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가 제품은 옛말…품목·품질 모두 고급화 추세지만 ‘깜깜이’ 가격 인상도 우려

일부 저가제품 중심으로 가성비의 대명사였던 PB 상품이 최근에는 먹거리부터 생활용품까지 전방위적으로 품목·품질 모두 고급화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주간한국 송철호 기자] PB(자체 브랜드) 상품이 유통기업 내 매출 1위 자리를 꿰차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특히 새해에도 연일 물가가 치솟고 있다 보니 비교적 저렴한 PB 상품이 소비자의 선택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형마트와 편의점은 물론 온라인몰에서도 PB 상품 라인업이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일부 저가제품 중심으로 가성비의 대명사였던 PB 상품이 최근에는 먹거리부터 생활용품까지 전방위적으로 품목·품질 모두 고급화되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소비자 입장에서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는 분명한 장점이 있다. 하지만 유통 플랫폼을 가진 대형 유통사가 자칫 우월적 지위를 통해 시장을 잠식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한다.

식품·비식품 불문…전방위로 확대되는 PB 상품 시장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외식이 줄어들면서 다양한 가정 간편식(HMR)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러한 HMR 시장이 확대됨에 따라 이제는 유명 맛집에 직접 가지 않고도 집에서 그 명성을 즐길 수 있는 레스토랑 간편식(RMR) 제품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롯데쇼핑에 따르면 실제로 롯데마트의 지난해 RMR 상품 매출은 전년 대비 476.0% 신장했다. 이에 롯데마트는 맛집의 맛 그대로 가정에서 편리하게 즐길 수 있는 컬래버레이션 RMR 상품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상품들 대부분이 바로 PB 상품이다.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PB 상품은 유통사가 기획한 대로 특화된 상품을 개발하기 쉽고 시의성을 최대한 고려해 순발력 있게 출시 시기를 지정할 수도 있다”며 “무엇보다 중간 유통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등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도 유리하기 때문에 대형마트나 온라인몰 등에서 PB 상품 라인업이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언급한 RMR PB 상품의 경우 롯데마트가 부산의 명물인 ‘다리집 떡볶이’를 PB 상품인 ‘요리하다 다리집 떡볶이’로 이번 달 출시한 것이다. 이 제품은 출시 1주일 만에 기존 NB(제조업체 브랜드) 상품 대비 약 3배가량 더 높은 판매량을 기록하며 냉장떡볶이 상품류 매출 1위, RMR 카테고리 매출 1위를 넘어 롯데마트 전체 HMR 매출 1위를 기록했다.

조은비 롯데마트 식품PB개발팀 MD(상품기획자)는 “소스, 떡, 레시피 단 하나도 놓치지 않고 부산의 맛을 제대로 구현해낸 것이 이번 신상품 인기의 비결이라고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롯데마트 유통인프라와 식품 제조 노하우를 바탕으로 지역의 유명 맛집과 협업해 다양한 HMR, RMR을 개발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온라인몰 PB 상품도 인기를 끌고 있다. GS리테일이 운영하는 온라인 장보기 플랫폼 GS프레시몰의 ‘순백목장우유 1.8L’, ‘순백목장 동물복지 요거트 500mL’ 2종이 우유·요거트 카테고리 내 지난해 매출 1위에 각각 등극한 것이다. 기존 1위 상품이었던 NB 상품과 월 매출 격차를 최대 2.5배, 5.3배까지 벌린 기록이다.

GS프레시몰은 품질, 가격 경쟁력을 두루 갖춘 PB 상품에 대한 소비자 관심이 최근 크게 늘어나면서 PB 상품 매출이 가파른 성장 추세를 보이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에 GS프레시몰은 순백목장 상품 외에도 비식품 PB 상품인 ‘데일리물티슈’, ‘데일리부드러운미용티슈’ 2종을 지난 11일 론칭하기도 했다.

제조사 자생력 저하와 PB 상품 가성비 논란 증폭

이마트에 따르면 지난해 PB 브랜드 두부 매출은 전년 대비 94% 증가했다. 롯데마트도 PB 라면 매출이 전년 대비 100% 이상 증가했고 우유·생수·통조림 PB 상품도 최대 300% 성장했다고 밝혔다. 최근 밥상 물가가 상승하면서 PB 상품 중에서도 생필품 종류가 잘 팔린 것으로 보인다.

GS리테일의 가치소비 온라인몰 ‘달리살다’는 비건(Vegan) 카테고리 매출이 급증하면서 지난해 밀키트 전문 브랜드 심플리쿡과 손잡고 100% 채식 콘셉트 PB 상품도 출시했다. PB 상품이 저가 제품의 영역을 넘어 가치소비, 그리고 프리미엄 영역까지 라인업을 넓혀가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식품업계의 한 관계자는 “PB 상품의 진화로 인해 자체 브랜드 파워가 열악한 제조사에게는 상당히 좋은 시장 진출 기회가 만들어지고 있다”며 “흔히 거론되고 있는 대형 유통사들의 우월적 지위로 인한 시장 잠식 우려는 유통 플랫폼과 대형 제조사간 힘겨루기 내지 상생 마케팅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아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고 진단했다.

오히려 문제는 PB 납품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지는 중소 제조사에게 발생할 수 있다. 이 관계자는 “일단 자체 브랜드 파워 약화로 인한 중소 제조사의 자생력 저하를 막을 수가 없다”면서 “대형 유통사가 시장에 나오는 상품을 지속적으로 PB 제품으로 출시해 버리면서 제조업계 전반의 신제품 개발 능력을 저하시키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가격 경쟁력을 갖춘 PB 상품 이미지도 최근에는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앞서도 언급한 것처럼 PB 상품도 이제 고급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소비자는 대체로 PB 상품을 가성비 제품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자칫 착시 현상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PB 상품에서 가성비 제품과 프리미엄 제품 구분이 명확해질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여성소비자연합은 지난해 11월 대형마트 3사의 PB 상품 2000여개의 1년간 가격변화를 조사해 발표한 바 있다. 조사 결과 2176개 중 1603개 상품의 가격 비교가 가능했고 이 중 514개(32.1%)는 가격이 인상됐다. 특히 식품류 PB 상품의 가격 인상 비율은 2019년 13.1%에서 지난해 31.5%로 나타나 꾸준히 가격이 인상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여성소비자연합 관계자는 “대형 유통업체 PB 상품 중 식품류의 가격 인상은 해마다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용량, 브랜드명, 제조사 등을 바꿔 비교하기 어렵다”며 “이러한 PB 상품 특성 때문에 소비자가 이전 상품과 가격을 비교하기 어려워 ‘깜깜이 인상’이 될 여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송철호 기자 song@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