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히어로의 시대적 사명

[영화되돌리기] 엑스맨
슈퍼히어로의 시대적 사명

‘슈퍼 히어로에게는 시대적 사명이 있었다.’ 프랑스에서 만든 4부작 다큐멘터리 ‘만화 속 영웅 슈퍼 히어로’의 부제이다. 1930년대 미국이 세계 패권을 장악하려는 야망을 표출하면서 탄생한 전 지구적 영웅 ‘슈퍼맨’에서부터 1940년대 범죄와의 전쟁을 벌이던 ‘배트맨’까지 미국의 슈퍼 히어로들은 그야말로 ‘역사적 사명’을 띄고 미국 땅에 태어났다. 하지만 60년대 이후 등장하는 슈퍼 히어로들은 이전과는 다른 탄생설화를 지니게 된다. 1963년 ‘마블 코믹스’에서 탄생한 ‘엑스맨(X-Men)’이 그 가운데 하나다.

60년대 반전분위기를 등에 업고 탄생한 ‘엑스맨’ 시리즈는 알 수 없는 이유로 기형적으로 진화한 돌연변이들이 지구인들과 공존공생하기 위해 사악한 돌연변이들과 대결을 벌이는 것을 줄거리로 하고 있다. 이들이 기형적으로 진화한 원인이 밝혀져 있지는 않지만, 적어도 이 시대의 슈퍼 히어로들이 진보의 사생아이거나 사회 이반세력으로 기형적으로 진화한 사회의 불안과 아픔을 안고 있는 인물들이라는 점은 알 수 있다.

영화 ‘엑스맨’은 2000년 ‘유주얼 서스펙트’를 만든 감독 브라이언 싱어에 의해 탄생됐다. 브라이언 싱어는 마블 코믹스의 만화 ‘엑스맨’에서 중요하고도 인기있는 캐릭터를 골라 영화 속에 등장시켰다. 텔레파시를 지니고 있는 프로페서 X를 비롯해 눈에서 광선을 쏘는 사이클롭스(신화 속의 외눈박이 괴물), 염력을 지닌 진, 기상을 제어할 수 있는 스톰, 상대의 능력을 흡수하는 로그, 자기 치유능력을 지닌 울버린과 자기장과 금속을 다루는 매그니토 등이 주요 등장인물이다.

영화는 갑작스럽게 늘어난 돌연변이들을 정책적으로 관리하기위해 정부가 ‘돌연변이 등록법안’을 통과시키려고 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차별적인 돌연변이 등록 법안에 반대하는 매그니토 세력은 인간과 전쟁을 준비한다. 그런데 영화에 나오는 돌연변이 등록법안은 1947년 일본에서 외국인 등록령을 발령해 재일교포들에게 차별적인 지위를 부여하던 일이나, 우리나라에서 불법 체류 노동자에게 체류 확인을 동록하게 해 단속을 수월하게 하려는 절차를 연상시키고 있다.

간혹 돌연변이의 존재를 껄끄러워 하는 인간들의 시선에서 영화 속 돌연변이가 성적 소수자, 동성애자의 메타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볼 수 있다. 즉 영화 속 돌연변이들은 공상과학 영화에만 나오는 괴물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부당한 권력에 의해 차별받는 사회적 약자이자 소수자들인 셈이다. 차별적인 돌연변이 등록 법안에 반대하는 돌연변이들이 인간과 전쟁을 벌이는 SF 영화면서 동시에 차별적인 대우에 항거하는 소수자들의 인권영화. 영화 엑스맨은 돌연변이가 지닌 상상력의 공간 덕분에 단순한 만화영화가 갖는 스토리의 한계를 조금은 극복하고 있다.

현재 2편까지 나온 엑스맨은 머지 않아 3편까지 나올지도 모른다. 눈썰미가 좋은 관객이라면 2편의 마지막 장면의 강물에서 ‘피닉스(불사조)’의 형상을 놓치지 않았을 것이다. 2편에서 죽은 진의 만화 속 또 다른 이름이 바로 피닉스로, 이는 영화 마지막에서 앞으로 진이 부활할 수 있음을 예고하고 있다. 여타의 슈퍼 히어로 영화와 달리 다양한 캐릭터들의 성찬이 볼만한 영화 엑스맨. 캐릭터에 대한 사전지식을 알고 영화를 보는 것이 원작이 있는 이 영화를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다.

정선영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4-01-09 17:42


정선영 자유기고가 startvideo@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