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같은 동화

[영화되돌리기] 슬리피 할로우
악몽같은 동화

<원초적 본능>, <쇼걸>, <베티블루 37°2.> 파격적인 남녀상열지사를 담고 있는 이 영화들은 모두 몇 년 전 ‘무삭제판’이 나왔다. 대개 남녀배우의 화려하고 정밀한 정사장면이 디지털 기술로 완전 복원되는 경우라 할 수 있는데, 사실 개봉시기를 고려해 보면 무삭제판 공개가 지나치게 늦은 감이 있다.

물론 개봉 후 30년이 지나서야 잘려나간 장면들을 볼 수 있는 영화도 있었다. 바로 로마의 폭군 칼리큘라의 잔인성이 고스란히 담긴 영화 <칼리큘라>가 그 주인공이다. <칼리큘라> 정도는 아니지만 개봉 후 14년이 지나서야 노컷 장면을 볼 수 있는 영화가 한편 있다. 1999년 제작된 영화 <슬리피 할로우>. 이 영화는 올해 초에 무삭제 DVD가 출시되는 감격을 누렸다.

영화는 워싱턴 어빙의 동화 ‘슬리피 할로우의 전설’(The Legend of Sleepy Hollow)을 토대로 각색한 것으로, 슬리피 할로우라는 외진 마을의 살인사건 해결에 관한 이야기이다. 주인공 크레인(조니 뎁)은 이성에 의한 판단을 하는 수사관. 하지만 고문으로 자백을 받는 불합리한 수사 체제에 대해 직언을 함으로써 미움을 받아 살인사건이 발생한 슬리피 할로우로 파견된다.

그리고 이미 4명의 희생자가 ‘목 없는 기병(Headless Horseman)’에 의해 모두 목이 잘려나간 그 곳에서 크레인은 엽기적인 살인사건의 진실을 파헤쳐 나간다.

팀 버튼의 세계는 크레인이 슬리피 할로우에 도착하면서부터 열린다. 그의 전 작품들 <가위손>이나 <유령수업>, <배트맨> 등에서 보여지듯이 영화의 배경은 동화적이면서 기괴하다. 정교한 세트로 이야기를 펼칠 공간이 깔리고 나면, 불완전한 매력이 넘치는 조니 뎁이 팀 버튼을 대신한다.

<배트맨>에서 익히 경험했겠지만, 주인공은 수퍼맨이 아니다. 조니 뎁이 맡은 크레인은 약간의 충격에도 기절할 정도로 겁이 많다. 심지어, 아이를 방패 삼아 총을 겨누고 있기도 한다. 크레인의 내면적 갈등 상황 역시 배트맨의 세계와 유사하다. 배트맨이 조커에게 부모님이 살해당한 후 범죄자에 대한 극도의 증오를 표출하듯이 크레인은 아버지가 어머니의 영혼을 정화한다는 잘못된 신념으로 인해 어머니가 마녀사냥을 당하게 되자 불합리한 아버지에 대한 적개심을 키우게 된다.

게다가 두 캐릭터 모두 불완전함을 감싸주는 여성과의 만남을 통해서 결핍을 채워나간다. 그리 만만치 않은 크레인 역은 팀 버튼과 잘 어울리는 조니 뎁이 훌륭히 연기해내고 있다.

그렇다면 동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고 ‘목 없는 기병’이라는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는 이 영화가 왜 가위질을 당해야 했을까? 그 이유는 목이 뎅강 뎅강 잘려나가는 장면 때문이라지만 사실 삭제에 대한 기준은 상당히 주관적이다.

예를 들어 영화 <레옹>은 레옹과 마틸다의 부적절한 관계를 연상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둘이 한 침대에 있는 장면들이 잘려나갔을 정도니 말이다. 그래도 이 영화들은 뒤늦게라도 무삭제판이 나와서 다행이다. 안타깝게도 영화 <록키호러 픽쳐쇼>는 여전히 그 진면목을 알 수 없으니까.

정선영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3-12-10 11:10


정선영 자유기고가 startvideo@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