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나미의 홀인원] 발칙하고 엉뚱한, 재미있는 골프


지구에 ‘쿵’ 하고 운석이 떨어진다. 그 운석을 인간은 “우주의 배설물”이라고 했다. 큰 운석에서 나오는 냄새 때문이었다. 냄새를 없애기 위해 인간은 운석 위에 유리막을 만들었다. 운석은 너무나 예쁜 축구공을 연상케 했다. 그런데 예쁘게 만들어졌던 큰 운석이 갑자기 없어졌다.

외계인이 가져간 것이다. 그리고는 그 예쁜 것을 다른 외계인 손님에게 팔았다. 그리고는 이 외계인은 같은 방법으로 지구의 다른 곳에도 운석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인간들은 또 그 큰 운석에서 나는 냄새를 없애려고 같은 방법으로 예쁜 유리막을 만들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나무’의 내용이다.

베르베르의 광적인 팬이기도 한 필자는 이 소설을 읽고 베르베르를 정말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9살 때 이미 단편 소설을 썼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정말 이런 상상력과 기발한 착상은 필자를 한도 끝도 없이 매혹시킨다. 왜냐하면 그는 필자에게 골프에 대한 상상력을 불어넣어주기 때문이다.

가끔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한다. 골프공 안에 칩을 넣는다. 머리핀이나 모자에 칩을 조정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든다. 그러면 그 때부터 만사 형통이다. 자, 메이저대회 최종일 최종라운드다. 바람은 방향을 바꿔가며 이리저리 불어댄다. 리더보드 상단에 오른 선수들은 클럽 선택에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다. 그린은 또 얼마나 까다로운 지 모른다. 라이를 몇 번이나 살펴보지만 확신이 서지 않는다. 캐디도 자신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나는 괜찮다. 드라이브면 드라이브, 아이언샷이면 아이언샷, 퍼팅이면 퍼팅, 공이 자기가 알아서 날아간다. 하지만 갤러리들은 아무 것도 모른 채 예쁘고 공을 잘치는 나의 매력에만 흠뻑 빠져있다.

말도 안 되는 상상이지만 어쨌든 기분좋고, 또 재미가 있다. 이렇게만 된다면 굳이 땀 흘려가며 연습을 할 필요도 없고, 여자 골퍼들은 체중을 늘리기 보다 체중을 줄이고, 피부 관리에 좀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도 있겠다.

과학의 발전은 정말 눈 부시다. 때로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10여년 전 영화 속에서 보았던 장면들이 현실로 다가오는 경우도 숱하다. 스포츠 또한 과학의 영향을 적잖이 받았다. 그러나 스포츠는 과학의 발전 속도 만큼 빠르게 발전할 수 없다. 인간의 정신과 육체가 주(主)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흔히 스포츠는 인간이 만든 가장 솔직하고 정직한 대화라고 한다. 골프로 말하자면 혼자서 하는 운동이기 때문에 더 정직한 운동이지 싶다. 그런데도 갤러리들을 속이고, 대회 관계자들까지 속이는 이런 발칙한 상상을 하다니…. 하지만 이 사실을 아는가? 억지 같지만, 상상력이 좋아야 골프를 잘 칠 수 있다. 특히 숏게임에서 트러블 샷을 할 경우 기발한 상상력을 가진 골퍼들이 돋보인다.

우승은 타이거 우즈만 하고, 소렌스탐만 한다. 그들은 기록제조기같다. 다른 선수들은 이들의 화려함을 돋보이게 하는 들러리 같은 느낌이 들 때도 많다. 솔직히 어떨 때는 그들의 우승 소식이 달갑지 않게 여겨지기도 한다. 그래서 허구한 날 컷오프에 걸려 탈락하는 무명 골퍼가 대회 마지막 라운드에서 우즈나 소렌스탐을 꺾고 극적인 우승을 하는, 그래서 세계 골프팬들을 깜짝 놀래키면서 신선한 충격을 주는 일들을 기대한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이렇게 좀 엉뚱한 상상을 해 봤다. 새해니까 뭐 이런 터무니없는 상상을 해도 덜 밉지 않겠는가 싶은데….

입력시간 : 2004-01-07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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