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과 俗의 갈림길

[영화 되돌리기] 신과 함께 가라
聖과 俗의 갈림길

‘Adios(아디오스)’는 스페인어로 작별 인사이다. 그런데 이 단어는 원래 ‘Vaya Con Dios’라는 문장에서 축약된 말로, 뜻은 ‘신과 함께 가라(Go with God)’이다. 영어의 ‘Good Bye’가 ‘God be with you’에서 나온 것과 같다. 하지만 ‘Go with god’과 ‘God be with you’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신과 함께 가야할 땐, ‘신’에 방점이 찍히고 신이 당신 안에 머물 땐 ‘당신’에 방점이 찍히기 때문이다. 즉, 능동적으로 신의 뜻을 따라가는 것과 수동적으로 신의 은총을 받는 것의 차이다.

영화 ‘신과 함께 가라’는 속세에 던져진 세 명의 수도사가 갖가지 욕망에 미혹되다가 결국 신의 뜻을 따르게 된다는 구도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예수’,‘소돔과 고모라’, ‘모세’와 같이 종교적 프로파갠더 영화는 아니니 크게 거부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영화는 북부 독일 마을의 한 수도원을 배경으로 시작한다. 이 곳의 수도사들은 찬양으로 신의 세계로 들어가려는 ‘칸토리안’ 교단 소속으로 현재는 4명만이 남아 수도원을 지키고 있다. 1693년 카톨릭 교황으로부터 이단이라는 이유로 파면당한 후 교세가 급격하게 약화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작스런 재정적 지원의 중단과 원장 수도사의 서거로 세 명의 수도사들은 수도원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이들은 마지막 남은 칸토리안 수도사들을 찾아 이탈리아로 향한다.

학문에 대한 열정이 강한 벤노 신부, 지적이지는 않아도 순박한 타실로 신부, 어린 나이에 수도원에 들어와 아직은 세상에 호기심이 많은 아르보는 수도원을 떠나 처음으로 그들을 향해 미소짓는 욕망과 대면한다. 벤노 신부는 지적욕망에 흔들리고 타실로 신부는 혈육의 정에, 아르보는 성욕으로 방황의 시기를 맞는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낯설지 않은 코미디가 펼쳐진다. 자동차도 전화기도 사진기도 본 적이 없다는 이들 수도사들이 번화한 남부 독일에서 느끼는 문화적 생경함이 이 영화가 구사하는 유머이다. 조폭이 절에 가는 것이나, 중세 기사가 현대로 오는 것이나, 아니면 아이가 어른세계로 가는 것과 이 영화가 보여주는 유머는 사실 별다른 차이가 없을 수도 있다. 물 밖의 물고기(Fish out of water)류의 코미디는 거의 코미디 영화의 공식과도 같으니까.

하지만 예측가능한 농담이라 해서 이들의 침묵수행이 희화화 되는 장면이나 둥글게 둘러서서 기도를 올리다가 조폭으로 오인받는 상황이 주는 재미가 반감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문제는 익숙한 유머를 얼만큼 낯설게 만드느냐고 이 영화는 독일 코미디 영화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관객들에게 충분히 낯설게 다가온다.

이 영화의 또 다른 이야기 축은 칸토리안 교단의 규범서를 가로채려는 가톨릭 교회의 음모이다. 가톨릭 교회와 칸토리안 교단과의 갈등은 독일의 신구교의 마찰을 의미한다. 영화는 이 두 종교의 갈등을 교회음악을 통해서 보고 있다. 종교개혁 이전의 카톨릭 교회는 예배 시간 중에 악기의 사용을 금하고 오직 단성부의 음악을 사용하도록 주장했다.

그 후 루터가 회중찬송(코랄)을 부활시키면서 독일에서는 ‘칸토라이(Kantorei)’라고 불리는 성가대가 설립되었다. 하지만 30년 전쟁(1618-1648)이 끝나고 독일 남부지역이 다시 카톨릭으로 돌아서면서 ‘칸토라이’는 크게 쇠퇴한다. 영화의 칸토리안 수도사들은 이러한 코랄 찬송의 명맥을 이어나가는 자들이다. 영화의 클라이막스에서 세 명의 수도사가 독일어 찬송가를 부르자 가톨릭 신부가 이를 제지하려고 모습에서 이 두 종교의 갈등을 읽어볼 수 있다.

영화는 신을 따르되 인간임을 부정하지 않고, 번화한 세속에 빠지되 신념을 버리지는 않는 수도사들을 통해 경건한 웃음을 선보이고 있다. 경건함만을 택하든 웃음만을 택하든 간에 이들의 아름다운 노랫소리는 한동안 귓가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정선영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3-10-07 16:41


정선영 자유기고가 startvideo@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