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투구의 선거판

[영화되돌리기] 일렉션
이전투구의 선거판

미국의 독립다큐멘터리 감독 마이클 무어는 자신의 저서 ‘멍청한 백인들(Stupid white men)’에서 부시 미 대통령을 ‘백악관 집무실의 무허가 거주자’라 비난한 바 있다. 무어의 발언이 지나친 감이 없지는 않지만 2000년 부시정권이 출범할 당시 미국 시민들 대다수가 부시를 ‘대법원이 선출한 대통령’이라며 야유를 보내기도 했다.

2000년 대선은 어찌됐든 프랑스 정치학자 토크빌이 그토록 상찬한 미국의 민주주의에 먹칠을 한 선거인 모양이다.

흔히 선거는 민주주의의 축제요 꽃이라고 얘기된다. 하지만 축제는 간혹 불온한 세력에 의해 난장판이 되기 일쑤고 꽃은 피다 지다 부침이 심하기 마련이다. 영화 일렉션은 고등학교 선거판에서 빚어지는 사건들을 통해 미국의 정치를 풍자하고 있다.

조지워싱턴 고등학교의 역사, 도덕선생이자 이상적인 민주주의를 꿈꾸는 매칼리스터는 매사에 의욕적이고 도전적이며 투쟁적이기까지 한 트레이시가 못마땅하다. 저렇게 야심많고 계산적인 아이는 필시 훗날 제왕적 통치자가 될 것이 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결국 메칼리스트는 트레이시가 단독으로 출마해 있는 학교 회장 선거판에 교내 축구선수이자 인기남 폴을 밀어넣는다.

그런데 야심만만한 직업정치가와 음험한 모략가의 얼굴마담 사이의 싸움이 되어 버린 이 판에 난데없이 끼어 든 불청객이 또 한 명 있었다. 바로 폴의 레즈비언 동생 테미. 테미는 자신을 차버린 여자친구가 오빠와 사귀는 사실에 분개하고 선거판에 뛰어든 것이다.

이제 선거는 야비한 직업정치가와 대중영합주의자(포퓰리스트), 그리고 냉소적인 아나키스트의 삼파전이 된다. 하지만 선거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테미는 투표도 하지말고 학생회도 없애라는 파격적인 유세발언을 했다가 후보자격을 박탈당한다. 두 명의 후보만 두고 치른 선거에서 매칼리스터는 비열한 방법까지 동원해 트레이시를 막아보려 한다.

사실 트레이시에 대한 그의 부정적인 평가 이면에는 트레이시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던 동료교사가 파면당한 데 대한 앙갚음이 자리잡고 있다. 여기에는 제자의 성적매력이 자신의 안정된 삶을 파멸시킬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작용한다. 지나치게 도덕과 윤리적 가치에 집착하는 메칼리스터는 사실은 비윤리적이고 부도덕한 자신의 본능을 위장하려고 했던 것뿐이다.

하지만 고결해보이는 그의 위장술도 옆집여자와의 불륜으로 낭패를 본다. 민주주의적인 사회와 건전한 가정생활을 꿈꾼 메칼리스터는 결국 비민주적인 방법으로 선거를 조작하고 불륜이라는 이름의 사랑에 빠지고 만다.

영화는 메칼리스터라는 인물을 통해 정치에서 도덕주의자가 때론 기회주의적인 정치가보다도 위험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야비한 정치가의 속셈은 민주주의를 갉아먹지만 도덕이라는 명분은 하도 강력해서 심지어 민주주의까지 집어삼켜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독재자들일수록 반공도덕과 국민윤리를 강조하는 경향이 강하다.

영화 일렉션은 비록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하이틴 영화이지만 권모술수에 능한 정치인이나 권력의 꼭두각시, 대중영합주의자가 등장하는 한 편의 정치영화이기도 하다. 영화는 시종일관 모든 등장인물에 대해 냉소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는데, 이는 미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조소의 표현이다. 한 마디로 ‘누가 당선되든 나아지는 게 있는가? 선거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후보자들과 당선자밖에 없지 않은가’라고.

정선영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3-10-22 18:15


정선영 자유기고가 startvideo@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