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대 인하대 녹색금융대학원 주임교수 칼럼

BRCC 최고경영자(CEO)인 헤이퍼(오른쪽)는 향후 사회적 기업으로 기업을 자리매김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다. (사진=BRCC 제공)
‘AK-47 자동소총 에스프레소’(AK-47 Espresso Blend). 우리나라 군대에서 자생한 상품명인 군대 버거와 같은 성격의 이름이 아니다. 실제로 이것은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 본사를 둔 Black Rifle Coffee Company(BRCC)의 에스프레소 커피 대표 상품이다. Black Rifle은 미국을 대표하는 반자동 소총 AR-15의 다른 이름이다. 회사명과 커피 상품명에서 느낄 수 있듯이 이 회사는 미국 그린베레 출신 참전용사가 창업한 커피 소매상이다.

이 회사는 미국 커피 시장에서 고가 전략과 시장세분화(market segmentation) 전략에 성공한 대표적 회사로 군인 및 참전용사와 그 가족, 응급 요원(first responders), 운동선수 그리고 총기애호가를 주고객층으로 한다. 일반 대중을 목표 고객으로 하지 않아 시장 규모가 제한된다는 단점도 있으나 시장세분화는 마케팅 전략의 기본 중 하나이며 이 회사는 그 전략을 통해 놀라운 재무적 성과를 달성했다.

창립 이듬해인 2015년에 백만 달러였던 이 회사의 매출액이 지난해 1억6300만달러로 급증했다. 그 중 70%는 온라인 매출이다. BRCC는 최근 확장을 위한 자본조달과 주식 상장을 위해 특수목적인수회사(SPAC)를 통해 SilverBox Engaged Merger Corp.과 합병했다. 전문가들은 현재 BRCC의 기업가치가 17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회사의 최고경영자(CEO)인 에반 헤이퍼(Evan Hafer)는 향후 사회적 기업으로 기업을 자리매김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고 상장을 통해 베네핏 코퍼레이션(Benefit Corporation)으로서 법적 지위 취득이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투자자들이 점점 기업의 사회적 미션에 우선순위를 둠에 따라 많은 스타트업 기업들이 베네핏 기업이 되려고 노력하는 추세다. BRCC와 SPAC은 합병과 상장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일정 부분의 주식을 참전용사를 위한 자선활동에 사용될 RRCC 펀드에 기부하기로 했다.

BRCC가 내세우는 사회적 명분과 목적은 참전용사들의 삶의 질 및 복지 향상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2017년 난민의 국내 유입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하자 이에 반대해 스타벅스가 1만명의 난민을 고용할 것을 선언했다. 그 직후 BRCC의 CEO 헤이퍼는 1만명의 참전용사를 고용할 것을 약속했다. 현재 약 600명의 종업원 중 대략 절반이 참전용사다.

BRCC가 전형적인 보수 성향의 기업이지만 역설적으로 대표적인 진보 성향 기업인 파타고니아와 유사한 점이 있다. 즉, 두 회사 모두 특별한 가치를 지향하는 소비자 그룹에게 소구한다. 파나고니아는 사회적 가치 창출의 일환으로 특히 환경보호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생각한다. 따라서 환경보호 가치를 공유하는 소비자를 목표 고객으로 한다. 반면에 BRCC는 참전용사를 비롯한 군인 가족의 행복과 복지를 위한다는 사회적 명분을 가지고 설립됐다.

뿐만 아니라 앞에서 언급했듯이 두 회사의 경우 특별한 고객층에 주로 소구하는 시장세분화 전략이 성공요인 중 하나다. 이와 관련해 양사 모두 정치적 이슈에 대한 입장을 공공연히 밝힌다. 주요 이해관계자 수요와 요구를 충족시킴으로써 충성고객을 확보하고 가치를 창출해 내는 비즈니스 모델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파타고니아가 대표적 사회적 기업(social enterprise)으로 베네핏 코퍼레이션의 법적 형태를 2012년에 갖췄는데, BRCC도 현재 상장과 함께 베네핏 코퍼레이션의 법적 지위를 획득할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미국 대기업들도 전통적으로 정치와 사회 이슈에 개입하기를 꺼려 왔다. 그러나 미국에서 이해관계자, 특히 소비자의 생각이 바뀌었다. PR 전문 기업 에델만(Edelman) 조사에 의하면 CEO가 사회·정치적 이슈에 대해 입장을 밝혀야 하며 그에 따라 구매 또는 불매운동을 결정할 것이라 밝히는 소비자 비율이 2017년 47%에서 2019년 60%로 증가했다. 오늘날 많은 기업들이 정치·사회 이슈에 관해 기업행동주의(corporate activism)에 나서는 이유다.

동시에 최근 미국 기업들에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가 기업의 목적을 재정의하고 대외적으로 선언함으로써 목적지향기업(purpose-driven enterprise)으로 자리매김하려는 노력이다. 2019년 미국 181개 대기업 CEO들이 BRT(Business Roundtable) 선언에서 주주의 경제적 가치가 아닌 다양한 이해관계자 가치를 균형 있게 추구할 것을 기업의 목적으로 하겠다고 밝힌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이미 목적지향기업으로 잘 알려져 있는 유니레버의 경우 ‘지속가능한 삶을 일상으로’ 만들겠다는 기업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 목적을 구성원들과 공유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자신의 목적 찾기 워크숍 (Discover Your Purpose Workshop)’을 개최한다. 유니레버는 자체 ‘지속가능한 삶 제품’ 포트폴리오의 성과를 측정한 결과 비교제품군에 비해 훨씬 높은 성장을 보였다고 발표했는데 이 사실이 목적지향성의 전략적 이점을 잘 말해준다.

하지만 특정 이해관계자에게 소구하거나 그들의 니즈를 충족시킨다는 것과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수용되는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정치적으로 극단적이고 편향적인 사고와 소비 성향 및 패턴을 가진 소비자들을 겨냥한 마케팅이 전략적으로 성공한다 하더라도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가치를 창출하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BRCC가 참전용사들의 행복과 복지를 위한다는 숭고한 목적은 존중 받아야 하지만 사회적으로 논란이 있는 총기 사용에 대한 지지와 극우적 정치 성향을 보이는 집단을 지지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지속가능한 성공 전략이 될 수 없다.

BRCC 의도와는 상관없이 국회의사당을 난입한 폭도들이 BRCC의 모자를 쓰고 플라스틱 수갑을 들고 있었다든지 ‘BlackLivesMatter’(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 기간 중 두 사람을 살해한 17세 소년이 석방될 때 BRCC 티셔츠를 입고 있었던 사례들은 BRCC가 소비자들에게 사회적 기업이나 목적지향적 기업과는 거리가 멀다는 이미지를 준다.

헤이퍼는 자신이 참전용사 시절보다 나은 삶을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며 당파 정치와 무관하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BRCC의 철학과 성향이 가져오는 사회적 파장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나 목적지향기업이 추구하는 가치는 보편적이어야 한다. 예를 들면, 환경가치, 인권, 성평등, 언론·종교·표현의 자유, 차별금지 등은 사회와 경제 체제와 무관하게 존중받아야 할 보편적인 가치다. 사회가 선진화될수록 기존에 당연시되고 논의가 금지됐던 이슈들이 공론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소비자들은 기업의 CEO에게도 사회적 이슈에 대한 입장을 밝힐 것을 요구한다. 이제 우리 기업들이 기업 목적과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그리고 보편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입장 정리가 필요한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최근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동향과 함께 대두된 DEI(다양성, 형평성, 포용성)와도 밀접한 관계를 가진 이슈다.

김종대 인하대 녹색금융대학원 주임교수(지속가능경영연구소 ESG 센터장)

● 김종대 인하대 녹색금융대학원 주임교수 프로필

현재 인하대 지속가능경영연구소의 ESG 센터장. 국내 최초로 대학원 지속가능경영·녹색금융 전공을 개설해 주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지속가능경영 관련 다수의 논문을 게재했다. 한국환경경영학회 창립인으로서 회장을 역임했고, 국민연금기금 사회책임전문위원과 인천시 녹색성장위원장 등을 지내기도 했다. 대표 저서로는 <책임지고 돈 버는 기업들> 등이 있다.



김종대 인하대 녹색금융대학원 주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