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살아난 파워피칭으로 부활 날개짓, 미 언론도 '10승 이상' 전망

박찬호, 텍사스의 희망으로 다시 선다
되살아난 파워피칭으로 부활 날개짓, 미 언론도 '10승 이상' 전망

메이저리그의 ‘코리안 특급’ 박찬호(31ㆍ텍사스 레인저스)는 진정 부활의 날개를 활짝 펼칠 수 있을 것인가.

2001년 겨울 5년간 6,500만 달러라는 몸값 대박을 터뜨리며 텍사스에 새 둥지를 틀었으나 부상 등으로 2년을 허송했던 박찬호가 재기의 청신호를 켰다. 미국 애리조나 서프라이즈 스프링캠프에 참가 중인 그는 최근 시범경기에서 예전의 불 같은 강속구에 근접하는 구위를 선보이는 등 달라진 모습을 선보여 올 시즌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부풀리고 있다. 코칭스태프 등 구단 관계자들과 상당수 야구 전문가들도 박찬호의 ‘화려한 컴백’을 조심스레 점치는 분위기다.

‘코리안 특급’의 새 출발을 점치게 하는 포인트를 짚어 본다.

- 되찾은 투구 폼

LA 다저스에서 뛰던 전성기 시절의 박찬호는 호쾌하면서도 시원스레 공을 뿌리는 투구 폼이 트레이드 마크였으나, 허리 부상 악화 탓에 수시로 부상자 명단(DL)에 들락날락했던 지난 2년 간은 그런 모습을 전혀 볼 수 없었다. 투구 때 체중을 받치는 오른쪽 다리는 일찍 무너지기 십상이었고, 그러다 보니 키킹을 하는 왼쪽 다리도 들어올리는 둥 마는 둥 피칭하기에 급급했다. 몸 상태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외관상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박찬호는 올 스프링캠프서 확연히 달라진 투구 폼을 보여주고 있다. 전성기 시절의 다이내믹한 투구 폼을 거의 회복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 먼저 투구 때 체중 이동의 메커니즘을 살펴 보자. 일단 축족이 되는 오른쪽 다리가 지난해처럼 일찍 무너지는 현상이 없어졌다. 왼쪽 다리의 키킹 동작도 한결 높아졌다.

이처럼 몸의 중심 축을 꼿꼿이 세운 상태서 공을 놓을 때까지의 동작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면서 공에 힘이 실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박찬호의 부탁을 받고 투구 폼을 진단, 교정해준 ‘투수 조련의 대가’ 김성근 전 LG 감독도 “체중 이동이 무척 좋아졌다. 볼을 릴리스 하는 높이도 머리 위로 올라와 스피드가 늘었다”며 박찬호의 바뀐 투구 폼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 직구 스피드와 제구력 굿

투구 폼을 되찾으니 구속도 살아나고 있다. 박찬호는 두 차례 시범경기에서 최고 시속 151km의 직구를 기록해 코칭스태프를 미소 짓게 했다. 그는 전성기 시절 평균 시속 150km대 초반의 직구를 손쉽게 뿌리고 155km가 넘는 광속구도 심심찮게 포수 미트에 꽂아대는 메이저리그 정상급의 파워 피처였다.

아직 직구 스피드가 그 때만큼 나온 것은 아니지만 지난해 한번도 기록하지 못한 150km대 직구를 스프링캠프에서부터 선보인 것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라는 게 대체적인 견해다. 물론 150km대 직구를 꾸준히 던지는 게 아니라는 점을 들어 완전한 강속구 부활에 회의적인 현지 언론의 반응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허나 통상적으로 정규리그에 들어가면 대부분 투수들의 직구 구속이 스프링캠프 때보다 4~5km 정도는 올라가는 것이 상례이고 보면, ‘여름 사나이’로 불리는 박찬호의 본격적인 스피드업은 그리 비관적인 것이 아니다.

들쭉날쭉한 제구력이 몰라보게 좋아진 것도 고무적인 일이다. 지난 2년 동안 박찬호는 스트라이크를 던지는 것 자체가 힘겨워 보이는 때가 많았던 게 사실이다. 투구 폼이 흐트러지다 보니 그런 탓도 있었겠지만, 주무기인 직구의 구속이 떨어져 스트라이크 존으로 공을 뿌리기가 두려웠던 것이다. 지난 두 차례 시범경기의 내용을 분석해 보면 그 같은 수렁에서 빠져 나왔음을 알 수 있는 희망적인 징표들이 적지 않다.

3월7일 캔자스시티와의 시범경기 첫 등판에서 3이닝을 던진 박찬호는 3안타, 2볼넷을 내주고 1실점으로 막아냈다. 투구수 40개에 스트라이크는 26개. 12일 두번째 시범경기 샌프란시스코전에선 4이닝 동안 4안타, 1볼넷을 허용하며 3실점. 투구수는 51개에 스트라이크가 37개였다. 표면적으로는 신통한 성적이 아니지만, 투구수가 상당히 적은 데다 스트라이크 비율이 꽤 높게 나타났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그만큼 공격적으로 투구를 했고 제구?역시 수준급이었다는 방증인 것이다.

- 이젠 부활만 남았다

박찬호는 스프링캠프에서 가진 청백전이나 시범경기를 통해 잃었던 자신감을 상당 부분 되찾은 것으로 보인다. 훈련장이나 경기장 안팎에서 종종 미소를 내비치기도 하는 등 부진할 때의 어두웠던 표정을 이젠 찾아보기 힘들다.

9개월 만의 첫 실전 등판이었던 캔자스시티전이 끝난 후에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팬들이 반길 만한 심경을 털어 놓기도 했다. “첫 이닝에서는 좀 긴장도 되더군요. 그래도 재미있었습니다. … 두번째 이닝부터는 집중이 잘 되더군요. 포수의 미트만 보이던 걸요.”

옆구리 근육통으로 훈련을 중단했던 다음날 샌프란시스코전을 무난히 마친 뒤에도 피칭 소감을 묻는 질문에 “아주 좋았다. 직구, 커브, 체인지업 등 가지고 있는 레퍼토리를 모두 던졌다. 등판 결과보다 몸 상태에 더욱 만족한다”며 주변의 우려를 말끔히 씻어냈다.

올 시즌 박찬호의 재기에 사활을 걸다시피 한 구단측도 웃음을 되찾았다. 박찬호의 일거수 일투족을 세심하게 지켜보고 있는 톰 힉스 텍사스 구단주가 “올해의 재기 선수가 될 것으로 믿는다”는 애정어린 덕담을 건네는가 하면, 벅 쇼월터 감독은 “거의 대부분의 모습에서 박찬호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다”는 말로 기대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박찬호를 동네북처럼 두들기던 미국 언론들이 그의 부활 가능성에 조금씩 무게를 두는 것도 고무적인 변화다.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되고 강속구만 되찾는다면 10승 이상은 물론 15승도 기대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지난 2년간 칠흑 같은 터널 속에 갇혀 있던 ‘코리안 특급’ 박찬호. 그가 예전처럼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 속에서 부활투를 던지는 장면이 서서히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김윤현 기자


입력시간 : 2004-03-18 15:37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