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위해 몸 던진 아버지의 추억

[영화되돌리기] 아빠를 업고 학교에 가다
자식 위해 몸 던진 아버지의 추억

미국 영화 속에 등장하는 결혼식 피로연에는 항상 신랑 신부가 부모님들과 춤을 추는 장면이 나온다. 대개 신랑 신부가 먼저 춤을 추고 나서 신부와 아버지, 신랑과 어머니, 신랑과 장모, 신부와 시아버지 순서로 춤을 추는데 많은 미국인들이 부모님과 춤을 추는 이 순간을 오래도록 기억한다고 한다. 아버지와 춤을 추었던 기억을 떠올리는 루더 반드로스의 노래 ‘Dance with my father’가 2004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올해의 노래로 선정돼 미국인들에게 큰 사랑을 받은 것을 보더라도 왠지 우리에게는 낯선 광경이 그들에게는 보편적 정서를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그런데 우리가 추억하는 아버지는 고운 신부의 손을 잡고 춤을 추시던 분이 아니다. ‘인사동에서도 종로에서도 제대로 기 한번 못 펴고 큰소리 한번 못 치는 늙고 초라한 아버지(신경림의 ‘아버지의 그늘’ 중)이거나 한쪽 다리를 잃고 전장에서 돌아온 아들에게 버럭 욕지거리를 하다가도 힘겹게 아들을 등에 업던 무뚝뚝한 아버지(하근찬의 ‘수난이대’ 중), 죽음을 앞둔 아들이 이불을 뒤집어쓰고 흐느껴 우는 소리를 듣고도 차마 방문을 열지 못했던 과묵한 아버지(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중)처럼 때론 서럽고 서운하고 서글픈 존재가 우리의 보편적 한국인의 정서에 부합하는 아버지이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작고 보잘 것 없이 변해버린 우리의 아버지들. 이런 아버지에 대한 연민을 떠올릴 수 있는 중국 영화 한 편이 있다.

영화 ‘아빠를 업고 학교에 가다’에는 도시로 떠나는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좁고 어두운 우물 속으로 몸을 던지는 아버지가 등장한다. 중국의 한 시골마을. 가난한 형편에 남매를 모두 학교에 보낼 수 없던 아버지는 국자를 돌려서 학교에 갈 자식을 선택하고 국자의 운명에 따라 아들 시와가 학교에 가게 된다. 물자도 충분치 않고 등굣길이 여간 먼 게 아닌데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기대와 누이의 희생을 나 몰라라 할 수 없는 시와는 나름대로 열심히 학교생활을 한다. 하지만 어느 날 폭우로 갑자기 불어난 강물에 동급생이 휩쓸려 가는 것을 목격하고 두려움에 학교를 빼먹고 만다. 어떤 일이 있어도 학교를 가야 한다고 아들을 다그치는 아버지는 친구를 삼켜버린 강물 앞에서 죽음의 공포를 경험한 아들을 몸소 등에 업고 등교를 시킨다.

삶의 어려운 고비 고비마다 초라하고 거친 두 손을 내밀어 독려해주던 가족 덕분에 어느새 시와는 도시의 사범대학에 진학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아들이 훌쩍 커버린 그 성장의 세월동안 아들의 아버지는 인생의 두렵고 허무한 끝을 향해 부지런히 다가가고 있었다. 아들에게 더 큰 세상을 보여주고 싶은 아버지는 아들에게 병든 아버지를 수발해야 하는 무거운 짐을 덜어주기 위해 우물 속으로 몸을 던지려 하고 시와는 자신의 인생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던 아버지를 업고 그 옛날 아버지와 함께 건넜던 강을 지나 도시로 향해간다.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고 노래한 어느 시인의 말처럼, 연민스런 삶의 길을 힘겹게 걸어왔지만 언제나 제 자식 앞에서는 한없이 모자라는 어설픈 애비가 된다고 고백하는 우리의 외로운 아버지들. 영화는 주인공이 홀로 설 수 없을 땐 두 팔과 두 다리를 모두 내어주다가 어느 순간부터 자식의 두 다리에 의지해야만 서러운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비록 그것이 어설픈 애비의 모습이더라도 초라한 아버지의 자화상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주인공 시와처럼 그들을 등에 업고 가야만 한다. 늙고 볼품없는 그들의 모습이 결국 우리의 자화상이 될테니까.

정선영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4-04-22 15:52


정선영 자유기고가 starvideo@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