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꿈 위해 돌연 은퇴, 충격해외팬들 호응, 향후 활동 가늠

[추억의 LP 여행] 정미조(下)
화가의 꿈 위해 돌연 은퇴, 충격
해외팬들 호응, 향후 활동 가늠


인기가수 정미조는 75년 8월 선배가수인 김상희, 장미화 등과 함께 재미교포위문 공연을 다녀오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1978년 11년에는 '78년 야마하 동경국제가요제'에 참가하기 위해 동경으로 갔다. 한복을 단정하게 입은 그녀는 김기웅 곡 '아 사랑아'를 시원한 가창력을 자랑하며 불렀다. 결과는 우수가창상 수상. 데뷔 7년째를 맞이한 그녀는 국제가요제에서 수상자가 되는 영광을 이뤄내자 미뤄두었던 화가의 꿈이 되살아났다.

"처음엔 제대로 된 무대에서 좋아하는 노래를 실컷 부를 수 있다는 사실이 그냥 좋았어요 헌데 어느 날 갑자기 붓을 쥐고 있어야 할 손에 마이크가 잡혀 있는 게 낯설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오래 다른 길을 가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미련 없이 은퇴를 결심했지요. 어릴 때부터 키워온 화가의 꿈이 꿈틀거렸습니다." 1979년 10월, 돌연 은퇴와 유학 선언을 했다. 인기절정의 순간이었지만 프랑스 파리로 미술공부를 떠나기 위해 그녀는 미련 없이 가수활동을 접었다. 하지만 급작스런 은퇴선언은 많은 팬들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사실 유학을 앞두고 2년여 동안 활동을 줄여나가면서 틈틈이 불어를 배우는 등 나름의 준비를 했었기 때문에 갑작스런 은퇴는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노래를 사랑했던 팬들을 뿌리치고 찾아간 파리 몽마르트 언덕에 있던 아파트. 팬들의 환호가 대단했던 화려한 가요계 생활에 익숙했던 그녀는 유학 초기 견디기 힘든 고독감에 힘겨운 자신과의 싸움을 벌어야 했다. 파리생활은 곧 '꿈에서 깨어나는 과정'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랑드 쇼미에르 학교와 몽마르트르 언덕에 있던 8층 아파트만을 오가며 묵묵하게 그림에만 전념했다. '한국의 톱 가수'였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된 프랑스 친구들의 강권에 못 이겨 가끔 노래를 부르기는 했지만 노래에 대한 갈증은 더 이상 느끼지 않았다. 화가로서의 제2의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이후 파리국립장식미술학교 석사를 거치고 박사논문을 위해 7년 동안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자료를 모아 파리 7대학에서 '한국의 무신도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82년 모나코 현대 미술 국제 그랑프리전 장려상, 83년 <보부르에서 바라본 지붕들>로 올해잡지사 상을 수상하며 프랑스화단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85년 첫 전시회를 연 그녀의 그림에 대해 파리의 비평가들도 '서로 융화되기 힘든 두 개의 문화를 조화시키는 독창적인 분위기를 지닌 화가'라고 평가해 주었다. 화가로 성공한 정미조는 86년 9월 잠시 귀국해 스캔들 기사로 인해 서먹했던 앙드레 김과 만나 서먹하던 감정을 풀기도 했다. 13년 간의 파리 유학 후 92년 2월 귀국전을 시작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그 해 3월 경남대에서 첫 강단에 섰고 한양대, 경희대 강사를 거쳐 93년 2월 수원대 정식 교수가 됐다. 요즘에는 분당 화실과 압구정동의 집, 수원대학교를 오가며 창작활동과 전시회에 여념이 없다. 귀국 후 개인전만도 9차례나 열렸다.

"강의하고 작업하는 시간이 많아 가수활동 재개는 꿈도 못 꿉니다" 하지만 그는 강의시간이나 전시회, 야유회 때 노래를 불러달라는 학생들과 그녀의 노래를 기억하는 팬들의 요청을 거절하지도 않는다. 변함 없는 노래사랑 때문이다. 그녀의 화실에는 그림과 화구 이외에 한때 정상의 가수였다는 사실을 추억하고 기억할 수 있는 그 어떤 기념물도 없다. 뒤늦게 행복한 가정을 갖게 됐음을 이야기해주는 가족사진도 한 장 없다. 실제로 그녀는 일과 그림에 몰두하다보니 40대 중반의 나이가 된 1993년 3월에서야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사업가 원용계(60)씨와 결혼했다. 아직 자녀는 없다. 단 7년 간의 가수생활이었건만 그는 여전히 히트곡 '개여울'의 가수로 기억된다.

그래서 철저하게 무대를 외면하고 화가로만 살아온 정미조는 팬들의 요청에 응했다. 79년 고별 쇼였던 TBC의 '쇼쇼쇼’이후 22년만인 지난 2001년 10월, KBS 1TV ‘예술극장’에 출연, 75분 동안 자신의 노래와 예술세계, 삶과 인생에 대한 얘기를 털어놓아 관심을 끌었다. 또한 2003년 5월엔 프랑스문화원에서의 개인전 ‘시간의 흐름과 변모’오프닝 행사에서 히트곡 '개여울', '휘파람을 부세요' 등 8곡을 관람객 앞에서 불러 화제가 되었다. 또한 카나다 벤쿠버에서 한국과 캐나다 수교 40주년을 기념해 개최한 초대전에서도 본 행사에 앞서 노래를 불렀다.

2004년, 70~80년대 대중음악의 히트 곡 1백50곡을 cd 7장에 담아 인기를 모으고 있는 편집앨범 "미인시대". 정미조의 "개여울"이 타이틀곡으로 선곡되었다. "한동안은 저를 현직 화가가 아니라 전직 가수로만 보는 데 거부감이 있었는데 이젠 그게 사라졌어요. 오히려 이제는 그림, 노래, 춤에 대한 제 재능과 열정을 모두 고스란히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도 생겨납니다. 언젠가는 대형 무대에서 '종합 예술인'으로서 저의 끼를 마음대로 분출할 수 있는 전시회 겸 콘서트를 열고 싶네요" 하지만 '신보앨범을 내는 등 가수활동 재개는 결코 없을 것'이라고 못을 박는 그녀는 자신의 지난 음악들을 정리한 베스트음반을 내고 싶은 마음을 품고 있다.

최규성 가요 칼럼니스트


입력시간 : 2004-06-24 11:34


최규성 가요 칼럼니스트 kschoi@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