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적 여론 의식한 CJ ENM, 현대엔지니어링은 상장계획 철회

SSG닷컴 물류센터 '네오' 전경 (사진=신세계그룹 제공)
[주간한국 이재형 기자] 새벽배송 서비스로 유명한 이커머스 3사(SSG닷컴, 마켓컬리, 오아시스마켓)가 연내 유가증권시장 입성을 목표로 상장 심사 시점을 타진하고 있다. 지난해 3월 미국 뉴욕증시에 상장해 시가총액 71조원(공모가 기준)을 확보한 쿠팡에 이어 유통가 주식 청약 ‘대박’이 재현될지 업계 관심이 집중된다. 각 기업의 기업공개(IPO) 성패가 향후 온라인 유통 업계 경쟁 구도를 판가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자회사 상장이 모회사의 일반주주 이익과 상충된다는 이른바 ‘쪼개기 상장’ 논란이 맞물리면서 최적의 타이밍을 고르기 위한 관련업계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증권시장 문 두드리는 이커머스 대어(大漁)들

최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SSG닷컴은 오는 4월쯤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에 상장 예비심사를 청구할 계획이다. 당초 염두했던 2023년에서 일정을 1년 앞당겼다. SSG닷컴에 7000억원을 투자했던 어피니티, BRV(블루런벤처스) 등 재무적투자자(FI)들은 최근 3000억원 추가 투자를 단행했다. 이들이 운영하는 펀드 등은 상장 후 39만4948주의 신주를 배정받을 계획이다. 마켓컬리는 올해 1분기, 오아시스마켓은 연내 상장이 목표다. 마켓컬리는 상장 중 대외 리스크를 감안해 사외이사에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당국 등 고위직 관료 출신 인사를 발탁했다.

이들 기업의 예상 기업가치는 SSG닷컴 10조원, 마켓컬리 7조원, 오아시스마켓 2조원에 육박해 올해 IPO의 ‘대어’로 손꼽힌다. 이들 기업이 올해 상장을 서두르는 것은 ‘치킨게임’이라고 불릴 정도로 몸집 불리기 경쟁이 치열한 온라인 유통업계 특성 때문이다. 현재 국내 이커머스 시장은 뚜렷한 강자가 없어 무한 경쟁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시장점유율은 2020년 기준으로 네이버가 17%로 1위이고 이베이코리아와 합친 SSG닷컴이 2위(15%), 이어 쿠팡(13%), 11번가(6%), 롯데온(5%) 등의 순이다.

이런 가운데 대규모 자본을 유치할 수 있는 IPO는 앞으로 이커머스 경쟁에서 실탄 확보를 위해 필수 관문이 됐다. 이미 쿠팡은 1조5000억원을 투입, 전국 10개 지역에 신규 물류센터를 열겠다고 밝히며 외연확장에 한창 기세를 올리고 있다. 내년 상장을 노리고 있는 11번가와 지난해 예정됐던 상장을 철회한 후 다음 시기를 조율하고 있는 티몬도 경쟁구도에 긴장감을 불어넣고 있다.

뜻밖의 암초, 대주주 배불리는 ‘쪼개기 상장’ 논란

하지만 재무상태나 모-자회사 동시 상장에 대한 부정적 여론 등 변수는 이들 기업이 상장을 낙관할 수 없는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새벽배송 분야에서 시장 점유율 40%로 1위인 마켓컬리는 재무 리스크가 암초로 지적된다. 마켓컬리는 2020년 자산규모 5870억원에 결손금 5544억으로 자본잠식 상태에 있다. 영업손실 규모 역시 2018년 337억원, 2019년 1013억원, 2020년 1163억원으로 악화하고 있다.

SSG닷컴과 오아시스마켓은 최근 증권시장에서 불공정 행위로 거론되고 있는 쪼개기 상장 논란을 넘어야 한다. 쪼개기 상장 논란은 지난 1월 LG에너지솔루션(LG엔솔) 상장을 계기로 모-자회사 동시 상장에 따른 일반주주 이익 훼손이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불거졌다. LG화학에서 배터리 사업부가 분사해 출범한 LG엔솔은 청약 당시 경쟁률 2023 대 1을 기록하며 시총 70조2000억원(공모가 기준)으로 덩치를 불렸다. LG그룹은 대주주 지배력을 유지하면서 거액의 투자금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배터리 사업을 보고 투자했던 일반주주들은 거의 반토막 난 LG화학 주식을 팔고 LG엔솔 주식을 비싸게 되사야 했다. SSG닷컴과 오아시스마켓 역시 상장 후 모회사 기업가치 및 주가하락은 불가피하다. 대주주 배불리기 비판이 이커머스 상장에서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금융당국, 과도한 ‘공모가 뻥튀기’ 제재 시사

금융당국이 쪼개기 상장에 제재를 시사하고 나선 점도 이커머스 3사 상장에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LG엔솔은 수요예측 단계에서 국내외 기관들이 벌인 과도한 청약 경쟁이 결과적으로 공모가를 부풀렸다는 지적이 제기된 탓이다.

정은보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10일 “물적분할과 관련해 소액 투자자 보호에 대한 이슈가 있다고 생각한다. 소액 투자자 보호 및 기관투자가의 역할과 관련해 금융위원회와 협의 중”이라며 이른바 ‘공모가 뻥튀기’ 방지 필요성을 시사했다. 기관들이 수요예측에 소극적으로 돌아선다면 LG엔솔과 같은 흥행은 향후 기대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있다.

쪼개기 상장에 비판적 여론을 의식해 일부 기업은 자회사 상장 계획을 철회했다. CJ ENM은 물적분할로 멀티 스튜디오 시스템을 구축하고 글로벌 콘텐츠를 확대 계획이었지만 주주 반감이 주가하락으로 이어지면서 무산됐다. 현대차그룹의 현대엔지니어링 역시 수요예측에서 경쟁률과 공모 희망가가 기대보다 밑 돌면서 상장을 연기했다.

특히 SSG닷컴의 경우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멸공’ 발언으로 부채질한 부정적 여론이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다만 SSG닷컴과 오아시스마켓은 설립 후 수년이 지나 상장 계획이 주주들에게 충분히 알려졌던 만큼, 물적분할 후 2년 만에 상장한 LG엔솔 사례와는 동일선상에 놓을 수 없다는 관점도 존재한다. SSG닷컴은 2018년, 오아시스마켓은 2017년 설립돼 장기간 상장 시기를 조율해왔다.

익명을 요구한 증권사 관계자는 “모-자회사 동시 상장이 불법은 아닌 만큼, 현재 상장 기업을 향한 부정적 여론이 반드시 합리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며 “상장 계획을 충분히 알려온 기업이라면 일반 주주도 처분 등 선택의 기회가 있었을 텐데, 모든 사례를 쪼개기 상장으로 못 박고 피해만 호소하는 것은 ‘떼법’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재형 기자 silentroc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