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킹 네드(Waking Ned)'

[영화 되돌리기] 욕망과 '공공의 선'의 기묘한 결합
'웨이킹 네드(Waking Ned)'

우리 사회에는 죄를 짓지도 않았는데 사람들의 눈을 피해 숨어 사는 사람이 종종 있다. 섹스 스캔들의 여자 주인공이나 엄청난 액수의 복권 당첨자 등이 그런 경우에 해당할 것이다. 주위의 지나친 관심이 부담스럽기 때문일 터이다.

하지만 전자의 경우는 대중의 관음증과 여성의 성에 대한 이중적 잣대가, 후자의 경우는 공익 기금조성의 명분이 인생역전을 위한 한탕주의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영화 ‘웨이킹 네드(Waking Ned)’ 는 영국의 복권열풍을 소재로 한 영화다. 하지만 흔히 복권하면 떠올려지는 인간의 탐욕과 파멸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다. 영화는 아일랜드의 작은 바닷가 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총 주민수 52명에 평균 연령이 40~50세. 한평생 모진 바닷바람을 온 몸으로 맞으며 살아가고 있는 이들은 ‘돈벼락’ 한 번 맞아보는 게 소원인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마을의 누군가가 복권에 당첨되고 주인공 재키와 마이클은 당첨자 찾기에 혈안이 된다. 친하게 지내면 콩고물이라도 얻을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순진한 계산에서다. 그런데 복권 당첨자는 당첨 사실을 안 순간 쇼크사한, 재키와 마이클의 오랜 친구 네드 드바인. 이제부터 죽은 네드 드바인 대신 당첨금을 타기위한 마을 주민들의 집단 사기극이 시작된다.

이 사기극의 음흉한 뒷거래는 이렇다. 재키가 죽은 네드 행세를 하고 마을 주민들은 복권회사 직원에게 이 모든 사실을 숨겨주는 대가로 당첨금을 나눠 갖게 된다는 것이다. 욕망의 덩어리인 복권이 커먼 웰스(공공의 재산)로 탈바꿈하는 순간이다.

이제 마을은 ‘공공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전에 없었던 동질감을 갖게 된다. 이 사기극에 동참하는 자만이 ‘공공의 선’을 행하는 자요, 그렇지 않고 이탈하는 자는 ‘공공의 적’이다. (영화에서 유일하게 집단행동을 거스르는 자는 교활하고 영악하게 묘사되는 마녀 할머니이다.

할머니의 최후는 이 영화의 클라이막스다.) 마을의 최고 선을 상징하는 성당 주교도 예기치 못한 집단 사기극의 공모자가 되면서 주민들은 그야말로 완전범죄를 꿈꾼다.

하지만 본래 복권이란 게 교육이나 노인복지와 같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그 수익금을 사용하라고 만들어진 거다. 한 마디로 높은 당첨금을 미끼로 개인의 욕망을 모아 누군가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 때문에 관객은 주민들이 복권회사 직원을 상대로 사기극을 벌이는 것을 보면서 ‘어차피 벽촌마을 노인복지에 쓰여질 돈이라면 이들에게 지나친 법적, 도덕적 책임을 묻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라고 자신도 모르게 이들 범죄의 방조자가 된다. 어쩌면 당첨금을 공평하게 ‘나눠먹는’ 마을 주민들의 선량함에 감화됐을지도 모른다.

영화는 복권을 매개로 공동체 의식을 되살리게 되는 한 마을을 보여준다. 제목 ‘웨이킹 네드’는 네드를 되살린다는 의미 뿐만 아니라 잃어버렸던 마을 주민들 사이의 일체감을 일깨워준다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주민들이 당첨금을 받은 다음 마을을 떠나거나 돈을 둘러싸고 서로 반목과 질시를 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볼 수도 있지만 굳이 영화의 행복한 결말에 적나라한 현실의 거울을 들이대고 싶지는 않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맨몸으로 헬맷만 쓰고 오토바이를 타는 주인공 할아버지 모습만 보더라도 영화의 리얼리티는 충분히 살아나고 있으니까.

정선영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3-10-02 15:41


정선영 자유기고가 startvideo@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