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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가 미래다] 이미지 세탁용 ESG워싱 vs ESG통합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칼럼
  • 파타고니아 직원들이 2019년 9월 21일 서울에서 진행한 기후 위기 행진 모습. 파타고니아는 진정성 있는 ESG를 통해 기업 가치를 제고시켜온 이른바 모범 기업들 중 하나다. (사진=파타고니아 제공)
요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그린워싱(친환경으로 위장한 상품과 서비스) 이슈가 화두다. 기업들이나 금융기관들이 ESG를 MSG(화학 조미료)로 활용하고 있다는 비아냥거림도 나온다. 아마도 ESG는 대의명분이 있고, 소위 ‘간지’가 나는 주제다 보니 워싱의 재료로도 손색없기 때문이 아닐까. 따라서 기업들은 이 ESG를 제대로 실행하기보다는 워싱만으로 그 효과를 극대화하고 싶은 유혹을 떨치기 어렵다.

더군다나 기업들은 평소에도 광고 홍보활동을 통해 기업 이미지와 브랜드 가치를 높이려는 노력을 하는 마당에, ESG야말로 가성비 좋은 기업홍보 및 광고활동 수단이 될 수도 있다. 금융기관들의 경우에는 ESG 붐에 편승한 마케팅 및 상품 판매 기회로 활용하기 위해 자사 ESG 금융상품에 ESG라는 첨가제를 얻어 소비자를 현혹한다.

그럼 어떻게 ESG워싱이 일어나는지 기업 내부로 한번 들어가 보자. 우선 지난해 말부터 국내에서 ESG는 경제 경영 금융의 가장 핫한 이슈들 중 하나였다. 최근 한 기업체 관계자를 만나 보니 올해 들어 언론사 협찬 요청의 절반 이상이 ESG 관련 행사였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그렇다 보니 기업 오너나 최고경영자들은 이런 저런 조찬모임, 세미나, 컨퍼런스에서 ESG를 주제로 하는 강연들을 많이 접하게 된다. 시대 흐름이나 유행하는 담론에 늘 관심을 갖는 기업 대표들은 이를 듣고 회사로 달려온다. 그리고 임원들을 불러 자사의 ESG 경영 도입 및 추진을 급히 지시한다. 이 지시를 받은 임원들은 ESG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담당 부서나 담당자를 정하고 실무자들에게 성과 도출을 요구한다.

ESG 개념부터 실행 프로세스, 전략까지 낯설뿐더러 추가적인 예산이나 인력도 지원받지 못한 상태에서 실무자들은 부랴부랴 경쟁사의 ESG 현황 및 실태부터 조사한다. 언론 검색도 하면서 가장 가성비 높은 ESG 프로그램 내지 액티비티가 무엇일까 고민한다.

그런데 최근 들어 각 회사마다 ESG 위원회 설치가 봇물을 이룬다. ESG 위원회 설치는 추가적인 예산도 필요치 않으니 비용효과적인 정책으로 안성맞춤이다. 최근 한국에서 가장 각광받는 ESG워싱 메뉴가 됐다.

한편 ESG워싱의 또 다른 단골 메뉴 중 기업들이 발간하는 지속가능보고서를 꼽을 수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이 보고서는 호화 장정본으로 인쇄돼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하고 회사의 기업사회 공헌 자랑거리를 담아 워싱의 수단으로 널리 활용됐다.

우선 대다수 국내 기업들의 지속가능 보고서에서는 GRI(Global Reporting Initiatives)가 요구하는 균형성(Balance)의 원칙을 발견하기 어렵다. 즉 균형성이란 정보 공개 시에 ESG 경영의 실패와 성공, 위험과 기회 등을 포괄적으로 담아야 한다는 원칙인데, 국내 기업들의 경우 성공과 기회 측면, 즉 밝은 면만 편향적으로 보고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를 객관적으로 검증(Assurance)해야 할 검증업체들도 대개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식의 검토 의견서를 작성해 준다. 만일 엄격하고 깐깐하게 의견서를 내면 해당 기업과의 다음 연도 거래를 담보할 수 없는 까닭이다.

최근 필자는 한 대기업의 내부 ESG 세미나에 참석한 바 있다. 그러나 계열사 대표들의 ESG 경영 현황 발표를 들으면서 아쉬운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이들 역시도 ‘ESG 경영전략이라 쓰고, ESG 워싱으로 읽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그 이유는 대략 아래와 같다.

우선 전반적으로 ‘What to do’는 매우 야심차고 원대하기까지 했지만, ‘How to do’에서 상대적으로 빈약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로드맵을 제시하고 있었지만,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는 마일스톤(이정표)을 제시하는 곳이 드물었다.

둘째, ESG 경영 추진은 단기적으로 트레이드오프(Trade-off) 성격을 띠는데, 어떤 희생과 비용을 어떤 우선순위로 먼저 부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즉 과연 찐 ESG 경영을 추진하면서 자기자본이익률(ROE)이나 상각전영업이익(EBITDA) 마진율도 함께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은 공허하게 들렸다.

셋째, 미래에 대한 핑크빛 청사진 못지않게, 과거부터 현재까지 ESG 경영(CSR)을 추진과정에서 조직 내에 어떤 장애물들이 있었는지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이 배제돼 있었다. 미래는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라고 했듯이 미래 성공을 위해서는 과거의 패인 분석도 반드시 필요하다.

넷째, ESG 경영으로의 패러다임 시프트에는 반드시 위험과 불확실성이 도사리고 있다. 따라서 시나리오 분석에 근거한 만반의 준비태세가 필요하다. 그런데 그들의 발표에서는 그 불확실성과 위험에 대한 치열한 고민의 흔적보다는 낭만적인 낙관론에 부등호를 더 치고 있는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ESG는 업의 본질에 천착해서 그 업의 본질을 혁신시키는 게임 체인저가 되는 담대한 여정인데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으로서 그러한 통 큰 담대한 내용들이 없었다.

ESG워싱의 역사는 매우 오래다. ESG 발상지라고 할 수 있는 유럽 국가에서도 오래 전부터 그린워싱, CSR워싱이 횡행해 왔고 비판받았다. 이를 막기 위해 유럽 및 북미지역 정부들은 관련 규제와 ESG 정보 공개 확대를 유도해 왔다. 이러한 규제와 정보를 바탕으로 ESG 투자의 저변이 넓어졌고 결과적으로 기업의 ESG도 촉진됐다.

이 과정에서 서구에는 진정성 있는 ESG를 통해 기업 가치를 제고시켜온 이른바 모범 기업들이 존재한다. 예컨대 50여 년 동안 자발적으로 ESG 경영을 추진해온 파타고니아는 소비자들에게 환경 부하 저감을 이유로 자사 제품 소비를 줄여 줄 것을 요청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이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아 매출액이 신장되는 역설이 일어나고 있다.

역시 자발적으로 2039년 탄소 중립을 선언하고, 저탄소 에너지원 개발, 무탄소 제품 개발에 연구개발(R&D) 역량을 고도로 집중하는 유니레버 등이 있다. 이들 ESG 모범 기업들이 각 섹터의 ESG 리더나 전도사 역할을 맡는다. 모쪼록 국내에서도 한국판 파타고니아, 한국판 유니레버의 등장을 기다려 본다. 말의 성찬이 아닌, ESG가 실질적으로 기업 경영에 통합됨으로써 ESG워싱 기업들을 부끄럽게 하는 그런 찐 ESG 기업들 말이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프로필

KAIST 경영대학원 대우교수와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을 역임하고 현재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발전심의위원회 위원과 (사)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6년 연기금을 비롯한 기관 고객사에 ESG 분석과 운용 전략을 자문하는 ESG 전문 리서치 회사 ㈜서스틴베스트를 설립해 대표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형 사회책임투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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