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칼럼

국내에서는 이사회를 장악하고 있는 지배주주가 소수주주들의 이익을 훼손하는 일이 다반사로 발생한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1932년 미국으로 가보자. 당시 미국에서는 ‘기업은 누구를 위해 복무해야 하는가’를 둘러싼 대논쟁이 벌어졌다. 기업법 최고 전문가인 컬럼비아대학의 아돌프 벌과 하버드대학 법학교수인 메릭 도드가 그 논쟁의 당사자들이었다.

아돌프는 기업경영의 목적은 주주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메릭은 주주를 넘어 임직원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소비자에게 양질의 제품과 서비스를 판매하며, 사회에 기여하는 것까지 포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0년쯤 지나 아돌프는 메릭의 주장에 동의하면서 주주 중심 경영은 퇴조하고 이해관계자 중시 경영이 부상하는 듯했다.

하지만 1970년 노벨 경제학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은 뉴욕타임스에 ‘주주들이 기업을 소유하기 때문에 기업의 유일한 목적은 주주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저명한 경제학자인 마이클 젠슨 등은 “주주가 기업의 주인이며, 이사와 경영진은 주주의 대리인”이라고 화답했다.

이후 ‘주주-대리인’ 프레임은 1980~90년대를 관통하며 전 세계 기업과 자본시장으로 퍼져 나갔다. 이 프레임은 경영대학원이나 로스쿨 등을 통해 흡사 전가의 보도처럼 전해졌다. 이 무렵 우리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사태를 겪으며 당시 전 세계를 풍미했었던 주주가치 중심 기업지배구조의 세례를 흠뻑 받았다.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 기업의 맥락과 역사성 등은 고려될 여유조차 없었다.

그렇다면 주로 영미에서 발전된 주주 중심적 기업 지배구조를 한국 자본주의에 투영할 경우 어떤 시사점을 발견할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영미에서 발견되는 기업 지배구조 문제의 양태와 우리의 그것에는 차이점이 있다. 일반화해서 보자면, 영미 기업의 지배구조 문제는 경영에 무관심한 주주들과 사익을 추구하는 이사들 사이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이른바 ‘대리인 문제’다.

반면 국내에서는 이사회를 장악하고 있는 지배주주가 소수주주들의 이익을 훼손하는 일이 다반사로 발생한다.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사건은 그 전형적 사례다. 따라서 국내 기업의 지배구조 문제는 여하히 지배주주와 소수주주 간에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느냐에 달려 있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한 점이 있다. “소수주주들을 과연 일반화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이다. 즉 소수주주들 중에는 국민연금 기금처럼 초대형 장기기금으로 투자대상기업에 대해 높은 지분율을 보유한 주주들도 존재한다. 반면 그 대척점에는 그날 샀다가 그날 파는 데이 트레이더도 주주라는 이름으로 존재한다. 이 양대 주주그룹의 스펙트럼에는 매우 다양한 성격의 주주들이 포진해 있다. 이들의 이름은 동일하게 ‘주주’이지만 그 성격은 완전히 이질적이다.

또한 주주들 중에는 자산 매각, 고배당, 자사주 매입 소각 등을 주장하며 단기 주가 상승을 노리는 투자자도 있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기업성장과 동행하며 보유현금의 연구개발(R&D), 신규사업투자 및 인수 등을 통해 기업의 잠재력 제고와 지속 가능한 성장을 추구하는 그룹도 있다.

한편 주주들 중에는 이해관계자 배분 비용, 회사 명성 및 브랜드 가치 제고, 환경 부하 저감을 위한 과감한 투자를 주장하는 측도 있다. 반면 그 돈으로 차라리 배당을 달라고 주장하는 측도 존재한다. 이들 역시도 완전히 이질적 성격의 주주그룹들이다. 주주 중시주의자들은, 이렇게 다양한 주주라는 존재를 ‘근본적으로 오직 한 가지 관심만을 가진 동질적이며 갈등 없는 집단’으로 쉽게 규정해 버리는 오류를 범한다.

그렇다면 기업은 어느 주주의 장단에 맞춰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업경영은 단기 투자수익을 추구하는 주주의 요구에 응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이들의 주장은 논외로 하는 것이 맞다. 기업경영은 100미터 달리기가 아니라 마라톤 레이스와 다름 아닌 까닭이다. 그 대신 오랜 기간(필자의 견해로는 최소 10년 이상) 기업 성장과 동행하며 인내하는 투자자는 기업의 주인으로서 존중하고 그들의 목소리에는 경청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 한국자본주의도 1930년대 미국처럼 ‘기업은 누구를 위해 복무해야 하는가’라는 근원적인 화두에 대한 모색과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1970년대 이후 영미를 중심으로 발전해 온 ‘주주-대리인’ 프레임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거나, 유럽 대륙국가들의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값싸게 수입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그 대신 한국적 기업발전의 맥락, 역사성, 문화, 기업토양, 규제 틀, 인식수준, 문제점에 맞는 한국적 자본주의와 한국적 기업 지배구조 논의가 전개돼야 한다. 그렇게 본다면 ‘주주-대리인’ 프레임보다는 ‘지배주주-비지배주주’라는 기울어진 운동장의 렌즈로 한국의 지배구조 문제를 풀어야 할 것이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보다는 이해관계자 이익과 주주이익간의 교집합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전개돼야 한다. ‘한국적 민주주의’는 독재로 오염됐지만, ‘한국적 자본주의’, ‘한국적 기업지배구조’ 논의는 21세기 기업경영의 키워드인 ‘환경·사회·지배구조(ESG)’로 꽃피울 것이라고 소망해 본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프로필

KAIST 경영대학원 대우교수와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을 역임하고 현재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발전심의위원회 위원과 (사)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6년 연기금을 비롯한 기관 고객사에 ESG 분석과 운용 전략을 자문하는 ESG 전문 리서치 회사 ㈜서스틴베스트를 설립해 대표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형 사회책임투자> 등이 있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