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자들의 탈 사회화

[영화 되돌리기] 어바웃 슈미트
은퇴자들의 탈 사회화

프랑스의 철학자 알랭은 자신의 저서 ‘행복론’에서 “파리 경시청장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 이유는 경시청장이란 사람은 언제나 예측을 불허하는 새로운 조건 하에서 행동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매번 결단력있는 행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자기 힘으로 쾌락을 손에 넣는 자이기도 하다.

즉 알랭이 말하는 행복의 조건은 건설을 하든 파괴를 하든 의욕을 갖고 주체적인 노동을 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하지만 인간의 노동은 유통기한이 있다. 기한이 지나 부패된 식료품이 슈퍼에서 폐기되듯이 정년이 지나 노쇠한 노동력은 사회에서 퇴출된다. 그리고 (사회적)노동에서 해방된 퇴출자들에게 남은 건 불안과 회한, 절망에서 마음껏 허덕일 수 있는 자유뿐이다. 유쾌하지 않는 사색의 시간을 견뎌내야 하는 은퇴자들. 그들의 쓸쓸한 모습을 대변하는 자가 바로 영화 <어바웃 슈미트>의 주인공 워렌 슈미트이다.

보험회사 계리사인 슈미트는 66세가 되어 정년퇴임을 맞는다. 하지만 한 평생을 회사에 바친 대가로 가족을 부양하고 주변 사람들의 신망과 존경을 받아온 그에게 하루아침에 사회의 주변인으로 돌아오는 일은 당최 쉬운 일이 아니다. 이제서야 자신을 되돌아볼 여유가 생겼다고는 하지만 스스로를 되돌아보려니 눈가의 주름과 흘러내리는 목살, 발목에 튀어나온 정맥밖에 남은 게 없는 듯 하고, 주변인을 되돌아보려니 둔부에 살이 너무 많이 붙어버린 뚱보 마누라만 보인다.

결국 뭔가 새로운 일에 도전해야 한다고 느낀 슈미트는 한 달에 22달러씩 내는 아프리카 어린이 돕기 후원회에 가입한다. 그리고 며칠 뒤 그는 탄자니아에 사는 엔두구라는 남자아이의 후원자이자 양부가 된다.

하지만 나른하고 한가했던 슈미트의 삶은 부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흔들리기 시작한다. 설상가상으로 하나밖에 없는 딸이 자신이 그토록 반대하는 다단계 판매조직에서 물침대를 파는 변변찮은 남자와 결혼을 하겠다고 하자 그는 점점 더 의기소침해진다. 어떻게 해서든 딸의 결혼을 막고싶은 아버지는 딸네 집을 향해 여행을 떠나고 이때부터 영화는 자아를 찾아 떠나는 노인의 성장 이야기가 된다.

고향 집, 모교, 발길이 떨어지는 이 곳 저곳을 돌아다닌 슈미트는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바탕으로 미래의 새로운 삶을 찾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가볍지만 결연한 마음으로 딸을 찾아간다. 그러나 그 곳에서 그는 자신이 들어갈 자리가 없는 딸의 현재와 미래의 삶을 대면하고 황량한 자신의 일상으로 되돌아온다.

집으로 돌아온 슈미트를 맞이한 것은 탄자니아의 고아 소년 엔두구가 보낸 편지와 그림 한 장. 미국이라는 공간에서 완전히 존재감을 상실한 슈미트는 처절하게도 머나먼 아프리카의 탄자니아에서 자신의 존재이유를 느끼게 된다. 고작 22달러로 그는 누군가에게 아직은 의미있는 존재이다.

영화는 슈미트가 엔두구에게 보내는 편지를 직접 읽어 나가는 내레이션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은퇴자의 담담한 고백일 것 같지만 사실 이 영화는 코미디가 양념처럼 가미된 드라마이다. 감독의 전작이 유머와 냉소로 버무려진 영화 <일렉션>인 만큼 이 영화에도 알렉산더 페인 감독 류의 따가운 통찰력과 경쾌한 유머가 드러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삼팔선’(직장인 38세면 퇴직 또는 전직 등의 선택을 해야 한다는 뜻), ‘사오정’(45세 정년), ‘오륙도’(56세까지 근무하면 도둑), ‘육이오’(62세까지 직장에 남아있으면 ‘오적’)와 같은 씁쓸한 신조어가 유행하고 있는 요즘 이 영화를 통해 실직 이후에 중장년층이 겪는 성장통을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정선영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3-11-04 15:40


정선영 자유기고가 startvideo@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