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균의 개그펀치] 꿈은 이루어졌다


얼마 전에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녀석이 장래희망을 말했을 때 사실 속으로 조금 놀랐다. “넌 커서 뭐가 되고싶냐?” 아들은 고민하는 기색도 없이 낼름 대답했다.

“회사원요.” 회사원? 너무도 평범하고 의외의 대답에 놀랍기도 하고 어처구니가 없기도 했다. 그 나이 또래 아이들처럼 과학자나, 의사, 혹은 엄청난 부자가 되고싶다거나 하다못해 그토록 열광하는 프로 게이머라는 조금은 거창하고 미래 지향적인 대답을 기대했던 나로서는 소박하기 그지없는 아들의 답변이 걱정스럽기도 했다.

사람은 누구나 꿈을 가지고 산다. 때로는 그 꿈이 너무 거창하고 허황대서 인생을 불필요한 소모전으로 낭비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 생각은 꿈은 일단 커야 하는 것이고 그래야 발전적인 삶을 꾸려나갈 수가 있다고 믿는다. 아무 생각이 없는 것인지, 욕심이 없는 것인지 새삼 아들 녀석의 성향에 대해 슬슬 고민스러워지는데 아내는 참으로 명쾌하기 그지없는 해설을 달았다.

“너무 걱정마요. 다른 애들 아빠 대부분은 회사원이잖아. 주말에 꼬박꼬박 쉬고, 아이들하고 어디 가주고, 저녁 같이 먹고…. 그게 부러웠을거야. 그래서 회사원이 최고의 직업이라고 생각하니까. 애가 생각하는 범위가 뻔하지 뭐.” 정말 그런걸까? 안심이 되기도 하고 너무 바쁜 아버지를 둔 아이가 안쓰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내 아들의 꿈이 조금만 더 업그레이드 됐으면 하는 바램이 아직도 남아있다.

사람은 누구나 꿈을 가지고 살아간다. 세상이 다 내것 같고 내가 세상을 품을 수 있다는 자신감과 열정이 끝도 없이 넘쳐나던 시절에 꾸던 꿈들이 있을 것이다. 내가 꿈꾸고 희망하는 미래가 어김없이 펼쳐지리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던 시간들.

그래서 무모하지만 거창한 꿈을 꾸어도 비난받거나 손가락질 당하지않는 어린 시절의 꿈들이 누구에게나 있다. 나이를 먹고 살아가면서 현실의 단단한 벽에 부딪칠 때마다 조금씩 실망하고 후퇴하면서 삶의 좌표를 수정해가기도 하지만 그래도 마음속에 간직한 보석같은 꿈 한조각 때문에 그럭저럭 나름대로 살아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친척 조카 하나는 여고생인데 꿈이 연예인이 되는 것이다. 가수나 탤런트, 모델같은 구체적인 직업도 정하지 못한 채 그저 TV에 나오는 화려한 연예인이 되고싶어서 몸살이 난 애다. 본인 생각으로는 자신은 충분히 재능이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내가 알선책이 되어주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하는 모양인데 조카의 은근한 압력이 실린 눈빛을 대할 때마다 사실 괴롭기 짝이 없다.

내 어린시절의 꿈은 고고학자였다. 흙먼지 속에서 수 천년전의 세월을 캐내는 고고학이라는 직업이 멋있어 보였지만 타고난 끼 때문에 자연스럽게 접어버린 꿈이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어린시절 꾸었던 꿈대로 살아가고 있을까. 아마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어린시절의 꿈과는 전혀 동떨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개중에는 노력과 근성으로 그리고 하늘의 도움으로 자신이 목표했던 꿈대로 살아가는 행운아들도 있겠지만 그것은 극히 적은 수일 것이다.

고교 동창인 한 녀석의 꿈은 거대한 목장의 주인이 되는 것이었다. 노래가사처럼 푸른 초원에 하얀집을 짓고 밀짚모자를 눌러쓴 채 소떼를 돌보며 평화롭게 살고싶다고 했었다. 지금 그 녀석은 몇 번의 주식투자 실패로 인해 직장마저 잃고 아내가 주는 용돈으로 집에서 놀고 있다. 의기소침해 있을 녀석을 위로한답시고 불러내서는 진탕 퍼마시는데 문득 녀석이 의연하게 말했다.

“내가 그래도 어린시절의 꿈을 절반은 이뤘잖아.” “우유회사 주식 샀냐?”

“아니. 우리 마누라 가슴이 장난이 아니거든. 내가 그 목장 주인이야.”

장덕균


입력시간 : 2003-09-30 14:40


장덕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