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되돌리기] 어글리 우먼


중국고사의 동시(東施)라는 이름의 유명한 추녀가 등장한다. 이 여성은 같은 마을에 사는 천하일색 서시(西施)를 부러워한 나머지 서시의 찡그리는 얼굴까지 따라 했다고 해 후세에까지 놀림을 받았다.

우리나라 소설에서도 인상적인 추녀가 한 명 나온다. '주근께 투성이 얼굴에 여러 겹 주름이 잡힌 이마, 시들고 거칠고 마르고 누렇게 뜬 품이 공팡슬은 굴비 같았다'는 여성, 바로 현진건의 소설에 나오는 B사감이다. 이들이 실제로 무지몽매했거나 성질이 고약했는지 알 길은 없으나 적어도 그들의 비호감의 용모가 이들의 대한 부정적 평가에 한 몫 했으리라고 본다.

미국에서 보통 이상의 외모를 가진 사람이 보수가 더 높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듯이 잘 생긴 외모에 대한 사회적 프리미엄은 부정하기 힘들다. 반대로 평균에 못 미치는 외모의 소유자들에 대한 너그러움의 결핍, 이유없는 인색함도 분명한 현실이다.

영화 '어글리 우먼'(원제 La Mujer Mas Fea Del Mundo, 세상에서 가장 추한 여인)은 이러한 사회적 편견에 상처 입은 여성이 미녀들을 상대로 무차별적 살인을 저지른다는 것이 줄거리이다.

1982년 스페인 마드리드의 한 병원에서 간호사와 모든 아기들이 경악할만한 희대의 추녀 롤라 오테로가 태어난다. 그리고 2010년 12월 31일. 한 노파가 잔인하게 살해된다. 수녀복을 입고 노파를 난도질한 범인은 바로 얼굴이 무기였을 법한 추녀 롤라. 그녀는 미스 스페인 출신의 노파를 살해함으로써 미녀 표적살해라는 전대미문의 범행을 저지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녀를 뒤쫓는 형사 아리바.

그는 추녀였던 롤라가 유전자 혁명에 힘입어 당대 최고의 모델이 된 사실을 알아챈다. 그리고 롤라의 다음 범행 장소가 미스 스페인 선발대회임을 알고 살인을 막기 위해 행사장으로 잠입한다.

그렇다면 왜 추녀에서 미녀로 탈바꿈한 그녀가 잔인한 살인을 감행하는 것일까? 그것은 추녀라는 이유만으로 친구들과 남자, 사회에서 거부당했던 경험이 그녀에게 치유될 수 없는 상처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흔히 아름다움이 거죽 한 꺼풀이라고 하지만 인간은 그 한 꺼풀의 거죽 때문에 일희일비하는 나약한 존재이고 그 나약함은 때론 위압적 폭력의 형태로 표출되기도 한다.

영화의 또 한가지 의문은 그녀가 얼마나 추했는가 하는 점이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범인을 드러내놓고 시작한다는 점에서 스릴러 영화식의 긴장은 없지만 사건의 열쇠가 되는 롤라의 추한 얼굴을 영화 마직막 순간에 보여줌으로써 관객의 호기심을 증폭시키고 있다.

하지만 판도라의 상자를 끝까지 열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을 가져본다. 미와 추에 대한 판단은 주관적이기 때문에 롤라의 추한 얼굴도 영원한 관객의 상상에 맡기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른다.

비록 영화의 결론의 내면의 아름다움을 통한 진실한 사랑이라는 상식을 재확인하는데 그친다 하더라도 모호하고 불안한 미래세계를 스페인 특유의 붉은 색감으로 표현한 예술적 감수성은 충분히 느껴 볼 만 하다. 스페인식 사이파이(Sci-Fi)영화를 보는 맛도 색다르다. 음성으로 조작되는 텔레비전이나 자기부상 자동차, 메탈느낌이 강하게 풍기는 미녀들의 패션, 단조로우면서도 과감한 인테리어 등으로 묘사되는 스페인 식 미래세계는 상투적이긴 하지만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그려지는 음울한 디스토피아의 느낌과는 다르다.

또한 화려하고 장식적인 미스 스페인 선발대회 장면은 흡사 광고나 뮤직비디오를 보는 것처럼 현란하다. 스페인 내전과 프랑코 독재 정권을 거친 후 절제되지 않은 이미지의 과잉을 즐기는 스페인 문화의 현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정선영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3-10-06 11:49


정선영 자유기고가 startvideo@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