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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호 객원기자 칼럼] 소리 없이 벌어지는 데이터 전쟁…이젠 결단해야

  • 최영진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부위원장이 지난 21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2022년 개인정보위원회 업무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미국과 중국은 사사건건 충돌하고 있지만 데이터 패권을 놓고도 소리 없이 전쟁을 벌이고 있다. 데이터는 빅데이터·인공지능(AI) 등 혁신산업에 필수적인 요소이며, 노동·자본·토지·기술과 더불어 제5의 생산요소로 인정받고 있다.

미국은 2018년 ‘연방 데이터 전략 2020’을 수립해 공공과 민간 영역에서 데이터를 전략적 자산으로 활용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또한 지난 6월 ‘혁신경쟁법’을 통과시켜 데이터의 자유로운 이동을 강화하는 동시에 다른 나라가 자국 데이터에 불법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차단했다.

미국은 이러한 기본적인 전략 하에서 국제 무역에서도 데이터의 통상규범을 쓰려고 시도하고 있다.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 막강한 IT 기업을 등에 업고 무주공산인 데이터 무역 규칙을 자국에 유리하게 제정하려고 하는 것이다.

미국이 요구하는 항목은 5가지다. ▲디지털 무역에 대한 관세 부과 금지 ▲데이터의 국경간 이전 자유화 ▲데이터 서버 현지화 요구 금지 ▲소스코드 공개 요구 금지 ▲소프트웨어와 콘텐츠에 대한 지식재산권 보호가 그것이다.

이것은 자국 IT 기업의 활동을 전 세계인 영역에서 보장해주려고 하는 것이 기본 목적이지만, 다른 의도도 밑에 깔려 있다. 바로 중국을 견제하고 포위하는 것이다. 미국은 이미 ‘클린 네트워크’ 정책을 통해 5G 통신망,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등에서 중국 기업 제품을 배제하고 있는데, 이를 데이터 분야로 확장하려고 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전략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의 ‘국경간 프라이버시규칙’(CBPR) 개정 논의에서도 확인된다. 이 규칙을 따르는 기업에 대해서는 국경간 데이터 이전을 허용하지만, 현재 중국은 CBPR에 가입돼 있지 않다. 미국은 CBPR을 전 세계적으로 확대하자고 제안했는데, 이는 중국을 데이터 시장에서 소외시키겠다는 의도라고 보인다.

아직 베일에 가려져 있는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에서 보다 구체적인 전략이 드러날 것으로 보이지만, 그 내용은 이제까지 밝혀진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싱가포르·뉴질랜드·칠레가 체결한 ‘디지털 무역협정’(DEPA)에 미국이 가입한 다음 이를 확대시키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는데, 이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서 미국이 썼던 방식이다.

이에 대해 중국 입장은 ‘국제적으로 공정하고 차별 없는 데이터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지만, 속으로는 데이터 안보를 강화하는 정책을 차근차근 시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지난 9월에 제정된 ‘데이터 안전법’에서 해외 사업자들의 중국 내 데이터 센터 구축을 의무화함으로써 미국 주장을 정면으로 거스르고 있다.

또한 중국은 자국 내 데이터 생태계 육성에 나서는 동시에 데이터에 대한 국가의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예를 들어 신용평가시스템을 구축하려는 IT 기업에게는 범죄기록이 포함된 공안자료에 접속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된다. AI를 통해 안면인식을 개발하는 기업도 국가의 지원을 받고 있다.

그러나 자국의 데이터가 밖으로 흘러나가는 것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제재하고 있다. 최근 차량공유기업인 디디추싱이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상장 폐지된 것이 그 사례다. 미국 증시에 상장된 외국 기업은 미국 정부의 규제와 감독을 받게 되는데, 이를 통해 중요한 정보가 빠져나갈 것을 우려한 것이다.

이렇게 두 강국이 데이터 분야에서 충돌하는 양상이 빚어지는 가운데, 다른 나라들은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를 놓고 주판알을 튕기고 있다. 유럽연합(EU)의 경우를 보면, 한편으로는 자국의 데이터 산업을 육성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외국 기업의 활동을 제약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짜고 있다.

예를 들어 독일과 프랑스는 공동으로 ‘가이아(GAIA)-X’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는 다양한 분야의 서비스로부터 발생하는 데이터를 하나의 플랫폼으로 모아 공유하도록 함으로써 첨단 IT 산업을 육성하려는 것이다.

그와 함께 개인정보 보호를 명분으로 해 데이터 유출을 통제하며, 독점방지를 이유로 미국의 플랫폼기업을 규제하고 있다. EU는 2018년 5월 ‘일반 데이터 보호 규칙’(GDPR)을 제정해 개인데이터의 처리를 엄격하게 규제하며 이를 위반할 경우 강력히 응징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20년 12월 프랑스 정부는 이용자 동의를 얻지 않고 정보를 수집했다는 이유로 구글에게 1억유로의 벌금을 때린 바 있다.

또한 유럽의회는 ‘디지털시장법안’(DMA)을 통과시켰는데, 이는 온라인플랫폼 대기업의 불공정행위에 대해 사전규제를 강화하는 것이다. 특정 기준을 충족하는 플랫폼 기업을 ‘게이트키퍼’로 지정해 입점 업체의 데이터 유용, 자사 서비스 우대, 최혜국 대우 강요 등을 금지하고 있다. 이것이 미국의 플랫폼 기업에 과녁을 두고 있음은 분명하다.

우리의 입장은 EU와는 다소 다르다. 데이터 활용도를 높여 미래산업을 육성하려는 생각은 같으나 미국 플랫폼 기업의 진입을 막기 위해 개인정보보호법을 사용하지는 않고 있다. 오히려 미래산업 육성이냐 개인정보 보호냐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 실상이다.

우리나라는 개인정보보호법이 매우 강력한데, 예를 들어 개인정보를 마케팅에 활용하려면 사전에 당사자의 허가를 받도록 하는 옵트인(Opt-in) 조치가 그러하다. 이는 데이터를 이용한 AI·빅데이터 산업의 발전을 크게 저해한다.

최근에 데이터산업 활성화와 관련돼 두 가지 조치가 이뤄졌다. 하나는 데이터3법(개인정보보호법·신용정보법·정보통신망법) 개정을 통해 식별할 수 없도록 처리한 개인정보의 경우 사용자 동의 없이 활용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를 통해 데이터의 산업화를 가로막는 큰 장벽 하나를 해체했다.

또 하나는 ‘개인정보 전송요구권’을 도입한 것인데, 이는 본인 정보를 제3자에게 전송할 수 있도록 요구할 수 있는 권리다. 내 데이터에 대해 결정권을 가진다는 것이 명분이지만, 실제로는 개인정보를 산업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다. 마이데이터 사업이 그 예다. 특정 개인이 사전 동의를 클릭하면, 허가를 받은 사업자가 여러 기관이 보유한 개인정보를 모아 맞춤형 서비스를 제안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개인정보보호보다는 산업활성화 쪽으로 한발 더 이동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데이터 무역과 관련해서는 뚜렷한 입장을 밝히고 있지 않다. 예를 들어 데이터의 국경간 이동에 대해서는 원론적인 찬성의 입장이지만, 데이터 서버의 현지화 요구 금지에 대해서는 마땅치 않은 처지다.

그러나 미국이 데이터 무역 규범 수립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면서 압력을 가한다면 조만간 입장을 정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을 기다리기 보다는 선제적으로 글로벌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가는 것이 현명한 태도다. 그러나 그 전에 개인정보와 산업활성화 사이 어디에 균형을 잡을 것인가를 먼저 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소리 없이 벌어지는 데이터 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결단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정인호 객원기자 yourinho@naver.com

● 정인호 객원기자 프로필

▲캘리포니아 주립대 데이비스 캠퍼스 경제학 박사 ▲KT경제경영연구소 IT정책연구담당(상무보) ▲KT그룹컨설팅지원실 이사 ▲건국대 경제학과 겸임교수 등을 지낸 경제 및 IT정책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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