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나미의 홀인원] 과거를 잊고, 처음처럼


요즘 타이거 우즈의 빨간색 티셔츠와 검은색 바지 입은 모습을 보기가 힘들다. 메이저 대회에서도 라운드 초반 중위권에서 맴돌다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오기가 그리 쉽지 않다. 플레이도 똑같고 스윙 템포도 비슷하고 거리가 제법 되는 롱 버디 퍼팅도 곧잘 들어가는 것 같은데, 예전처럼 몰아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타이거 우즈도 슬럼프에 빠진 것일까? 올 봄에 한 무릎 수술 때문인지 종종 무릎이 아프다고 호소한다는 보도까지 있는 걸 보면 슬럼프인 것 같다고 한다. 이빨 빠진 호랑이 같아 안쓰럽기도 하고, 예전의 불 같은 플레이가 슬며시 그리워진다.

비단 타이거 우즈 뿐 아니라, 캐리 웹, 닉 팔도, 그렉 노먼 등등. 정말 세계적인 선수도 슬럼프에 빠졌을 때 더 없이 올라오기 힘들어 하는 모습을 이미 여러 차례 보았다. 왜 잘치는 사람이 한번 무너지면 더 예전의 플레이로 돌아가기가 어려울까?

필자는 이들의 슬럼프가 길어지는 것은 그 전에 자신이 선보였던 화려한 플레이의 기억이 너무 강하게 자리잡고 있는 까닭이 아닐까 생각한다. 플레이가 뜻대로 안 풀리고 점수가 안 나와도 예전에 화려했던 플레이의 기억에 스스로 묻혀 있기 때문인 것이다.

잘 못치는 골퍼들은 이전에 잘 쳤던 기억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실망도 없다. 그러나 이전에 잘 쳤던 골퍼나 선수들은 언제나 최고의 샷의 메모리가 저장되어서 곧잘 그런 모습을 상상하곤 한다. 아마 골퍼들이 자신의 베스트 스코어를 기억 하듯이.

하지만 골프는 기억이 많으면 안 된다. 잘 쳤던 기억이던 못 쳤던 기억이던 간에 지나간 것에 많은 비중을 두면 그맡큼 좋을 것이 없다. 이런 문제는 그렉 노먼이나 닉 팔도 같이 대선수들도 예전의 감에 대한 기억 때문에 현재 특별히 안 되는 것이 없는데도 스스로 무너지는 것과 마찬가지 현상인 것이다.

이것은 연습과정에서도 큰 영향을 받는다. 어제 필드에서 실수를 했더라도 예전에 잘했던 기억이 있는 클럽은 실수를 실수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다음 라운딩 때에는 잘 되겠지. 하면서 그냥 넘어간다. 하지만 그런 과정이 더 큰 실수를 낳고 결국은 스윙까지 무너지는 현상을 만들 것이다.

가끔 인도어에 가면 예전에는 싱글이었는데 요즘은 90대 스코어를 유지하기에도 바쁘다고 하소연 하는 아마골퍼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속이 상하고 애가 타서 예전에는 싱글 플레이를 했다고 강조하면서 얘기 하지만, 솔직히 전에 쳤던 점수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점수가 더 이상 줄지 않는다거나 점수가 다시 늘어난다면 그립, 어프로치 등부터 차근차근 다시 시작해 보는 것을 권유하고 싶다. 예전 것을 그리워하지 말고 현재 연습을 충실히하면 좋은 점수를 회복할 수 있다.

골프는 절대 클럽을 잡은 주인을 속이지 않는다. 분명 원인 모를 이유들이 스윙 궤도 속에도 있겠지만 골프에 대한 생각도 스윙만큼이나 중요하다. 물론 긍정적인 멘탈 트레이닝으로 긍정적인 기억을 되풀이 하는 트레이닝도 있지만 이 상황은 선수들이 부정적인 생각을 버리기 위한 트레이닝일 뿐 아마 골퍼들에겐 별 다른 효과가 없다.

점수가 줄지 않는다면 아주 오래 전 골프에 맛을 들이기 시작했을때, 그때처럼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클럽을 잡아봐라. 언제나 제일 좋은 것은 처음부터 시작하는 마음이다. 첫 클럽을 잡았을때의 마음, 첫 홀에 섰을때의 마음처럼.

박나미


입력시간 : 2003-09-30 15:20


박나미 nami862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