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나미의 홀인원] 한국 골퍼 왜 강한가


16 번홀. 홀컵까지 거리는 5m. 박지은은 한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어드레스 자세를 잡았고, 자신있게 터치를 했다. 볼은 그대로 홀컵으로 빨려 들어갔다. 1 타차 단독선두로 올라서는 버디 퍼팅이었다.

마지막 18 번홀. 박지은의 티샷은 러프로 떨어졌다. 183야드를 남겨놓은 상태에서 친 세컨샷 마저도 그린을 벗어났다. 온 그린 된 볼과 홀과의 거리는 4m. 여기까지 중계방송을 본 아마골퍼라면 최소한 박지은의 호흡과 전율을 같이 느꼈을 것이다.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느낌이 절로 들 정도였다.

그 순간 박지은이 느끼는 중압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 이다. 그러나 박지은은 역시 대범했다. 신중하게 라이를 본 뒤 천천히 돌아와 어드레스. 볼은 마치 쇠붙이가 자석에 이끌리듯 홀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날 박지은이 미켈롭라이트 챔피언십에서 우승함으로써 한국 여자골퍼는 지금까지 치러진 LPGA 7개 대회 중 3개를 휩쓸었다. 박세리는 이미 이전 두 대회(세이프웨이 핑 챔피언십, 칙필A채리티 챔피언십)에서 우승컵을 안았다.

이젠 박세리 박지은은 여자 골퍼의 지존이라는 아니카 소렌스탐과 같은 레벨이다. 어느 누가 더 낫다고 볼 수 없다. 이들 뿐 아니다. 바늘구멍에 낙타가 들어가는 것 만큼 어렵다는 LPGA 무대에 무려 14명의 한국 선수들이 뛰고 있는 데 모두 성적이 좋다.

이 정도면 우리나라 골프팬들 뿐 아니라 전세계의 골프팬들 사이에서도 “한국 선수들이 잘치는 이유가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퍼질 만 하다. 실제 미국LPGA 의 관계자들은 우리 골프 관계자들에게 “한국 선수들만의 특별한 기술이 있다고 하는 데 사실이냐”고 물어본다고 한다. 정말 비결이 있을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한국 선수들은 오랫동안 지금의 비상을 준비해 왔다. 준비된 시간들이 오늘의 성공을 만들었다.

우리나라 골퍼들의 경우 대개 초등학교 2,3학년이면 골프채를 잡는다. 일찍 시작하는 것이다. 연습 시간도 길다. 대개 하루 6시간 이상 골프채를 휘두른다. 스윙 연습도 하고 숏게임 연습도 한다. 체력 훈련은 별도다. 헬스클럽에서 근력을 키우는 데에도 적잖은 시간을 투자한다. 그리고 이 모든 연습과정을 레슨프로가 함께한다.

또 있다. 우리 주니어 골퍼들은 골프를 시작한 지 만2년이 지나면 겨울철에 어김없이 무조건 따뜻한 나라로 간다. 특정 지역 한 곳으로만 가는 것이 아니라 세계 각국으로 따뜻한 곳이라면 한번씩은 다 간다. 아마 우리나라 주니어 중 따뜻한 나라 5개국 이상 안 다녀온 주니어는 극히 드물 것이다. 그리고 그 지역의 ‘최고’레슨을 무조건 한번씩은 받는다.

우리나라 주니어들의 애로 사항 중 하나는 겨울에 외국에서 배운 신기술을 시즌 때 제대로 써먹지 못한다는 것이다. 기간이 길지않아 근육이 제대로 기억을 못하기 때문이다. 언어 때문에 레슨 내용의 50% 이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이유가 된다.

하지만 돌아와서 그 기술을 애써 기억하면서 찾으려고 하는 그 과정이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엄청나게 실력이 는다. 스윙은 무너져야 더 좋아진다. 많이 무너져 봐야 더 좋은 것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면서 10년이 지나면 그 노하우란 세계최고의 레슨프로라는 리드베터에게 배우는 것 보다도 터득하는것이 더 많을것이다. 무너지고 또 다시 찾고 또 새로운 것을 배우고 또 무너지고….

여기에다 몇 해 전 부터 우리 선수들에게는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덧붙여졌다. 여기에는 박세리의 공이 컸다. 높아만 보이던 LPGA의 벽을 박세리가 거뜬히 넘음으로써 그와 함께 엇비슷하게 경기를 했던 여타 선수들은 자극을 받는 한편 자신감도 가질 수 있었다.

누구보다 자존심이 강한 우리 선수들의 묘한 경쟁심도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나하고 국가대표를 같이 할 때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었는데….”, “한국에서는 실력 차이가 별로 없었는데….”라는 경쟁 심리가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박나미


입력시간 : 2003-09-30 15:13


박나미 nami862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