할 예정이다.

유영호 한국자동차연구원 모빌리티산업정책실장은 “수소산업 생태계 경쟁력 제고를 위한 실질적인 수소동맹 구축이 시급하다”며 “특히 수소 기술 선도국과 수소 생산 잠재력이 큰 국가와 공동 연구개발(R&D) 등을 통한 국제협력을 추진해 글로벌 수소 경쟁력을 확보하고 안정적인 수소 공급망을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실제로 국내 주요 기업들의 수소경제 활성화를 위한 행보가 빠른 속도로 구체화되는 모양새다. 가장 규모가 큰 수소동맹은 수소기업협의체 ‘Korea H2 Business Summit’이다. 현대자동차그룹, SK그룹, 포스코그룹, 롯데그룹 등 국내 수소경제를 주도하는 기업들로 구성돼 있다. 지난 9월 8일 킨텍스 제2전시장에서 각 회원사 최고경영자 및 기업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창립 총회를 갖고 공식 출범했다.

여전히 부족한 수소 인프라 극복이 과제

미래 먹거리로 떠오르는 수소경제가 선택이 아닌 필수 요소라는 시각에는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기술적 효율성과 경쟁력 확보 문제, 환경 문제 등 극복해야 할 과제가 많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특히 친환경 에너지로 알려져 있는 수소가 생산 과정에서 추가적인 환경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실제로 전기차 시장이 급부상하면서 수소차 경쟁력에 대한 의문이 더 커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친환경차 판매량은 내수와 수출을 합해 50만 3107대를 기록했다. 친환경차 전체 판매량이 50만 대를 넘어선 것은 지난해가 처음이고 당연히 전기차의 영향이 크다. 순수 전기차와 하이브리드·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가 실적을 크게 끌어올렸다.

반면 전기차와 함께 친환경차의 양대 산맥으로 불리고 있는 수소차 실적은 상당히 저조하다. 내수(5786대)와 수출(995대)을 합해도 7000대에 못 미친다. 게다가 현대차의 순수 전기차 아이오닉5 등이 전 세계적으로 판매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전기차 강자인 테슬라를 비롯해 기존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도 순수 전기차를 대거 출시하고 있기 때문에 전기차와 수소차 격차는 당분간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업계의 한 관계자는 “가장 가까운 일본은 세계 최초로 수소차를 개발했지만 정작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한국이 무리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하지만 중국이 2035년 세계 최대 수소차 시장 중 하나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수소경제는 시간의 문제일 뿐 결국 다가올 미래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기업들도 정부의 정책 기조에만 마냥 의존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현대차그룹도 해외 수소연료전지시스템 생산기지 건립을 본격화하고 수소 생태계 구축을 주도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광저우에 해외 첫 수소연료전지시스템 공장 신축으로 글로벌 시장 공략에 더욱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송철호 기자 song@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