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 신동 르브론 제임스, '마이클 조던 후계자'로 스포트 라이트

[미 프로농구 NBA] 고졸 루키, 황제 권좌를 넘보다
농구 신동 르브론 제임스, '마이클 조던 후계자'로 스포트 라이트

바로 등 뒤에서 동료 B가 고공 패스 해준 공을 잡지도 않고 코트 왼쪽 사이드 라인을 파고 들던 A 선수가 '원 터치'로 튕겨준 공이 골밑으로 정확히 날아갔다. 그곳에 자리잡고 있던 또 다른 동료 C가 이 공을 냉큼 받아 손쉽게 득점으로 연결했다.

이 장면에서 질문 하나. 농구 좀 한다는 선수라면 누구나 B와 C가 수행한 플레이 정도는 기본일 터. 그러나 A가 거의 반사적으로 골 밑의 동료에게 한치의 오차 없이 연결한 것 같은 어시스트는 아무나 할 수 있을까. 물론 가끔은 그럴 수도 있겠지만,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이와 같은 고난도 플레이를 하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농구 곡예사들이 경연을 펼치는 NBA(미국프로농구)에서 내로라 하는 선배들도 혀를 내두르는 18세 천재가 요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고교를 졸업하자마자 프로에 뛰어든 이 선수는 은퇴한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의 후계자로 불릴 정도의 극찬을 받고 있다. 서두의 장면은 그가 프로 무대 첫 시범 경기에서 선보인 묘기다.

르브론 제임스(203cmㆍ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미국 최고 권위의 스포츠 주간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이하 SI)가 NBA 시즌 개막에 맞춰 수많은 톱스타들을 제쳐 두고 특집으로 다뤘을 만큼 대단한 새내기다. 농구의 본고장인 미국 왜 그토록 그에게 열광하는 것일까.


1억달러 이상의 가치

'지금껏 많은 돈을 받으며 화려한 팡파르 속에 등장한 선수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 빠른 시간 내에, 이토록 많은 것을 손에 쥐며, 이만큼 큰 관심 속에 첫 걸음을 내딛은 선수는 어떤 프로 스포츠에도 없었다.' 르브론 제임스의 데뷔에 대한 SI의 화끈한 평가다. 도대체 그는 어떤 대우를 받으며 프로 무대에 이름을 올린 것일까.

고교를 졸업한 지 불과 몇 달 뒤인 지난 5월, 제임스는 세계적인 스포츠 용품 업체인 나이키와 7년간 9,000만 달러(약 1,080억원)라는 천문학적인 용품사용 계약을 맺으며 미국에 큰 화제를 뿌렸다. NBA 신인지명 절차가 있기도 전이었다.

그런 후 전체 신인 1순위 지명으로 만년 하위팀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입단이 결정된 뒤, 그가 받은 돈 또한 고졸 루키로서는 이례적인 3년간 1,080만 달러(약 130억원)의 거액이었다. 구단 안팎에선 제임스가 1억 달러 이상의 가치를 지녔다는 평가 덕택에 가능한 계약이었다고 말한다. 사일러스 클리블랜드 감독은 "40년 이상 코트를 누볐지만 이런 경우를 본 적이 없다. 무서운 일이다"며 솔직한 느낌을 털어놓기까지 했다.

제임스는 세인트 빈센트-세인트 매리 고교 재학 시절부터 고교 선수로는 드물게 전국적인 지명도를 얻었다. 그의 플레이를 팬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스포츠 전문 채널 ESPN은 사상 처음으로 고교 농구 경기를 미국 전역에 생중계하기까지 했다.

고교 3년 동안 평균 30.4 득점, 9.7 리바운드, 4.9 어시스트를 유지한 빼어난 활약상. 한때는 평균 50득점의 가공할 득점력을 보이기도 한 제임스는 일찌감치 수십 년에 한번 나타날까 말까 한 신동으로 불리웠다. 소속 학교를 수 차례 우승으로 이끌고 매번 MVP도 도맡다시피 한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어린 나이의 선수에게 엄청난 관심과 찬사가 쏟아졌다. 자칫 오만과 방종으로 흐르게 되는 독소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제임스는 정신적 시험을 현명히 이겨내는 데서도 또래들과는 남다른 구석이 있었다. "나는 오로지 팀 동료들이 더 나아지도록 하고 싶을 뿐이다." 그가 고교 시절부터 되뇌는 말이다. 팀 플레이를 우선하고 동료들을 배려하는 원숙함을 어린 나이에 이미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조던과 매직존슨을 합쳤다

나이키가 신출내기 고졸 스타에게 1억 달러에 육박하는 거액을 베팅한 것은 미래의 빅스타에 대한 '입도선매'가 아니다. 얼마간의 적응기와 조련이 필요했던 코비 브라이언트, 케빈 가넷 같은 현재의 고졸 톱스타들과 제임스는 차원을 달리한다는 평가다.

NBA에 데뷔하는 것이 곧 NBA를 지배하는 것과 동일한 의미를 가졌던 마이클 조던, 매직 존슨, 래리 버드 등 전설의 농구 황제들과 동일선상에서 봤을 때, 비로소 제임스에 대한 올바른 대우가 이뤄진다는 것. 심지어 일부 전문가들은 '마이클 조던과 매직 존슨 등을 합쳐 놓은 듯한 선수'라는 찬사를 보내기까지 한다.

경기를 이해하는 능력과 동료들의 팀워크를 극대화하는 구심점 역할 등에 있어서는 마이클 조던의 신인 시절보다 오히려 낫다는 칭찬까지 듣고 있는 선수가 바로 제임스다. 오죽 뛰어난 재능이었으면 황제 조던까지 혀를 내둘렀을까.

소속팀인 클리블랜드도 그에게 기대하는 바가 크다. 지난 시즌 17승 65패로 꼴찌에 머물렀던 클리블랜드는 제임스를 지명하자마자 '팀의 부활이 시작됐다'며 흥분했다. 한 코칭스태프는 "우리는 5단계로 선수 능력을 종합 평가하는데, 제임스는 그 이상인 6"이라며 큰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11월 7일 현재 제임스의 클리블랜드는 개막 4연패의 부진한 출발을 보이고 있지만, 제임스만은 그간의 평가와 기대가 거품이 아니었음을 실력으로 입증하고 있다. 4경기 평균 15.3 득점, 8.3 리바운드, 7.5 어시스트 등으로 공격 전분야에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는 것. 슈팅의 정확도와 수비력에 약간의 결점이 발견되기도 했지만, 그가 클리블랜드의 새로운 리더가 되리라는 것은 충분히 확인시켜 줬다.


제임스 효과…흥행 보증수표

제임스의 연고지 클리블랜드는 프로스포츠 구단의 성공과는 지독히도 인연이 먼 곳이었다. 64년 NFL(미 풋볼리그) 클리블랜드 브라운스가 슈퍼보울 직전까지 진출했던 것이 마지막 영광일 정도. 그런데 약관의 농구 스타 한 명 덕택에 르네상스를 맞고 있다는 전언이다.

제임스의 변호사 프레드 낸스는 "모든 종류의 소매점들이 클리블랜드 시내로 몰리고 있고, 시민들은 제임스 효과 덕분에 도시가 훨씬 더 활기를 되찾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자연스레 부동산 붐도 뒤따르고 있다는 소식이고 보면, 18세 농구천재가 새로운 기회의 땅을 건설한 셈이다.

제임스 효과에 크게 고무되는 것은 연고 도시뿐이 아니다. NBA라는 거대 프로 스포츠 산업 전체가 그에게 목을 메다는 실정이다. 조던이 떠난 이후 리그의 흥행이 적잖이 흔들리면서 새로운 슈퍼 스타를 찾던 NBA에게 제임스는 그야말로 구세주다. 제임스가 속한 클리블랜드와 경기를 갖는 상대팀들마저도 그의 대활약을 갈구하는 상황은 아이러니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리그 흥행이란 점에서도 그가 얼마만한 보증 수표인지가 단적으로 드러나는 셈이다.

미국의 광고주들에게 가장 새롭고 강력한 모델로 자리매김하는 것은 당연한 여파다. 한 스포츠마케팅 회사의 CEO는 "광고주들의 성공을 보증하는 스포츠 선수 모델로는 최상의 출발을 했다“며 “마이클 조던이나 타이거 우즈보다도 낫다"고 평가한다.

힙합 문화에 친숙한 '넥스트 제너레이션'(Next Generation)이 새로운 소비 주체로 떠오르고 있는 미국에서, 바로 그 세대의 표상인 제임스가 조던이나 우즈보다 더 강력한 호소력을 지닌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해 보이는 주장이다.

자본주의와 프로 스포츠의 메카인 미국에서 이제 막 첫 걸음을 뗀 어린 거인 르브론 제임스. 대개의 성공한 흑인과 마찬가지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농구공 하나로 헤쳐 나온 그가 조던의 신화를 다시 쓸 날도 머지 않아 보인다.

김윤현 기자


입력시간 : 2003-11-13 14:29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