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 때문에 청약통장 날아간 피해자…“내가 왜 당첨자냐”

서초 래미안 리더스원 단지 전경. (사진=삼성물산 제공)
[주간한국 이재형 기자] 청약시장은 무주택자의 내 집 마련을 위한 최우의 보루이자 희망이다. 과열된 부동산 시장에서 시세보다 저렴한 분양가에 신축 아파트를 장만할 수 있어서다. 하지만 높아진 관심만큼 도처에서 분쟁이 터져나왔다. 일단 당첨될 목적으로 청약을 넣어놓고 조건을 맞추지 못한 ‘부적격 당첨자’들의 아우성이 문제가 되고 있다. 최근에는 한 청약자가 “유주택자인 자신을 당첨시켰다”며 법적 문제를 제기하고 나서면서 시공사가 기묘한 분쟁에 휘말릴 전망이다.
’알쏭달쏭’ 청약제도 부작용으로 황당 피해 발생
최근 분양업계에 따르면 삼성물산은 한 청약자가 접수한 민원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3년 전 분양이 끝난 래미안 신축 아파트 단지의 청약자가 “삼성물산이 당시 나를 당첨시키는 바람에 청약통장이 날아갔다”며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과거 삼성물산의 래미안 아파트에서 편법적 분양 행태로 인해 청약통장이 날아갔는데, 지난해 다른 아파트 분양을 받는 과정에서 뒤늦게 이 사실을 알아 결국 아파트 청약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보통의 경우 부적격 판정을 받아 청약에 실패하면 불만을 제기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번 건은 ‘합격’을 둘러싼 분쟁이 일어났다는 점에서 특이한 사례인 셈이다.
민원인 A씨는 지난 2018년 11월 당시 분양 중이던 서울 서초구의 ‘서초 래미안 리더스원’(옛 서초 우성 1차 아파트)에 1순위 주택청약 신청을 했다. 래미안 리더스원은 총 1317세대 규모의 단지로 232세대가 일반분양으로 공급됐고 A씨는 이중 한 세대에 당첨됐었다.
그런데 서류 검토 결과 A씨가 주택 1채를 보유한 유주택자라는 사실이 확인돼 삼성물산으로부터 ‘부적격’ 통보를 받았다. 서류에서 ▲무주택기간 산정 오류 ▲부양가족 수 산정 오류 ▲재당첨 제한 등 청약 부적격 사유가 발견되면 당첨자에게 확인을 요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당첨자가 일정 기일 내에 부적격 사유가 아니라고 소명하지 않으면 ‘부적격 당첨자’로 최종 판명된다.
A씨의 경우 보유 중인 주택의 전용면적이 60㎡ 이하거나 공시가격이 1억3000만원 이하(수도권 기준. 비수도권은 8000만원 이하)인 경우를 소명하면 무주택자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A씨는 청약을 포기하기로 마음먹고 삼성물산 측에 소명을 하지 않고 넘어갔다. ‘부적격자’로 남으면 당첨이 자동 취소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시공사는 당첨자 명단에서 부적격자를 삭제하고 금융결제원에 보고하는 수순으로 업무를 진행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삼성물산은 A씨의 당첨을 취소하지 않았고 A씨는 당첨자 신분이면서 계약하지 않아 ‘미계약자’로 최종 처리됐다. 문제는 A씨의 청약통장이다. A씨는 12년 동안 납입한 청약통장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당첨자로 최종 결정되면서 졸지에 가입기간과 그에 따른 청약 가점을 모두 날리게 됐다.
“12년간 납입한 청약통장이 나도 모르게 날아갔다”
만약 A씨가 부적격자로 남았다면 수도권 아파트는 1년, 기타 지역은 6개월 동안 청약 재당첨이 제한되는 페널티는 있지만 계좌 부활 신청을 통해 가점은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2년 뒤인 2020년에야 다른 아파트 청약을 신청하면서 청약 가점이 사라진 사실을 알게 됐다는 게 A씨의 입장이다.
A씨는 “부적격 소명을 안 했으면 나는 유주택자이므로 청약이 취소돼야 정상인데 당첨자로 처리했다는 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라며 “삼성물산 측에 당시 기록에 대한 내용증명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A씨는 “삼성물산이 나를 최종 당첨자로 분류했다면 소명기간이 지난 후에, 계약기간 중이라도 (최종 당첨 처리 사실을) 알려줘야 했다”며 “그러나 삼성물산은 문자나 전화, 어떠한 방식으로도 당첨자이니 계약하러 오라는 연락을 일절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삼성물산은 부적격 통보가 곧 부적격자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소명하지 않아도 당첨처리는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부적격 통보는 A씨가 주택이 있고 혹시라도 (무주택자 조건에 부합하지 않아)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알린 것”이라며 “청약자가 소명을 안 했으니까 자동으로 부적격자가 된다는 식의 법은 없다. 부적격 의심을 받았을 때 소명을 안 했다고 당첨을 취소시키면 오히려 당첨권을 침해해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이후 관계기관과 확인을 통해 A씨가 부적격자가 아님을 확인을 했고 청약자가 소명을 하지 않았지만 당첨자로 보는 것이 맞다고 결론을 내렸다”면서 “이후 3차례 걸쳐 전화를 통해 당첨 사실을 알리고 본인 의사를 물었지만 계약을 하지 않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도 입장은 애매하다. 국토부는 A씨가 해당 사건을 서술하며 해석을 요청해 보낸 민원에 “부적격 소명자가 소명을 하지 못했을 때는 적격 당첨자로 보지 못한다”라면서도 “다만 소명 대상자가 소명 통보를 받았음에도 명백하게 주택이 아닌 것으로 인정이 되는 경우에는 당첨자로 보아야 할 것”이라고 답신을 보냈다.

소명하지 않더라도 분양사업자와 정부가 A씨의 보유 주택이 공시가격 1억3000만원 이하 등 기준에 부합하는 해당할 경우 당첨자로 볼 수 있다는 취지로 보인다.

다만 법조문상 이 같은 삼성물산과 정부의 해석은 의아한 구석이 많다.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의 제52조 제3항 따르면 사업주체(분양사 등)는 당첨자가 제출한 서류를 확인하거나 전산검색을 통해 당첨 부적격자로 판정된 사람에게 그 결과를 통보하고 주택 소유 여부를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제출해 소명할 7일 이상의 기간을 제공해야 한다.

아울러 부적격자 당첨자가 소명하지 못하면 당첨자로 간주되지 못하며, 당첨 취소 시 7일 이내에 그 명단을 주택청약업무수행기관(금융결제원 등)에 통보해야 한다(제58조 제1항). 해당 조항은 소명하지 않은 부적격자를 임의로 당첨자로 간주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황보윤 변호사(종합법률사무소 공정)는 “청약통장의 납입 기간 등 청약신청권은 일종의 재산권에 준하는 권리이며 이런 권리가 소멸하는 경우는 제도적으로 좀 더 신중해야 할 것 같다”라며 “따라서 청약 당첨 후 부적격 소명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고 당첨자로 간주한 후 미계약자로 분류해 청약신청권을 소멸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청약시스템, 데이터 등 제각각 작동해 혼선 자초

문재인 정부 이후 청약 규정은 20여회 바뀌면서 이른바 ‘난수표’로 불릴 정도로 복잡해졌다. 오죽하면 삼성물산 분양팀 직원도 지난해 A씨의 민원 제기에 “분양 시점인 2년 전과 현재 법 규정이 계속 바뀌면서 우리도 어떻게 처리하는 게 맞는 건지 정부에 문의해도 국토부마저 애매한 답변을 내놓으니 혼란이 있었다”고 하소연할 정도다. 이처럼 청약 당첨자 자격을 놓고 정부와 기업, 법조계의 해석이 분분하면서 A씨는 마지막으로 법제처에 법령 해석을 요청할 계획이다.

최근 몇 년간 집값이 급등하면서 청약 열기가 달아올랐지만 일선 현장에서 이처럼 청약 자격을 놓고 분쟁은 계속되고 있다.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부동산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부적격으로 당첨 취소된 사례는 11만2500여 건에 달해 전체 당첨자(109만9400여명) 중 10.2%를 차지했다.

이중 자격 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청약가점 오류(71.3%)가 가장 많았고 재당첨 제한(12.9%), 무주택 가구 구성원 중복 청약(5.4%), 특별공급 횟수 제한(4.7%) 등의 순으로 실수가 잦았다.

법령을 해석하는 것도 제각각이지만 정보시스템조차 따로 돌아가는 점도 문제다. 지난해 말에는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당첨자의 소득을 파악하지 못해 무고하게 부적격 통보를 내린 사례가 있었다. 회사원인 남편과 프리랜서인 부인은 신혼부부 특별공급 아파트 청약에서 신청했는데 두 사람의 소득이 맞벌이 소득 기준(555만원) 이하인 월 540만원이라 가점 1점을 받았다.

그런데 SH는 부인 소득이 확인되지 않는다며 외벌이로 판단했다. SH가 소득을 확인하기 위해 사용하는 사회보장정보시스템에서는 부인의 소득이 조회되지 않아서다. 부인 소득을 뺀 외벌이 기준으로는 소득 기준을 초과해 가점을 못 받아 당첨 자격이 안 된다고 통보했다. 부인은 매년 건강보험료와 세금을 납부했고 국세청이 발급해준 증빙 서류를 제출했지만 당시 SH는 결정을 번복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지난해 9월에는 서울 민간브랜드 신혼희망타운인 '강서 금호어울림 퍼스티어'의 청약에서 분양된 348가구 중 30가구 이상이 당첨 무효 또는 부적격 처리를 받아 논란이 됐다. 당첨자 발표일이 일치한 'e편한세상 강일 어반브릿지' 등 민간 분양아파트에 중복 청약한 게 문제였다.

강서 금호어울림 퍼스티어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청약센터에서, e편한세상 강일 어반브릿지는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서 각각 청약을 받았다. 하지만 청약 시스템과 주택 유형 등이 다르다보니 중복 청약을 인지하지 못했던 게 사태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한 분양업계 전문가는 “청약 제도가 올해만 두 번 바뀌었다. 제도 변경과 함께 특별 공급도 다양하고 공공과 민영이 나뉘어져 각각 상품별 청약 자격도 다 달라 복잡하다”며 “거기에다 각 상품별로 어떤 것들은 청약 가점제가 되고 어떤 건 추첨이 되고 어떤 부분은 자산 기준 규제를 받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는 등 제도가 굉장히 복잡하다보니 당국자와 주택공급자 모두 잘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소득이라든지 자산 기준 등 청약 자격과 관련된 정보를 정부가 행정적으로 명확하게 걸러내고 관리할 시스템을 만들어 시장이 혼란을 느끼지 않도록 잘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재형 기자



이재형 기자 silentroc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