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피지기면 홈런질주" 모교 경북고서 몸 만들며 일본 투수 장단점 파악에 골몰

이승엽, 열도 정벌 카운트 다운
"지피지기면 홈런질주" 모교 경북고서 몸 만들며 일본 투수 장단점 파악에 골몰

“너희들을 밟고 일어서야 빅리그가 보인다.”

지난 연말부터 모교인 경북고에서 개인 훈련중인 국민타자 이승엽(지바 롯데 마린즈)이 몸 만들기와 함께 일본서 맞붙을 퍼시픽 리그 투수들에 대한 연구에 들어갔다. 낯선 싸움터에서 처음 맞닥뜨릴 상대의 장단점을 미리 살펴보는 것은 고수로서 당연한 자세. 다행스러운 점은 적수들이 생각보다 무섭지 않다는 사실이다. 비디오 테이프에 담긴 퍼시픽 리그 에이스들의 투구 모습은 국민타자를 주눅들게 하기엔 약과(?)였던 것.

물론 몇몇 투수들에 대해선 경계를 풀지 않았지만, ‘충분히 공략할 만한 상대’라는 게 이승엽의 총평이다. 평소 겸손하고 신중한 그의 성격에 비춰 상당한 자신감을 드러낸 셈이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그래도 그들은 한국 야구보다 한 수 위라는 일본을 대표하는 투수들 아닌가. 천하의 이승엽이라 하더라도 단단히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까닭이다.

다이에 ‘영건’의 방패를 뚫어라

2003 시즌 저팬시리즈 우승의 영광은 다이에 호크스에게 돌아갔다. ‘열혈남아’ 호시노 센이치 감독이 이끄는 한신 타이거즈의 돌풍을 가까스로 잠재운 1등 공신은 젊은 투수들이었다. ‘원조 아시아 홈런왕’ 왕정치 감독의 지략도 한몫 했지만 팀 마운드를 책임지는 젊은 대들보들의 역할이 컸다는 게 중평이다. 특히 양팀이 3승3패로 팽팽히 맞선 저팬시리즈 7차전에 등판해 완투승을 따낸 신인 왼손투수 와다 쓰요시(22)는 팀을 챔피언으로 이끈 주역. 올 시즌 14승5패, 방어율 3.38의 빼어난 성적을 올리며 퍼시픽 리그 신인왕에 오른 차세대 에이스다.

그는 지난해 11월 일본 삿포로에서 열린 올림픽 예선에서는 한국전 선발로 나와 삼진 9개를 솎아내는 등 우리 타자들을 철저히 농락해 한국 팬들에게 낯익은 인물이기도 하다. 컨트롤이 정교한 데다 포크볼, 슬라이더 등이 예리해 같은 왼손잡이인 이승엽에게 제법 애를 먹일 것으로 보인다. 이승엽은 그러나 크게 걱정하지 않는 눈치다. “와다의 공이 좋긴 하지만 못 칠 정도로 위협적이지는 않았다”는 것.

와다외에도 다이에 호크스에는 특급 투수들이 있다. 지난 시즌 다승, 방어율, 승률 3관왕으로 일본의 사이영상이라 할 수 있는 사와무라상을 수상한 사이토 가즈미(26)가 대표적이다. 190cm 장신에서 내리꽂는 강속구와 다양한 변화구를 겸비한 사이토는 지난해 피칭에 완전히 눈을 뜬 늦깎이 에이스다.

그러나 사이토도 이승엽에게 넘지 못할 벽은 아니다. 공이 알려진 것처럼 빠르지 않은 데다 피칭 중간에 한 템포 멈추는 사이토 특유의 폼 역시 노려 치는 스타일의 자신에게는 오히려 안성맞춤이라는 게 이승엽의 진단이다.

또 저팬시리즈 최우수선수에 빛나는 왼손투수 스기우치 도시야(23), 시속 150km대 강속구와 날카로운 슬라이더가 일품인 오른손 정통파 아라가키 나기사(23) 등도 이승엽과 멋진 승부를 펼칠 만한 호적수다.

이승엽에게 다이에 호크스 ‘영건’들과의 승부는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띤다. 다이에 호크스는 지난 수년간 퍼시픽 리그를 호령한 전통 강호인 데다, 이승엽의 소속팀인 지바 롯데 마린즈에겐 천적이나 다름없는 팀이기 때문이다. 이승엽이 한국산 최고 용병의 진가를 인정 받으려면 ‘타도 다이에’의 선봉에 서야 한다. 롯데 구단측이 다이에 투수들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대비를 이승엽에게 특별히 당부한 것도 그래서다.

마쓰자카 ‘복수혈投’를 쳐라

현재 일본 야구를 대표하는 투수라면 흔히 마쓰자카 다이스케(23ㆍ세이부 라이온즈)를 첫손가락에 꼽는다. 고교 3년 시절이던 98년 열도 최고의 야구 축제인 고시엔 대회를 석권하며 초고교급 투수로 각광받았던 마쓰자카는 프로에 입단해서도 일찌감치 거물 본색을 드러내며 일본의 간판 투수로 자리잡은 선수다.

일본?야구 渙?〉冗觀壙?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선배들보다 더 낫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출중한 기량을 가진 마쓰자카는 지난 시즌에도 16승7패, 방어율 2.83의 정상급 성적을 올리는 등 전성기를 구가 중이다.

이처럼 투수로서는 모든 것을 이뤘다고 할 만한 마쓰자카에게도 2004 시즌엔 또 다른 목표가 하나 추가됐다. 이승엽에 대한 복수혈전이 그것이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일본 에이스의 자존심에 지울 수 없는 생채기를 낸 ‘원수’가 제 발로 호랑이 굴에 찾아 온다는데 그냥 있을 마쓰자카가 결코 아니다. 마쓰자카는 일본 언론을 통해 “이승엽을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며 4년 만의 재대결에 임하는 절치부심을 드러내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승엽 역시 마쓰자카와의 피할 수 없는 일전을 침착한 마음으로 대비하고 있다. “예전에 홈런을 치고 결승타도 쳤지만 그건 운이었다고 생각한다. 마쓰자카는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열도 정벌에 나선 국민타자와 그가 최후에 꺾어야 할 적장의 진검승부는 이미 신경전으로 막이 오른 셈이다.

퍼시픽의 어깨들을 잠재워라

이승엽이 다이에 영건들과 마쓰자카를 넘어선다 하더라도 퍼시픽 리그엔 그를 위협하는 쟁쟁한 어깨들이 여전히 많다. 니혼햄 파이터스의 마운드를 이끄는 투톱이자 토종 에이스인 가네무라 사토루(27)와 용병 카를로스 미러벌(30)도 대표적이다. 10승대 선발 투수인 두 사람은 절묘한 제구력과 날카로운 변화구를 주무기로 갖추고 있어 이승엽과의 수싸움이 볼 만할 것으로 전망된다.

긴테쓰 버펄로스의 신진 에이스 이와쿠마 히사시(22)도 요주의 인물. 데뷔 후 해마다 가파른 성장세를 나타낸 이와쿠마는 2003 시즌 15승을 올리며 마침내 긴테쓰의 기둥으로 우뚝 섰다. 각도 큰 변화구를 잘 구사하는 데다 안정된 경기 운영능력까지 갖춰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한화 시절 ‘라이언 킹 잡는 독수리’로 성가를 드높인 구대성(34ㆍ오릭스 블루웨이브)과 이승엽의 ‘골육상쟁’도 호사가들에겐 엄청난 관심사다. 구대성은 이승엽에게 낯선 타국 생활에서 정을 붙일 반가운 선배이기 전에 그라운드에선 반드시 넘어서야 할 강적이다. 만약 천적인 구대성을 손쉽게 요리할 수만 있다면, 다른 좌완 투수들도 지레 겁을 먹을 것이 분명하다.

일본의 자존심 거인을 넘어라

만년 하위팀인 지바 롯데 마린즈가 이승엽이 가세했다고 해서 올 시즌 파란을 일으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구단의 바람대로 롯데가 퍼시픽 리그 정상에라도 오른다면 그 다음은 더 흥미진진한 시나리오가 기다린다. 이승엽이 센트럴 리그 우승팀과 맞붙는 상황이 전개되는 것. 그 경우 상대팀은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될 가능성이 절반 이상이다. 지난해 한신 돌풍에 휘말려 우승을 놓치긴 했지만, 요미우리는 센트럴 리그에서 영원한 ‘넘버 원’ 구단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상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이승엽이 일본 최고의 우완으로 불리는 마쓰자카와 정규리그서 완승을 거둔 뒤, 그와 쌍벽이라는 요미우리의 에이스 우에하라 고지(27)와 저팬시리즈에서 만나는 것 말이다. 일본 최고 수준의 제구력과 포크볼로 무장한 우에하라일지라도 자신보다 ‘반 수’ 정도 위인 마쓰자카를 무릎 꿇린 이승엽 앞에서는 전의부터 상실하지 않을까. 섣부른 상상에 불과하지만, 이승엽이 철저한 준비만 한다면 일본 투수 공략은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게 일본야구 전문가들의 견해다.

김윤현 기자


입력시간 : 2004-01-02 17:48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