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되돌리기] 볼링 포 콜롬바인


1999년 4월 20일 아침. 여느 때와 다름없는 미국의 하루가 시작됐다. 대통령은 연례행사 마냥 전쟁게임에 몰두해 있었고 콜로라도주 리틀톤의 두 소년은 볼링을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오전 11시 30분, 리틀톤의 콜롬바인 고등학교에서 폭발음과 함께 900발의 총성이 들렸다.

범인은 그 날 아침에 볼링을 쳤다던 에릭과 딜런. 그 후 트랜치 코트 마피아로 불리던 이들의 방에서는 마릴린 맨슨의 시디가 발견됐다. 미 보수주의자들이 그토록 경멸하는 쇼크록 그룹? 미 언론은 간단히 사건을 풀어나갔다. 따돌림을 당한 아이들이 폭력적이고 악마적인 문화에 경도돼 불특정 다수에게 복수를 한다는 것. 하지만 여전히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남아 있다. 왜 그들은 총을 들었는가?

다큐멘터리 ‘볼링 포 콜롬바인’은 콜롬바인 총기난사 사건의 가해자들이 왜 그렇게 쉽게 총을 들었을까 하는 의문에서부터 시작된다. 총기소지가 합법이어서 어디서나 총을 구하기 쉬웠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지만 감독은 미국 사회 안으로 더욱 깊숙이 들어가 본다.

‘이들이 살았다던 리틀톤에 미군이 베트남전 공습 때 썼다던 B-52폭격기가 있었지. 그러고 보니 리틀톤의 록히드사에서 만드는 로켓이 콜롬바인 고교를 지나 공군기지로 운반되지.’ 다큐멘타리 감독이자 각본, 내레이션을 맡고 있는 마이클 무어는 이들이 살았던 마을에서 낯설지 않은 메케한 탄약냄새를 맡는다.

하지만 감독의 포연의 추억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53년 이란 정권 전복, 73년 칠레 쿠데타 배후 조정, 99년 코소보 전쟁, 2003년 이라크 침공 등 역사상 미국이 탄약냄새에 도취되지 않은 적은 별로 없었다. 아니, 미국이라는 나라는 뿌리 깊숙이 총탄이 배어 든 나라라고 감독은 일갈한다. (사우스 파크를 그린 만화가 맷 스톤이 미국의 역사를 요약 정리해주는 장면을 주목하라.)

하지만 폭력과 침략으로 점철된 미국의 역사가 폭력적인 미국의 현재를 설명할 수 있을까? 그렇게 따지자면 1,200만 명을 학살한 독일, 중국과 우리나라를 점령한 일본, 알제리인을 학살한 프랑스, 인도를 지배한 영국은 어떤가? 감독은 보다 명쾌한 답을 찾아내기 위해 미국과 마찬가지로 총기소지가 합법인 캐나다를 방문한다. 그리고 이 곳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낸다.

문을 열어 놓고 사는 캐나다인과 문에 이중, 삼중으로 잠금장치를 하는 미국인의 차이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공포심(Fear)이다. 다큐멘터리 속에 등장하는 글래스너 교수는 ‘공포의 문화(Fear of Culture)’라는 책을 통해 미국의 언론, 기업, 정치가들이 양산해내는 공포의 허상에 대해서 지적한다.

이들은 흔히 테러와 범죄, 마약에 대한 시민들의 우려를 증폭시킴으로써 시청률을 올리고(언론), 돈을 벌고(기업), 표를(정치가) 얻는다. 예를 들어 언론과 정부가 생화학 테러가 발생할지도 모른다고 사람들을 위협하자 모두들 너나 할 것 없이 방독면을 구입해 군수업체가 테러 특수를 누리고, 정부는 국가안보를 이유 삼아 일사불란한 지도적 구심을 갖추게 된다.

결국 이들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사회 공포를 조장하고 시민들은 불안 속에서 폭력적인 성향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게 감독의 얘기다.

이 다큐멘터리는 굳이 장르를 말하자면 에세이적인 다큐멘터리로 구분할 수 있다. 감독의 자의적인 해석이 곳곳에 묻어나기 때문에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은 이 다큐멘터리의 허점을 낱낱이 지적해내기도 했다. 하지만 의도적이건 아니건 간에 감독의 조작이 다큐멘터리의 진실성까지 훼손하지는 않는다.

‘볼링 포 콜롬바인’ 만큼 통렬하고 신랄한 농담과 집요하면서도 날카로운 시선이 재미있게 어우러진 다큐멘터리는 이전에 분명 보지 못했다.

정선영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3-10-06 15:10


정선영 자유기고가 startvideo@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