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조원 단위의 공시 오기 방치...허술한 재무 관리에 투자자 소송전 불사

경찰이 지난 12일 회삿돈 2215억원 규모의 횡령 사건이 발생한 오스템임플란트 본사를 압수수색 했다. 사진은 이날 오후 압수수색이 진행 중인 서울 강서구 오스템임플란트 본사.
[주간한국 이재형 기자] 재무팀 직원이 회삿돈 2215억원을 횡령해 주식 거래가 정지된 오스템임플란트에 대해 한국거래소가 ‘상장 적격성 실질 심사’ 필요성을 타진하고 있다. 상장 기업이 공시의무 또는 회계처리기준을 위반하거나 횡령, 배임 등 주주 재산권 피해가 우려되는 사유가 발생할 경우 한국거래소는 기업심사위원회(기심위)에 이를 회부한다. 기심위는 오스템임플란트의 상장폐지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있어 주주들은 최근 상장폐지된 신라젠의 전철을 밟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는 실정이다.
기업심사위 앞둔 한국거래소, 오스템임플란트에 칼 빼드나
기심위는 심사를 통해 ▲상장 유지 ▲상장 폐지 ▲1년 이내의 개선 기간 부여 등 방안을 도출할 수 있다. 한국거래소는 오는 24일 상장 적격성 실질 심사 대상 여부를 발표할 계획이며 한 차례(15영업일) 미룰 경우 다음 발표 예정일은 오는 2월 17일 이내로 점쳐진다.
심사에 착수하면 기심위는 ▲경영의 안정성 ▲재무적 안정성 ▲경영의 투명성 등을 평가한다. 이중 경영·재무 안정성 부문은 횡령금 중 회수 가능 한도에 좌우된다. 유출된 자본의 복원 여부로 안정성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경찰 수사에 따르면 횡령금 2215억원 중 회수 가능한 액수는 절반가량인 1000억원 안팎으로 추산된다. 횡령 혐의를 받고 있는 전 직원 이모씨가 반환한 335억원과 회삿돈 685억 원으로 구매한 금괴 855개, 현금 4억여원은 경찰이 압수했다. 반면 이 씨가 동진세미켐 매수 등 주식투자로 날린 761억원은 회수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횡령 사건을 계기로 심사 필요성이 대두된 만큼 경영 투명성 여부도 심사의 주안점이 될 전망이다. 이씨는 2020년 235억원, 2021년에 100억 원을 임의로 출금한 후 다시 반환하는 등 개인금고처럼 회삿돈을 유용할 정도로 내부 통제 제도가 허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3개월 전 공시에서도 재무 시스템 허점 드러나
오스템임플란트는 매일 재무 상태를 확인하지만 이씨가 재무 관련 서류를 감쪽같이 위조해 지난해 말 집중 조사에서야 횡령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징후만 봐도 회사의 허술한 재무 관리 징후가 이어졌다는 지적이 많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오스템임플란트는 불과 3개월 전인 지난해 11월 분기보고서에서 종속회사의 재무 상황을 전부 틀리게 공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오스템임플란트는 해외사업 법인을 비롯해 40개 계열사를 두고 있는데 지난해 3분기 사업보고서를 보면 자산총액을 오기한 사실이 확인됐다.
가령 3분기 오스템중국의 자산총액은 93조원, 오스템미국은 116조원. 오스템글로벌은 55조원으로 기입했다. 반면 2분기 공시는 오스템중국 566억원, 오스템미국 920억원, 오스템글로벌 450억원으로 자산총액이 기록됐다. 오스템임플란트의 3분기 자산총액이 9400억원인데 종속회사 자산이 본사보다 많을 수도 없다. 특히 불과 1분기만에 자산이 1000배 이상 증가했을 리 만무하다. 공시 담당자가 단위를 오기해 올린 것인데 회사 경영진과 회계 담당자가 놓친 것으로 보인다.
3분기 공시는 지난 11월에 올라왔고 일부 투자자가 자료의 오류를 회사측에 지적해왔지만 회사 측은 바로 정정하지 않고 있다. 사사로운 실수라는 이유다. 오스템임플란트 관계자는 “3분기 공시가 단위를 잘못 입력해 틀린 것이 맞다”면서도 “단순 오기라서 큰 문제는 아니며 따로 고칠 계획도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사소한(?) 실수를 가려내지 못하는 허술한 회계시스템 때문에 실무자의 터무니없는 횡령이 가능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재무부서나 감사를 맡은 회계법인이 얼마나 방만하면 수십조원을 틀리는 실수를 하느냐”며 “재무부서의 내부 통제가 무너진 것이 아닌지 의심된다”고 했다.
오스템임플란트의 부실 회계가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7년 금융감독원은 특별감리를 통해 오스템임플란트가 반품충당부채를 인식하지 않은 사실을 적발하고 경징계 처분을 내렸는데, 이 사실이 최근 언론보도를 통해 재조명 받고 있다.
2018년 학술지 <회계저널>에 실린 ‘임플란트 산업의 수익인식에 대한 사례연구’ 논문을 보면 오스템임플란트는 금융감독원 감리 후 2016년 재무제표에 반품충당부채 167억원을 설정하기 위해 2012∼2015년의 재무제표를 재작성해 공시했다. 뒤늦게 해당 기간 이익잉여금 130억원을 줄이고, 매출은 52억원,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각각 36억원, 28억원씩 줄이는 등 숫자를 새로 기입했다.
상장폐지 우려에 주주들은 소송전, 은행들은 펀드 판매 중단
한편 마찬가지로 횡령·배임 문제를 겪었던 신라젠이 지난 18일 상장폐지되면서 오스템임플란트 주주들의 상장폐지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신라젠은 지난 2020년 상장 적격성 실질 심사에서 개선기간을 부여 받았다. 대주주 변경 등 지배구조를 개선에도 끝내 상장폐지로 결론이 났다. 따라서 그동안 장기 거래정지로 신라젠 주식을 처분하지 못했던 소액주주들은 졸지에 투자금을 전부 잃을 공산이 커졌다. 신라젠 시가총액 1조2000억원 중 92.6%는 17만4186명(2020년 말 기준)의 소액주주들이 보유해왔다.
불길함을 느낀 오스템임플란트 주주들은 재산권 방어를 위해 소송전에 나섰다. 지난 16일까지 오스템임플란트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1500명 안팎의 주주들이 몰렸다. 집단소송 등을 준비 중인 법무법인 한누리에 약 1400명이 피해 소액주주로 등록했고 공동소송 플랫폼 ‘화난사람들’에도 70여명이 모였다.
은행들도 예상치 못한 리스크에 대비해 관련 펀드 상품 판매를 중단했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은 오스템임플란트 종목을 편입한 펀드를 판매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우리은행은 펀드 상품의 설정 금액 중 오스템임플란트의 비중이 1% 이상 편입된 5개 펀드에 대한 신규 판매를 중단했다.
하나은행은 투자 자산에 오스템임플란트가 1주 이상 포함된 77개 펀드의 신규 가입을, NH농협은행은 오스템임플란트가 편입된 29개 펀드의 신규 가입을 받지 않기로 했다.
이재형 기자



이재형 기자 silentroc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