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동기의 골프이야기] 그린 위의 인간 승리


지난 일요일, 함께 대학을 다니던 친구들 3명이 만나서 난생 처음 골프를 하였다. 세 사람 가운데 두 사람은 똑 같은 해에 사법시험에 합격한 다음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또 다른 한 명은 좀 더 늦게 행정고시에 합격한 이후 줄곧 공무원으로 일해 오고 있다. 공무원으로 근무하는 친구는 해외에 나가 있을 때에 골프를 배웠다고 했다. 물론 변호사로 일하는 두 사람 가운데 한 명인 내가 골프를 시작한지는 벌써 20여 년이 되었다. 그리고 나와 그 친구는 신체적으로 아무런 장애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또 다른 친구인 우변호사는 얼른 보더라도 신체적으로 건강하지 않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 모습이다. 그는 처음에 자기가 디스크를 앓고 있는 것으로 알고 오랫동안 치료를 받았다. 그러다가 한참 후에 자신의 지병이 조로증이라는 희귀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듣고 보니 우변호사는 나보다 나이가 어린데 외관상으로는 훨씬 더 든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그는 몸이 구부정하고 걸을 때에도 여간 불편해 보이지 않는다. 특히 그가 스윙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신기로움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상태의 우변호사는 지난해에는 나와 함께 거의 매일 아침 골프연습장에 다녔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약 8개월 동안 그렇게 했다. 그럴 때에 우변호사는 나에게 자신의 목표는 80대를 쳐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다가 지난 12월 중순경부터 연습장에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우변호사가 아예 연습장에 안 나가는 것이 아니라는 소문을 들었다. 즉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 힘이 들어서 나와 함께 가지는 않지만,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연습장에 나간다는 것이었다. 골프연습장에 나가는 시간이 달라지면서, 자연히 올해 들어서는 우변호사와 골프를 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오후에 골프연습장에 다닌다는 소문을 듣기 전까지, 나는 몸이 불편한 우변호사가 골프를 그만 둔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물론 그가 특히 좋아하는 남부골프장에 갈 때에도 연락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난 월요일 우변호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주말에 골프장에 갈 일이 있거든 자기도 한 번 불러달라는 내용이었다. 그 전화가 계기가 되어 우리들은 대학을 졸업한 이래 처음으로 골프장에서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세 사람이 골프장에서 라운딩을 하는 동안 공무원인 친구는, 자기 볼을 치는 것을 잊어버린 듯 멍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우변호사가 볼을 치는 것을 보고 놀라움에 혼이 나가버린 모습이었다. 마침내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지금까지 사람에 대하여 경이롭다는 표현을 써본 기억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우변호사가 볼을 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경이롭다!’라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소변호사야 볼을 보고 치는 것이지만 우변호사가 볼을 치는 것은 눈먼 봉사가 볼을 치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그런데 어떻게 저렇게 정확하게 맞힐 수 있겠느냐?”

그래서 나는 그 친구에게 우변호사의 드라이버 그립을 보여 주었다. 그립이 해어져서 실오라기들이 나풀거리고 있었다. 그런 다음 우변호사에게 손을 보여 달라고 했다. 그의 왼손 엄지의 지문이 있는 부분은 하얗게 못이 박혀 있었다. 그것은 나로 하여금 언제가 TV에서 본 어느 발레리나의 발을 떠올리게 하였다. 이를 본 친구는 부처님같이 온화하고 순한 우변호사의 의지력에 대한 칭찬을 입이 닳도록 했다. 그러자 지난해 80대를 쳐보는 것이 소망이라고 말했던 우변호사가 올해는 70대를 쳐보는 것이 꿈이라고 말하며 싱긋이 웃었다. 나는 그런 우변호사를 보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대 위의 화려함만 보지, 그렇게 되기까지 무대 뒤나 밖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하여는 별로 관심이 없는 듯 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입력시간 : 2004-07-06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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