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우려먹기의 정점

[영화되돌리기] 백발마녀전
스타 우려먹기의 정점

우리나라 영화 가운데 최초로 홍콩과 국내에서 동시 개봉한 영화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이하 여친소)’가 홍콩에서 흥행돌풍을 일으키고 있다고 한다. 외국의 한 영화잡지에서는 해리포터와 경쟁하는 작품이라고까지 말할 정도니 ‘전지현 브랜드’의 위력이 아시아권에서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때때로 매력적인 배우의 모습은 영화의 내용이나 연기력, 감독의 표현력에 대한 고찰을 뒷전에 밀려나게 하기도 한다.

이러한 스타캐스팅 전략은 1997년 이전, 홍콩영화를 볼 때에는 두드러진다. 당시 주윤발, 장국영, 유덕화, 여명, 장학우, 장만옥, 왕조현 등등 열거하기도 어려운 수많은 배우들이 관객을 흡수하는 매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임청하는 그 대열에 뒤늦게 합류한 별이었다.

임청하는 성룡, 장만옥과 ‘폴리스 스토리’에 출연하기도 하였으나, 국내에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소오강호2-동방불패’(1992)부터이다. ‘동방불패’로 알려진 이 영화는 김용의 무협소설 ‘소오강호’를 기반으로 하는 영화로, 임청하에게 중성적 아름다움을 선물하였다. 그 덕분에 스크린에서의 모습이 30대 후반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였던 임청하는, 1993년 ‘백발마녀전’에서 더욱 매력적인 모습을 선보인다.

양우생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이 영화는 사랑하는 여인을 기다리는 장국영의 멋진 모습과 함께 시작한다. 그가 10년 동안 천설봉에서 죽은 사람도 살리고 흰 머리도 검게 한다는 꽃을 지키며 연인을 기다리는 이유가 바로 영화의 내용이다.

장국영은 정(正)파인 무당에서 자라나, 마교를 멸해야 하는 무림의 차기 맹주 탁일항 역을 맡았다. 하지만 탁일항은 그런 직위에도 불구하고 마교의 교주 밑에서 자라난 랑녀(狼女,임청하)를 만나게 되어,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정과 사(邪)로 양분된 상황에서 갈등하다가, 연일상(탁일항이 랑녀에게 지어준 이름)과 함께 무림을 떠나려 하지만, 무당파 사람들이 몰살당하는 일이 발생하고 만다. 이때, 탁일항을 사랑하게 되어 가혹한 처벌을 감수하고 마교를 떠나 무당을 찾아간 연일상은 무당을 멸했다는 누명을 쓴다. 언제나 자신을 믿겠다고 약속한 탁일항이 맹세를 저버리고 자신을 믿어주지 않자, 슬픔과 분노에 백발로 변해버린 연일상은 떠나버린다. 오해로 떠나버린 연일상을 기다리는 탁일항. 그가 천설봉에서 꽃을 지키는 이유는 바로 이루지 못한 사랑 때문이었던 것이다.

이 영화는 홍콩 영화에서 임청하와 장국영, 두 톱 배우의 스타캐스팅이 최고의 빛을 발한 작품 가운데 하나다. 사실 홍콩 영화가 지닌 가장 큰 맹점은 짧은 기간 안에 다작을 생산해 내는 홍콩영화 풍토상 장르, 스토리, 배우가 모두 ‘그 밥에 그 나물식’이라는 데 있다.

제작 시스템이 주먹구구식일 때 발생하는 문제점인데 이러한 진부한 스토리와 스타독식 관행은 70-80년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홍콩영화의 몰락을 재촉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톱스타의 약발이 더 이상 질 낮은 영화를 지탱해 줄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불황의 끝에서 환골탈태하려는 홍콩영화. 백발마녀의 위력이 한국을 휩쓸었던 왕년의 전성기로 되돌아가려는 홍콩 영화 한 복판에 현재 한국영화 한 편이 있다. 국내에서 한편으로는 ‘엽기적인 그녀’ 아류작으로 폄하되고 있는 영화에서 끊임없는 아류작 생산으로 끝없이 추락한 홍콩영화의 어두운 과거와 함께 1탄의 명성에 먹칠을 한 백발마녀전 2탄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정선영 영화평론가


입력시간 : 2004-06-22 16:17


정선영 영화평론가 startvideo@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