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캣츠

[비디오] 부자들의 파티와 죽음의 그림자
■ 캣츠

1924년 11월 15일 토요일. 산 페드로항에 정박한 호화 요트 오네이다에 오르는 손님 명단은 화려했다. 미디어 제국의 왕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에드워드 허만)와 그의 정부인 배우 마리온 데이비스(커스틴 던스트)의 초대장을 받은 이는 배우 찰리 채플린(에디 이자드), 영화 제작자 토마스 하퍼 인체(카리 엘위스), 연예 기자 엘리노어 글린(조안나 룸리), 엘리노어를 흠모하는 애숭이 여기자 루엘라 파슨즈(제니퍼 틸리) 등등이었다.

이들은 샌디에이고로 항해하는 배 위에서 술과 춤과 카드 놀이를 즐긴다. 그러나 이 화려한 파티 뒤로는 온갖 음모가 펼쳐지고 있었다. 노년의 갑부 허스트는 비밀 창으로 이들을 훔쳐 보고 있었는데, 어린 연인 마리온과 채플린이 그렇고 그런 관계라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재정난에 처한 토마스는 허스트에게 마리온과 채플린을 감시해 주겠다는 제안을 하며, 재정 지원을 타진한다. 채플린은 끊임없이 마리온을 유혹하고, 마리온은 모호한 태도를 취한다.

채플린의 방에서 마리온에게 선물했던 브로치를 찾아낸 허스트는 마침내 불안의 정점에 이른다. 어둠 속에서 마리온과 다정하게 속삭이는 사내에게 방아쇠를 당기는데, 쓰러진 사나이는 채플린이 아닌 토마스였다. 더구나 그 현장을 파슨즈 기자가 보고 말았으니.

피터 보그다노비치의 2001년 작 <캣츠 The Cat's Meow>(15세, 메트로)는 실제 사건에 상상을 가미한 흥미로운 영화다. 당대 최고의 언론 재벌 허스트의 호화 요트 파티와 제작자 토마스의 죽음은 사실이지만, 허스트가 죽였는지, 배에서 죽은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한다. 배에 탔던 이들의 명단도 밝혀지지 않았고.

그러나 이 미스터리한 사건은 당대 연예계와 언론 재벌의 힘을 상상해볼 수 있는 사건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는 영화 말미의 자막 설명과도 연계된다.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는 19살이었던 마리온을 스타로 만들기 위해 엄청난 돈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코미디 자질이 많았던 마리온을 로맨틱한 멜로물 주인공으로 만들려고 해 마리온의 배우 생명은 1917년에 시작되어 1937년에 끝나고 만다. 이후 마리온은 허스트가 죽을 때까지 곁을 지켰다.

여기자 파슨즈가 30여년간 허스트 산하 신문사에서 연예계 가십 기자로 악명을 떨칠 수 있었던 것은, 허스트의 살인에 대한 함구 대가라는 것. 이런 식으로 영화에 등장한 할리우드 인물의 이후 행적을 꿰맞추며 <캣츠>는 허스트의 막강한 힘이 살인 사건조차 은폐시킬 수 있었다고 상상한다.

<캣츠>는 피터 보그다노비치 감독에게도 의미심장한 해석을 할 수 있는 영화다. 할리우드 고전 영화에 통달한 평론가로 필명을 날리던 보그다노비치는 <라스트 픽쳐 쇼>로 ‘오손 웰즈의 재래’라는 칭찬을 들었다. 그러나 이후에는 이를 능가하는 작품을 내놓지 못해 최근의 보그다노비치는 잊혀진 감독이나 다름 없었다.

따라서 <캣츠>는 재기작이라 할 수 있는데 오손 웰즈의 <시민 케인>을 모방한 장면 연출을 볼 수 있다. 허스트가 마리온의 방에서 채플린과의 관계를 다그치는 장면은 <시민 케인>에서 미디어 재벌 찰스 포스터 케인이 아내 수잔을 다그치는 장면과 유사하다. <시민 케인>이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를 모델로 했고 허스트가 영화 개봉을 막았다는 공공연한 사실을 떠올리면 더욱 흥미롭게 보인다.

보그다노비치 감독의 개인사와 <캣츠>를 연계시키는 평도 있었다. 보그다노비치는 한때 플레이보이 사주인 휴 헤프너의 별장에 자주 드나들었고, 플레이보이 모델이었던 도로시 스트레튼과 사귀었다. 보그다노비치의 두 번째 부인 루이지 호그스트레튼은 도로시의 이복 여동생이다.

후에 배우가 된 도로시는 질투에 눈이 먼 남편 폴 스나이더 손에 죽었다. 이런 사건을 겪은 보그다노비치가 <캣츠>의 대본에 끌린 것은 당연한 것이었을까.

영화 자체만을 놓고 본다면 인물 성격, 배우 연기, 분위기 재현 면에서 1920년대 할리우드 풍

자에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난 영광스러웠던 당시를 꿈꾼다. 우스꽝스러웠지만 멈출 수 없었던 때”라는 마지막 대사가 어울리는 영화인 것만은 분명하다.

옥선희 비디오, DVD 칼럼니스트


입력시간 : 2003-10-01 13:59


옥선희 비디오, DVD 칼럼니스트 oksunnym@han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