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균의 개그펀치] "나가 있어!"


용돈이 풍족하지 못했던 대학 시절에는 그저 술이라면 다 좋았다. 학교 앞 허름하고 지저분한 밥집에서 김치찌개 하나 놓고 먹었던 막걸리 맛이라니. 대 여섯 명이 달랑 김치찌개 1인분만 시켜놓고는 국물을 젓가락으로 찍어먹듯이 하며 안주 삼아도 술발이 잘 올랐다.

뚱뚱하고 무뚝뚝한 주인 아줌마는 우리가 떠들건 노래를 불러제끼건, 주방에서 김치를 훔쳐다가 김치찌개에 넣고 재탕을 끓이건 아무런 타박도 없었다. 다만 김치를 좀 많이 훔쳤을 때만 우리의 등짝을 후려치며 짧은 욕설을 퍼부을 뿐이었다. 그런데 욕인건 분명한데도 우리의 귀에는 전혀 욕으로 들리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을 뿐이었다.

막걸리나 소주만 마시다가 어쩌다가 맥주라도 마시게 되면 그런 호사가 없었다. 치약을 잔뜩 묻히고서 양치질을 하듯이 입안 전체가 개운해지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빈 강의실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 마셔도, 잔디밭에서 마셔도, 밥집 아줌마의 지청구를 먹어가며 마셔도 좋았다. 오직 술을 마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랬었는데 지금은 어떠한가. 나는 지금도 술 마시는걸 좋아한다. 다만 입맛이 좀 까다로워졌을 뿐이다. 맥주보다는 양주를 좋아하게 됐고, 아담하고 분위기 편한 곳에서 마시는 것도 좋아하지만 어쩌다 가는 룸살롱도 좋아하게 됐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남자들이 룸살롱에서 술 마시는 것을 좋아하듯이 말이다.

처음 룸살롱에 갔을 때는 호기심과 긴장감으로 벌벌 떨었던 기억이 난다. 아가씨들이 들어와서 인사를 하는데 고개도 못 들고 있다가 아가씨들이 술을 따라주자 나도 모르게 두 손으로 술잔을 들어서 주변 사람들을 박장대소하게 만들었다.

어떤 사람은 처음 룸살롱에 가서 아가씨와 대면했을 때를 첫미팅에 비유했었다. 첫미팅 때보다 더 설레었는 데 참으로 순진했던 때라고 부끄러운 듯 사람좋게 웃던 것도 기억이 난다.

남자들에게 왜 룸살롱에 가서 술 마시는걸 그토록 좋아하냐고 따지지 말라. 여자들은 남편들이 룸살롱에 갔다고 하면 손톱을 세우며 마치 어디 나쁜 곳에 가서 몸이라도 버린 사람 취급을 하지만 진실은 그렇지 않다. 수많은 여자들이 라면 한 그릇을 먹어도 고급스럽고 세련된 곳에서 먹고 싶어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뿐이다.

처음 룸살롱에 갔을 때는 그저 아가씨들이 옆에 앉아 술을 따라주고 안주를 집어서 입에 넣어준다는 사실만으로 기뻐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파트너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몇 번 씩 퇴짜를 놓는다.

어떤 사람들은 다짜고짜 인상을 확 구기며 “야, 술맛 떨어지게 하지말고 당장 나가” 하며 거리낌없이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은 아가씨들을 한번 주욱 훑어보고는 아주 심각한 분위기를 조장한다. “저기 우리끼리 할 얘기가 있으니까 자리 좀 피해주지.”

이럴 때 눈치빠른 마담의 실력과 진가가 나와야 한다. 손님이 정말로 밀담을 나누기 위해 아가씨들을 내보낸건지 아니면 소위 딱지를 놓은 것인지 말이다. 손님들이 추가로 술을 시킬 때 맥주를 시키는지 아니면 꽤나 비싸다는 양주를 시키는지로 파트너에 대한 손님의 만족도를 점검하는 마담도 있고 마른안주와 과일안주를 놓고 저울질 하는 마담도 있다.

별로 예쁘지도 않고 성격도 안 좋을 것 같은 아가씨들이 룸에 들어왔을 때 싫다고 표현하는 방법은 여러가지지만 요즘은 새로운 패턴이 생겼다는 후문이다. 개그 콘서트의 봉숭아 학당에서 명문귀족 세바스찬이 치를 떨며 외치는 바로 그 버전이라는데…. 마음에 안드는 아가씨가 들어오면 즉각 소리친다. “(세바스찬 톤으로) 나가있어!”

장덕균


입력시간 : 2003-09-30 14:20


장덕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