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동기의 골프이야기] ‘카니시호’에 얽힌 단상


다음은 1997년 9월29일자 어떤 신문의 기사다.

“미국 항공우주당국이 발사 예정인 핵추진 행성탐사 우주선 ‘카니시호’를 둘러싸고 찬반논쟁이 뜨겁다. 우주 여행 애호가들은 28일 백악관 앞에서 우주선 카니시호의 발사를 지지하는 시위를 벌이며 카니시호의 즉각적인 발사를 요구했다. 그러나 이 날 백악관 맞은편 거리에서는 환경운동가들이 33Kg의 플루토늄을 적재한 카니시호의 발사를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환경운동가들은 만약 우주선에 사고가 생겨 핵물질이 지구상으로 유출될 경우 막대한 환경 재앙이 우려된다고 주장하고 ‘ 빌 클린턴 대통령이 카니시호 발사를 승인한다면 그는 지구에 엄청난 재앙을 초래한 인물로 남을 것’ 이라고 경고했다.”

이런 와중에서 카니시호는 당초 1997년 10월13일 발사될 예정이었으나 그 날 거센 강풍과 기술적인 문제점 때문에 한국시간으로 10월15일 오후 5시45분에 발사되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6개월 뒤인 98년 4월27일자 신문에는 카니시호에 관하여 이런 기사가 실려 있었다. “토성탐사선 카니시호가 26일 가속을 위해 금성표면에서 284Km 떨어진 공간을 통과했다고 미국 패서디나소재 제트추진연구소의 관계자들이 밝혔다. 카니시호의 금성 접근 비행은 금성의 인력을 이용, 비행속도를 높이기 위한 것으로 내년 6월 2차 금성접근 비행을 시도하고 이어 99년 8월 지구 근접 비행, 2000년 목성 근접비행을 통해 속도를 더욱 높인 뒤 토성을 향해 순항할 예정이다….”

그리고, 이 기사가 실렸던 날로부터 약 6년 2개월이 지난 2004년 7월2일자 신문에서 나는 이런 내용의 기사를 읽었다.

“미국 유럽의 공동 우주탐사선 ‘카니시-호이겐스호’가 1일 오후 1시12분(한국시간) 토성궤도에 무사히 진입했다고 미 항공우주국(NASA)가 밝혔다. 카니시호는 이날 오후 1시쯤 토성궤도 진입 신호를 처음 보내왔으며 12분 후 하강을 위한 엔진 가동마저 중지함으로써 궤도 진입을 완료했다. 카니시호의 토성궤도 진입은 약 4시간 동안 진행됐다. 카니시호는 1997년 발사된 후 약 35억Km의 우주를 항해하였으며 앞으로 4년간 토성궤도를 76바퀴 돌면서 토성과 토성의 위성들을 탐사하게 된다.”

나는 지난 일요일 아침 골프를 했다. 전날인 토요일 오후, 신문과 방송에서는 태풍 민들레로 인해 엄청난 피해가 예상되니 조심하라는 예보를 내보내고 있었다. 그래도, 7월 초에 우리나라에 큰 태풍이 잘 오지 않았다는, 섬 출신인 나만의 특이한 경험에다 골프에 관한 한 엄청난 복을 타고 났다고 자부하던 나로서는, 골프약속을 취소하지 않았다. 그리고 일요일 아침 비속을 뚫고 골프장을 향했다. 그렇지만 골프장에 도착해서도 그치지 않는 비에, 나는 잠시 골프를 할 것인지에 대하여 망설였다. 그런데 일행 중에 한 분이 주저하는 나를 꿰뚫어 보면서 “무슨 소리야? 나가야지!” 했다. 우리는 그날 18홀을 다 돌았다. 골프를 마치고 사무실에 들렸더니 경비 아저씨께서 태풍 민들레가, 내가 그날 유일하게 더블보기를 하였던 12번 홀에서 헤매고 있을 무렵이었을, 10시경에 소멸되었다고 전해 주었다. 문득 “그렇게 소멸할 태풍을 우리는 예측하지 못했었단 말인가?”라는 의구심이 떠올랐다. 그러자 갑자기 앞서 본 카니시호에 관한 신문 기사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환경론자들의 반대를 지구에 남겨두고 7년이나 항해한 끝에 토성궤도에 진입한 카니시호는 지금쯤 자신의 발사를 반대하던 그 사람들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또한 그때 카니시호의 발사를 반대하였던 환경론자들은 카니시호가 토성궤도에 진입한 사실을 들었을 때도 여전히 클린턴 전 대통령에 대하여 재앙의 원흉이라고 비난하고 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자니 몇 해 전 용인에 소재한 태영골프장의 건설을 반대하던 마을 주민들이 1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에 대해서도 궁금해졌다.

입력시간 : 2004-07-14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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