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단체협의회(경단협)는 지난달 26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16개 종합 경제단체와 업종별 단체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2021년 운영위원회’를 개최했다. 운영위에 참석한 경제단체들은 노동이사제 도입 등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사진=경영자총협회 제공)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많은 점에서 상반되는 공약을 내놓고 있지만, 하나에서는 일치한다. 바로 공공부문 노동이사제 도입이다. 물론 표를 의식하는 것이겠지만 보수 후보가 친노동적 공약을 내놓는 것은 이례적이다. 그러자 노동계는 환영을, 경영계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일반인에게는 생소하겠지만 공공부문 노동이사제는 이미 도입돼 있다. 2016년 서울시가 정원이 100명 이상인 13개 산하 투자·출연기관에 노동자 이사를 의무적으로 도입하도록 하는 조례를 제정하면서 출발했다. 현재는 전국적으로 50개가 넘는 공공기관에서 시행되고 있다. 그것을 중앙정부 차원으로 끌어올리려고 하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동이사제 도입을 대선 공약으로 발표했고 100대 국정 과제에 이를 포함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국회에 관련법 개정을 권고하고 있고 민주당은 이와 관련된 입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여전히 논란이 많은 이슈며, 경영계는 이것이 민간부문으로 도입되는 단초가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따라서 이 문제를 좀 더 자세히 짚어볼 필요가 있다.

노동이사제는 국내에서는 낯설지만 의외로 보편적인 제도다. 유럽에서 노동이사제를 도입한 국가는 19개국에 이른다. 1989년 유럽공동체 헌법은 ‘노동자의 정보·협의·참여는 발전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의 기능에 관한 조약 153조f 역시 EU가 ‘공동결정을 포함한 노동자 및 사용자 이해의 대표 및 집단적 방어’ 분야에서 회원국 활동을 지원·보완해야 한다고 명시해 노동이사제를 지지하고 있다.

노동이사제를 최초로 시행했고 모범 사례로 알려진 독일의 경우를 살펴보자. 독일은 이사회 두 개가 존재하는데, 경영이사회와 감독이사회가 그것이다. 경영이사회는 최고경영자(CEO)를 중심으로 일상 경영 이슈를 다루며, 감독이사회는 경영이사진의 경영활동을 감독하고 경영이사 임명권을 갖는다. 노동이사는 감독이사회에만 참여한다.

독일은 500인 이상 기업에 대해 노동이사제를 의무화했고 이사회의 3분의 1 이상을 노동이사로 채우도록 한다. 2000명 이상 기업은 2분의 1이 노동이사다. 그러니까 대기업에 대해 노사간 대등한 권한을 부여한 것이다.

노동이사가 될 수 있는 자격은 만 18세 이상으로 1년 이상 그 기업에 재직하고 있어야 하며 임기는 5년이다. 노조는 노동이사와 협력적 관계를 맺고 있으며, 노동이사로부터 이사회 활동을 정기적으로 보고받는다. 반대로 노조는 노동이사에게 전문교육과 컨설팅을 제공한다.

노동자는 이미 노조를 통해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 이사회까지 참여하면 어떤 좋은 점이 있는 것일까. 우선 노동자 목소리를 직접 경영에 반영할 수 있고 노동자는 경영에 대한 정보를 보다 정확하게 얻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경영진은 노조 눈치를 보게 되고, 자의적인 의사결정을 하기 어려워지며, 경영은 투명하게 이뤄질 것이다.

우리나라는 노사간 갈등이 매우 심각한데 이는 서로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다. 노조는 경영진이 중요한 의사결정 사항을 숨긴다고 의심하며, 경영진은 노조가 사사건건 경영진 결정에 반대한다는 불만을 품고 있다.

정보가 원활하게 소통된다면 이러한 불신은 상당히 줄어들 수 있다. 회사의 곤란한 사정을 노동자에게 보다 정확히 알려줌으로써 협조를 얻을 수도 있다. 의사결정은 좀 더 시간이 걸리겠지만, 일단 결정된 사항은 신속하고 과감하게 집행될 수 있다.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도 방지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사외이사 제도가 잘 작동한다고 보기 어렵다. 사외이사는 거수기 역할을 하고 총수가 마음대로 회사 의사결정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일부 금융지주사의 경우에는 CEO가 우호적인 인사로 이사회를 구성한 다음 몇 번씩 연임해도 이를 막을 제도적 장치가 없다. 노동이사제는 이러한 경영진의 전제에 제동을 걸 수 있을 것이다.

지나치게 주주의 이익을 도모하는 단기적 경영방식도 개선할 수 있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주주가치를 표방하며 자사주 매입과 배당을 늘리고 있는데, 이것은 주주에게는 이익이 되겠지만 회사의 장기적 발전에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다.

더구나 막대한 배당금이 외국인의 손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도 문제다. 노동이사제는 주주뿐 아니라 종업원과 고객 등 모든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골고루 반영하도록 지배구조를 바꾸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물론 단점도 존재한다. 치열한 경쟁에 시달리며, 경영환경 변화에 따라 신속한 의사결정이 필요한 기업에게 노동이사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을 맞이해 대규모 구조조정이 요구되는데도 노조 반대로 차일피일 미루다가 시기를 놓칠 수 있다. 주주 입장에서는 자신의 이익을 침해하는 노동이사의 존재가 눈엣가시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이사제는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실제로 이를 시행하는 국가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는 얘기도 없다. 제도로서 자리 잡으면 그럭저럭 돌아가면서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우리의 경우에도 공공기관에서 일단 시행해봄으로써 문제점을 파악하고 개선방안을 마련하며 제도를 다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노동이사제를 어떻게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우선 노동이사의 전문성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 경영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므로 그에 대한 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고, 중요한 사항에 대응할 수 있도록 노조에서 지원하는 시스템 구축도 필요할 것이다.

노조와의 관계 설정도 중요하다. 자칫하면 경영진 의사를 일방적으로 노조에게 전달하는 통로로 이용될 수도 있고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일종의 중개인처럼 경영진과 노조 입장을 조율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노조에게 중요한 경영사항을 정기적으로 보고하고, 그에 대한 노조 입장을 경영진에게 적절히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이사회 내 노동이사의 수도 중요하다. 너무 적으면 단순한 거수기 역할을 할 우려가 있고 너무 많으면 이사회의 의사결정을 저해할 수 있다. 노동이사의 역할을 어디까지 할지도 생각해볼 영역이다.

지나치게 일상적인 경영활동까지 개입하면 부정적인 효과가 나타날 수 있고 과도하게 역할을 제한하면 효과가 반감될 것이다. 독일처럼 노동이사의 역할을 감독과 이사의 임면에 제한하는 것도 검토해볼 만하다.

노동이사제는 우리처럼 노사간 갈등이 심한 나라에서 도입할 만한 제도다. 부정적인 효과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운영하기 나름이다. 한국형 노동이사제를 잘 만들어 간다면 우리사회의 극심한 양극화 등 사회문제를 해결하는데 중요한 한 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정인호 객원기자

● 정인호 객원기자 프로필

▲캘리포니아 주립대 데이비스 캠퍼스 경제학 박사 ▲KT경제경영연구소 IT정책연구담당(상무보) ▲KT그룹컨설팅지원실 이사 ▲건국대 경제학과 겸임교수 등을 지낸 경제 및 IT정책 전문가



정인호 객원기자 yourinh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