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개월만에 붕괴 사고 재발한 HDC현대산업개발

광주시는 HDC 현대산업개발이 시행한 주상복합 고층아파트에서 발생한 붕괴 사고를 계기로 시가 추진하는 사업에서 HDC를 배제한다고 지난 12일 밝혔다. 사진은 실종자 6명이 발생한 광주 서구 화정동 신축 공사 현장의 모습.
[주간한국 이재형 기자] 지난 11일 광주의 한 신축 아파트 공사현장의 1개동 건물에서 절반 높이의 외벽 등이 무너져 내린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사고의 원인으로 콘크리트를 충분히 굳히지 않은 채 공사를 서두른 사실이 지적된다. 특히 시공사인 HDC현대산업개발(현산)은 작년에도 광주에서 건물 붕괴로 사상자를 낳았던 전력이 있어 ‘안전불감증’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높다.

겨울철 콘크리트 양생 부실과 공사일정 압박 의혹 제기

사고가 일어난 화정현대아이파크는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에 위치한 지하 4층~지상 39층, 7개 동, 847가구 규모의 신축 아파트 단지다. 지난 11일 201동의 최상층인 38층부터 23층까지 외벽과 슬래브가 도미노처럼 무너져 내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건물 잔해물이 바닥에 깔리면서 현장에서 근무하던 작업자 1명이 다치고 6명이 실종돼 소방당국이 수색 중이다.

업계에서는 붕괴의 원인으로 콘크리트를 굳히는 ‘양생’ 작업의 불량 가능성을 지적하는 분석이 많다. 시멘트는 물과 만나면 딱딱하게 굳는 경화 작용이 일어나는데, 물이 얼면 부피가 팽창하면서 시멘트에 금이 가거나 깨질 수 있다.

기온이 낮은 동절기 건설 현장에서 양생기간을 평소보다 2~3배 더 부여하는 것도 이런 변수 때문이다. 통상 한 개 층 콘크리트 타설 시 10일 이상 시간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화정동 아이파크는 4∼5일에 한 층씩 레미콘을 타설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콘크리트가 윗층 하중을 견디지 못했고 건물 외벽에 부착된 거푸집이 뜯어져나가면서 대형 붕괴로 이어졌다.

현대산업개발 측은 "201동 타설은 사고 발생일 기준 최소 12일부터 18일까지 충분한 양생기간을 거쳤다"고 주장하며 일각에서 제기하는 부실시공 지적을 반박하고 나섰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두 달 전부터 공사 속도를 높이라는 원청 시공사의 압박이 있었다는 전언이다. 이곳은 2019년 5월 착공해 올해 11월 입주 예정이지만 현재 공정률이 60%에 머물러 서두를 필요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붕괴의 원인이 부실공사로 가닥이 잡힌 가운데 경찰은 수사에 착수했다. 광주경찰청 수사본부는 지난 12일 화정동 현대아이파크 아파트 건설 현장 하청 업체 3곳 사무실에 수사관들을 보내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피해자들이 의혹을 제기하고 나서면서 현대산업개발에 붕괴 책임을 묻는 여론은 거세지고 있다. 실종자 6명의 가족 대표를 맡은 안정호(45) 씨는 지난 13일 사고 현장에서 “작업자들이 앞서 가족들과 통화할 때 일이 많다고 했다. 제 매형도 누나에게 현장이 너무 춥다고 했었다”고 밝혔다.

인테리어업을 겸업하는 안씨는 "동절기에는 물 공사도 거의 안 하고 (많이 추울 때는) 해서도 안 된다“며 ”보통 콘크리트 타설을 완료하고 어느 정도 층고가 올라가면 소방설비와 창호 작업을 하는데 여기는 5층을 지으면서부터 스프링클러와 창호 작업을 함께 했다"고 빠른 공정을 지적했다.

지난해 6월 학동 붕괴 참사는 수사 착수에 6개월 소요

지난 12일 광주 서구 화정동 신축 아파트 붕괴사고 현장 부근에서 학동참사 피해자 유가족이 실종자의 무사 귀환을 염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과거 현대산업개발에서 발생한 사고사례를 감안하면 피해자들이 시공사의 사고의 책임을 규명하기까지는 장기간의 시간이 필요할 전망이다.

불과 7개월전 광주에서 발생한 붕괴 참사에서는 핵심 쟁점이었던 ‘재하도급’ 의혹에 대해 당국이 수사에 착수하기까지 반년가량 시간이 걸렸다.

학동 붕괴 참사는 지난해 6월 9일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 주택재개발 제4구역 공사현장에서 현대산업개발이 철거 중이던 10여m 높이의 5층짜리 건물이 붕괴한 사고를 말한다. 당시 건물이 정류장에 정차 중이던 54번 시내버스와 승용차 2대를 덮치면서 시민 17명(사망 9명·부상 8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사고 이튿날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은 광주시청 브리핑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번 사고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드리며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고 사과했지만 재하도급 건은 부인했다.

하지만 광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지난 13일 임원 A(53)씨에 대해 건설산업기본법 상 입찰방해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철거 공사 하도급 계약 과정에서 경쟁입찰을 하지 않고 공사를 따 낸 특정 기업이 단가를 크게 낮춰 재하도급을 받을 수 있도록 A씨가 개입했다는 혐의다.

경찰은 A씨의 금품수수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재개발 사업 브로커의 청탁을 받은 재개발 조합 측의 부탁을 받고 이 같은 일을 벌인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외에도 철거업체 선정에 개입한 브로커 4명을 비롯해 시공사와 컨설팅 업체 관계자 등 모두 25명을 입건해 수사 중이다.

정작 중대재해처벌법은 이달 27일부터…광주 붕괴 적용 안 돼

지난 12일 서울 용산구 HDC 현대산업개발. (사진=연합뉴스 제공)
한편 이번 사건을 계기로 건설 현장의 안전이 다시 도마 위에 오르면서 중대재해 발생 시 원청 대표이사 등을 처벌할 수 있는 중대재해처벌법의 필요성이 다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도입된 중대재해처벌법은 ▲사망자 1명 이상 ▲3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 동시 2명 이상 ▲부상자 또는 직업성 질병자 동시 10명 이상 발생 등 조건 중 1가지에 해당할 경우 중대재해로 보고 해당 기업의 대표이사와 안전관리 이사 등을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재계의 반발에 부딪혀 오는 27일로 시행이 유예됐었다. 두 차례 대형 참사를 일으킨 현대산업개발 입장에선 유예 조치를 통해 법 적용을 피해간 셈이다.

이 때문에 노동계에서는 안이한 정부의 처사가 애꿎은 노동자 피해를 초래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노총 광주본부는 지난 12일 성명을 내고 "이번 사고는 생명과 안전보다 HDC현산의 이윤 창출과 관리감독을 책임져야 할 관계기관의 안전불감증이 빚어낸 제2의 학동참사"라고 성토했다.

이어 노조는 "재해 발생 시 원청 경영책임자 처벌이 가능하도록 온전한 '중대재해처벌법'을 즉각 개정하라"며 "건설 현장의 발주, 설계, 감리, 원청, 협력업체 등 건설 현장 전반을 아울러 안전에 대한 각각의 책임과 역할을 분명히 하는 '건설안전특별법'을 즉각 제정하라"고 촉구했다.

이재형 기자



이재형 기자 silentroc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