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파이크 리 박스 세트

[비디오] 인종차별의 영화적 고발
■ 스파이크 리 박스 세트

최근 DVD영화 감상 팬들은 각종 세트 작품 출시로 얇은 지갑 걱정을 하고 있다. 그 중에서 미국 독립 흑인 영화계를 대표하는 감독 스파이크 리의 작품 3편을 모은 <스파이크 리 박스 세트>는 감독이 꾸준히 천착해온 흑인 차별, 흑인의 정체성을 숙고할 수 있는 도발적인 초기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1989년 작인 <똑바로 살아라 Do the Right Thing>는 브루클린의 베드포드 스투베산트에 사는 다양한 흑인 구성원의 하루를 그린 문제작이다. 이렇다 할 직업 없이 소일하는 빈민층 흑인들이, 자신들의 돈을 긁어 모으는 이태리인 피자 가게 주인과 한국인 잡화상 주인을 비난하며, 폭동을 일으키는 장면은 로스앤젤레스(LA) 폭동을 예견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부록으로는 제작의 전과정을 담은 메이킹 필름이 돋보인다.

세트를 짓는 모습에서부터 실제 거주지 흑인들이 영화 촬영으로 겪은 불만과 호기심, 촬영 현장, 쫑 파티를 거쳐 세트장 철거까지를 기록하고 있다. 지역 주민들을 스태프로 기용하고 그들의 의견을 듣는 등, 메이킹 필름 자체도 <똑바로 살아라>가 담고자 했던 흑인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또 다른 부록인 감독의 코멘터리에 한글 자막이 없는 점이 가장 아쉽다.

91년 작인 <정글 피버 Jungle Fever>는 정통 사랑 영화다. 그러나 사랑의 주인공이 할렘가 출신인 흑인 남성과 벤손 허스트 출신의 이탈리아계 여성이니, 단순한 사랑 타령으로 그칠 수 없다.

흑인 남성은 건축 설계사라는 화이트 칼라 계층이고 백인 여성은 그의 여비서지만, 남과 여의 힘의 역학보다 인종 문제가 먼저 그늘을 드리운다. 지금은 흑인 영화계를 넘어 주류 할리우드 영화의 흥행 스타가 된 사무엘 잭슨, 할 베리,

퀸 라티파 등이 조연으로 출연한 <정글 피버>에 대해 감독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정리한다. “인종 차별과 냉엄한 현실을 그린 영화다. 백인 여자가 미의 기준이 되고 흑인 남자는 초능력 호색가라는 허구를 깨고 싶었다"

95년 작 <클라커즈 Clockers>는 마약 딜러가 된 19살의 흑인 청년 스트라이크가 주인공이다. 위장병으로 피를 토하는 스트라이크의 유일한 낙은 모형 기차 수집. 어머니에게마저 외면당한 이 범죄 세계의 청년은 이웃집 어린 소년 타이론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그러나 그가 딛고 있는 범죄 세계의 업보 때문에 타이론은 살인자가 되고, 스트라이크는 두목에게 쫓겨 다른 도시로 떠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자신의 모형 기차를 부수고 떠나는 청년의 모습 너머로 붉은 노을이 진다. 공원 벤치에 앉아 마약을 사갈 젊은이들을 기다리는 스트라이크 일당은 “사는 게 부정적인데 어떻게 긍정적으로 사냐”고 한탄한다.

스트라이크 때문에 타이론이 살인자가 된 사실을 알게 된 흑인 경찰은 스트라이크를 패며 “너희들이 왜 짓밟히는지 아느냐”고 절규한다. 남자 아이는 20살까지 총이나 마약으로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 여자 아이는 13살까지 임신하지 않고 고등학교를 마치는 것이 흑인 부모의 소망이란 현실을 과장하지 않고 보여주는 영화다.

옥선희 DVD 칼럼니스트


입력시간 : 2003-10-02 10:46


옥선희 DVD 칼럼니스트 oksunny@ymc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