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계 투로행성으로의 초대

[영화되돌리기] 릴로와 스티치
은하계 투로행성으로의 초대

‘디즈니야 픽사야?’미국에서 <매트릭스 2>를 밀어내고 개봉 첫 주에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 영화 <니모를 찾아서>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할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분명 ‘디즈니-픽사’에서 제작했다고 하는데 영화 로고에는 픽사의 로고인 ‘룩소 주니어(꼬마 스탠드)’가 등장하기 때문이다.(디즈니의 로고는 멋진 궁전이다)

사실 <니모를 찾아서>에서 디즈니는 투자와 배급을 했을 뿐이고 알짜배기는 모두 픽사가 해낸 것들이다. 이른바 아웃소싱, 외주제작인 셈인데 <라이온 킹> 이후 제대로 된 흥행작을 내지 못한 디즈니가 택한 고육지책의 하나이다.

디즈니의 흥행 신화는 디즈니의 2인자이자 역대 애니메이션 흥행 수익 1위인 <라이온킹>의 총제작 지휘자 제프 카첸버그가 스티븐 스필버그와 손잡고 ‘드림웍스’를 만들고, 디즈니 애니메이터 존 래세터가 애플사 회장 스티브 잡스를 만나 ‘픽사’를 만들면서 깨지기 시작했다.

디즈니의 흥행 부진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아무래도 가장 큰 이유는 식상함이다. 가족주의에 대한 집착, 주인공들의 습관성 가무(歌舞), 권선징악의 무료한 결말, 더 이상 놀랍지 않은 기술력 등등. 관객들이 디즈니에 등을 돌린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디즈니도 변화의 몸부림을 치고 있다. 관객들이 변화의 낌새를 느끼지 못한다는 게 안타깝지만 말이다. 그 새로움의 징조를 영화 <릴로와 스티치>에서 맛볼 수 있다.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디즈니의 평생 로고 하얀궁전. 그런데 조금 덜컹대기 시작한 이 궁전이 순간 화면 위로 올라간다. 이건 뭔가 상서로운 조짐이다.

궁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관객이 도착한 곳은 어느 먼 은하계 투로행성. 이 곳에서 한 과학자는 유전자 조작을 통해 파괴본능을 지닌 생명체 626호를 만들고 우주 연방총사령관은 착한 구석이라곤 찾아 볼 수 없는 이 괴팍한 생명체를 먼 행성으로 귀향보내기로 결정한다.

귀향 가는 도중에 지구로 도망간 626호는 하와이 섬에 떨어지고 이 곳 원주민 소녀 릴로를 만난다. 그렇다면 그 뒷얘기는? 사악한 동물이 원주민 소녀의 관심어린 보살핌으로 개과천선하고 이 둘이 626호를 뒤?아 온 외계인과 대항해 싸워 승리한다? 그럼 역시 디즈니식 그 밥에 그 나물인가?

속단하긴 이르다. 우선 사악한 626호의 캐릭터는 신선하다. <스타워즈>식 오프닝으로 등장해서 <고질라>처럼 건물을 파괴하고 엘비스 프레슬리 복장으로 노래하는 모습을 보면 성인 관객을 보다 적극적으로 포용하겠다는 디즈니의 의도가 엿보인다. 아마도 <인어공주>나 <라이온킹>을 좋아했던 관객이 20~30대가 되었으리라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결손가정에서 언니와 단둘이 사는 릴로도 괴팍하고 심술맞기가 스티치 못지 않지만 나름대로 아픈 가정사를 가슴 속에 품고 있어 미워할 수 없는 인물이다. 그러나 대책없이 사고를 쳐 주 관객층인 어린이들에게 비교육적일 수도 있다는 이유로 영화등급이 PG(어린이는 부모의 동반하에 관람가능)로 떨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 영화가 다른 디즈니 영화들과 다른 점은 결코 선량하지 않고 대중친화적이지 않으면서 흡입력을 갖고 있는 릴로와 스티치라는 인물의 등장이다. 물론 이렇게 생동감 있는 인물들이 영화 마지막에 디즈니가 그렇게 숭배하는 가족주의 앞에서 한 순간에 무너진다는 점은 실로 안타깝지 않을 수 없다.

이 영화에 쓰인 2D나 수채화 기법, 핸드 드로잉 역시 주목할 만하다. 왜 디즈니가 갑자기 시대에 역행하는 방법을 쓰고 있는가? 대답은 이렇다. ‘Technology does matter?’ ‘ NO! Story does matter!’ 그리고 릴로와 스티치는 이 점에서 어느 정도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입력시간 : 2003-10-05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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