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제외 전반적인 민간 영역, ‘수소 붐’에 합류 못해

김부겸 국무총리가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제4차 수소경제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주간한국 송철호 기자] 국내 수소 생태계 구축이 빨라지고 있다. 환경부, 산업통상자원부, 해양수산부 등의 정부부처와 각 지방자치단체들 중심으로 인프라 구축에 가속이 붙고 있는 상황이다. 산업계에서도 현대자동차그룹, SK그룹, 포스코그룹, 롯데그룹, 한화그룹, GS그룹, 현대중공업그룹, 두산그룹, 효성그룹 등의 대기업을 중심으로 수소경제 활성화를 위한 행보가 구체화되는 모양새다.

이처럼 큰 틀에서 국내 수소 생태계가 구축되면서 세계 수소 시장을 견인하기 위한 준비가 비교적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다만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고 전반적인 민간 영역에서는 이른바 ‘수소 붐’에 합류하지 못하고 수동적으로 따라가기 급급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시장이 아닌 정부가 주도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수소경제, 각 분야 상용화 긴 시간 필요

환경부는 내년 수소차 보급 목표를 올해 대비 87% 증가한 2만 8350대로 설정했다. 수소차 관련 예산도 올해 4416억원에서 8927억원으로 2배 이상 확대했다. 또 2025년까지 전국 226개 시·군·구에 원칙적으로 1기 이상의 수소충전소를 구축하며 2030년에는 주요 도시에서 20분 이내, 2040년에는 15분 이내에 수소충전소 이용이 가능토록 할 계획이다.

산업통상자원부도 지난달 26일 제4차 수소경제위원회에서 ‘제1차 수소경제 이행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이 기본계획에는 ▲국내외 청정수소 생산 주도 ▲빈틈없는 인프라 구축 ▲모든 일상에서 수소활용 ▲생태계 기반 강화 등 4대 추진전략을 바탕으로 15개 과제가 담겨 있다. 충전 인프라는 융복합 충전소 확대 등을 통해 2050년까지 2000기 이상 확보할 계획이다.

실제로 산업부 기본계획 발표가 있던 날 수소에너지네트워크(하이넷)·코하이젠·한국주유소협회·한국LPG산업협회는 ‘친환경 에너지 인프라 전환 및 수소충전소 확산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하이넷과 코하이젠은 주유소와 LPG충전소를 대상으로 적합성을 검토한 후 구축이 가능한 부지에 순차적으로 수소충전소를 구축할 예정이다.

이동헌 대신증권 연구원은 “이번 수소경제 이행 기본계획은 정부가 지난 10월 발표한 ‘수소선도국가 비전’과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달성을 위한 핵심인 청정수소 경제 확산과 가속화의 연장선”이라며 “김부겸 국무총리도 2050년 단일 에너지원으로서 수소가 전체 에너지 소비의 3분의 1을 차지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고 실제로 개발소요는 현 시점부터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각 분야의 상용화는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일단 현대자동차가 넥쏘에 이어 내년 수소전기트럭 엑시언트를 출시하기로 하면서 수소차 시장에서의 입지는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현대차가 국내 완성차업계에서 유일하게 수소전기차를 생산하는 기업이라는 한계도 여전하다. 기아조차 2028년 수소차 라인업을 공개할 것으로 예상돼 당분간 국내에서 수소차 상용화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린수소 생산기술 미흡…신기술 조세지원도 절실

수소는 생산과정의 청정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친환경 에너지라는 명분 속에 정부의 주요 정책으로 수소경제가 채택된 상황에서 수소의 생산과정이 환경 친화적이지 못하다면 모순이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단 우리나라 수소 생태계를 구축하는데 이 부분을 해결하지 못하면 수소경제의 궁극적인 목표 달성의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에너지업계의 한 관계자는 “태양광·풍력 등의 재생에너지로 물을 전기 분해해 만드는 수소를 그린수소라고 부르고, 이 수소만이 생산 과정에서 탄소 배출이 없다”며 “아직까지 우리나라 수소 생산기술 자체가 미흡하고 특히 태양열과 풍력을 사용할 수 있는 자연 여건 또한 상당히 불리한 상황이기 때문에 향후에도 그린수소를 생산하는데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미 미국, 유럽, 일본 등의 선진국들은 그린수소 생산이 상용화 단계에 들어섰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의 ‘수소생산 기술 동향’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진행 중인 94개 그린수소 생산 프로젝트 중 독일이 64건으로 앞서 있고 덴마크(13건), 영국(10건), 프랑스(8건)가 뒤를 잇고 있다. 일본도 20MW 태양광 발전을 연계한 그린수소 생산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국내 기업들 입장에서 탄소중립을 위한 수소경제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는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그린수소와 같은 수소 신기술이 아직 신성장 기술에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탄소중립이 시급한 상황에서 그린수소 같은 신기술이 신성장 기술에 포함되지 않아 조세 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대한상의에 따르면 조세제도를 수립하는데 있어 현장의견을 최대한 수렴하고 주요국 사례를 참고해 기업환경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재설계해 나갈 필요가 있다. 정부가 수소경제로의 전환에 속도를 내면서도 그린수소와 같은 신기술이 신성장 기술에 반영되지 않아 조세지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입장이다.

생산과정의 청정도 확보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제외하더라도 현실적인 극복 과제도 산재해 있다. 분명 정부가 주도하고 지자체들이 수소경제 인프라 구축에 적극적이다. 실제로 각 지역별로 수소충전소를 건립하고 친환경 수소전기차 보급을 서두르며 생태계 형성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접근성이 떨어지는 수소충전소 위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주유소업계의 한 관계자는 “한국주유소협회 등이 협약을 맺고 기존 주유소와 LPG충전소를 수소충전소 부지로 활용하려는 것 같지만 그 적합성을 검토하는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특히 비싼 도심에 용지를 마련하고 주민 반대를 설득해야 하는 이중고 때문에 발목이 잡힐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송철호 기자 song@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