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당시 재하청 업체가 공사… 건산법 적용 어려울수도

지난 19일 오전 고용노동부,경찰 관계자들이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붕괴사고와 관련해 서울 용산구 현대산업개발 본사 압수수색을 집행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주간한국 이재형 기자] 광주 아파트 붕괴 사고로 수세에 몰린 HDC현대산업개발(현산)의 처벌 수위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부실공사가 사고 원인으로 가닥이 잡힌 가운데 설계 위반 등 비위 행위가 새롭게 드러나면서 ‘영업정지’ ‘업계 퇴출’ 등 강력 처벌을 촉구하는 여론이 거세다. 사건 경위에 대한 당국의 수사가 한창인 가운데, 붕괴를 초래한 공사의 책임이 하청업체로 국한될 경우 현대산업개발은 솜방망이 처벌에 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차 하청 문제시 원청인 현산은 동일적용 안 돼
건설업 면허 취소 등 처벌은 건설산업기본법(건산법) 규정에 따른다. 해당 법은 건설사의 고의나 과실에 따른 공사 부실로 건물에 중대한 손괴를 입히고 건설공사 참여자가 5명 이상 사망하거나 ‘공중의 위험(일반 시민 등 피해)’이 발생한 경우, 관할 지자체가 해당 업체에 건설업 등록말소 또는 1년 이내의 영업정지의 행정처분을 가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화정아이파크 붕괴 건은 국토부가 사고 조사결과를 통보하면 현산의 본사가 소재한 서울시에서 이를 바탕으로 처분을 내릴 계획이다. 사고 현장은 지난 11일 201동의 최상층인 38층부터 23층까지 외벽과 슬래브가 무너져 내리는 사고 발생 이후 현장 근로자 6명이 실종됐고 이중 1명이 구조됐으나 숨졌다. 2주째 수색 중인 가운데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17일 기자들과 만나 현산 징계 수위에 대해 “법이 규정한 가장 강한 페널티가 주어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다.
처벌의 쟁점은 이 같은 피해에서 현산의 고의나 과실 인정 여부다. 201동 상층부에서 콘크리트를 타설하면서 충분히 굳히지 않은 채 급하게 층수를 올린 게 붕괴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된다.
타설 작업을 원청인 현산이 직접 수행했거나 현산과 계약한 1차 하청업체가 맡았다면 현산의 과실은 인정된다. 현행법상 하청업체가 부실 공사를 한 경우 바로 윗 단계인 원청업체 역시 동일하게 처벌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1차 하청업체가 다시 일감을 2차 하청업체에게 맡겨 작업했다면 1·2차 하청업체까지만 처벌을 받는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사고 원인이 2차 하청업체인 것으로 확인될 경우 현산은 영업정지 등 핵심 처분에서 직접적인 책임을 피하고 하청업체만 처벌하는 ‘꼬리자르기’식 처분에 그칠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붕괴 당시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하던 8명의 작업자는 1차 하청인 A업체에서 장비를 빌려 작업해 2차 하청으로 의심되는 B업체 근로자들인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추가 조사를 통해 A업체와 B업체의 계약 및 재하청 여부를 확인할 계획이다.
지난 19일 광주 서구 신축아파트 붕괴사고 수사본부(광주경찰청)는 서울 현산 본사에 수사관들을 보내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과 합동으로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고 광주 화정아이파크 신축 아파트 공사(기술·자재), 안전, 계약(외주) 관련 서류를 확보했다. 광주 서구청과 설계사무실, 자재공급업체 등 4곳도 경찰의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관리책임 방기·설계 위반 등 추가 비위 정황 속속 적발
재하청 근로자가 부실시공의 직접적인 원인일 경우에도 현산이 관리감독 책임까지 벗어나기는 어렵다. 재하청은 엄연한 불법 하도급인 만큼 원청인 현산이 관리감독의 책임이 있다는 거다. 서울시 관계자는 “부실시공과 별개로 불법 하도급에 대한 관리 의무가 있는 원청의 재하청 묵인·지시·공모 여부도 행정 처분의 주요 쟁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설계 등 원청 책임에 가까운 비위 정황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광주 서구 등에 따르면 당초 현산은 아파트 39층 바닥면에 두께 15㎝의 슬라브를 균일하게 건설하기로 사업계획을 승인받았다. 그러나 설계 도면에는 슬라브 단차가 3개로 나뉘었으며, 주민공동시설(게스트하우스)의 바닥은 35㎝ 두께로 타설을 계획해 당초 계획보다 승인받은 두께보다 두 배 이상 두꺼웠다. 공사 방식도 39층 바닥면을 재래식 거푸집(유로폼)을 이용해 콘크리트를 타설하기로 했으나 실제로는 ‘무지보’(데크 플레이트·Deck plate) 공법을 사용했다. 무지보 공법은 콘크리트 타설 작업에서 상층부 하중을 떠받치는 ‘동바리’(지지대)를 설치하는 대신 넓은 판 형태의 받침대를 깔아 콘크리트를 타설하는 방식을 말한다.
한편 현산이 연루된 지난해 광주 학동 붕괴 사건은 이번 화정아이파크 사고 처벌의 향방을 가늠해볼 수 있는 유사 사건으로서 관심이 쏠리고 있다. 7개월 전인 지난해 6월 광주 학동 주택재개발 제4구역 공사현장에서 현산이 철거 중이던 10여m 높이의 건물이 무너져 인근 정류장의 시내버스와 승용차 2대를 덮치면서 시민 9명이 사망하고 8명이 부상을 입었다.
광주 학동 사고는 이번 붕괴와 마찬가지로 하청이 다시 하청을 주는 재하도급 관행이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당시 현장에선 1차 하청인 한솔 기업이 광주 지역 업체인 백솔기업에 다시 하청을 줬다.
한솔기업에 대한 처분은 본사 소재지가 있는 영등포구가 맡는다. 서울시는 영등포구의 처분 결과에 따라 현산에 최장 8개월까지 영업정지 처분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광주 학동 붕괴와 화정아이파크 붕괴에서 모두 영업정지로 결론이 날 경우 최대 1년8개월까지 영업정지 처분이 내려질 수도 있다.
정치권과 시민단체, ‘이구동성’으로 경영진 처벌 요구
한편 정치권과 시민사회 일각에서는 현산이 광주 학동 사고 이후 7개월 만에 붕괴 사고를 다시 초래한 만큼, 건설업 등록 말소 및 경영진 처벌 등 강력 처벌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건산법상 과거 사고를 근거로 현재 사고 처벌의 수위를 높이는 규정은 없지만 재발방지를 위해 당국이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근로자 1명 이상 사망 등 중대재해 발생 시 원청사 최고경영자(CEO)까지 형사처벌이 가능하도록 규정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이 오는 27일로 미뤄진 탓에 현산이 해당 법 처벌을 피해간 가운데, 경영진 처벌 여론이 뜨겁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는 지난 19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에서 열린 '경제 정책 간담회'에서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만나 “7개월 만에 똑같은 참사가 난 것인데 현산 같은 경우 면허취소를 해야 한다”며 “광주 참사 현장에서 실종자 가족들이 공통적으로 말씀하는 게 ‘현대산업개발이 다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다. 공기 단축, 불법 하도급 안 했다고 하는 게 사실이 아니라고 드러나고 있고 건설업에 종사했던 노동자와 시민에 대한 일말의 책임 윤리가 보이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안전사회시민연대는 이에 이틀 앞선 지난 17일 서울 용산구 HDC현대산업개발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몽규 회장에 대한 법적 처벌 및 건설업 면허 취소를 요구했다.
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는 “현대산업개발은 살인기업”이라며 “국회와 정부는 중대재해처벌법을 대폭 강화해서 안전참사를 야기하는 기업의 대표와 경영진을 반드시 처벌하라. 현대산업개발의 (건설업) 면허를 취소하라”고 주장했다.




이재형 기자 silentroc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