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동기의 골프이야기] 세인트앤드류스의 골프링크스


세인트앤드류스의 골프링크스는 현재 여섯 개의 대중골프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퍼블릭 골프장이다. 여섯 개의 골프장 가운데 세 개의 챔피언쉽코스가 있는데, 올드코스, 뉴코스, 그리고 주빌리코스가 그것들이다. 그리고 세인트앤드류스의 골프링크스에서는 두 개의 클럽하우스와 드라이빙레인지, 세 곳의 상점이 있다. 세인트앤드류스의 골프링크스에 이와 같은 시설 들이 들어서게 된 유래는 대략 아래와 같다.

세인트앤드류스의 골프링크스가 들어 서 있는 땅은 1123년경에, 처음으로 데이비드 왕에 의해 세인트앤드류스시(市)에 하사되었다. 그 땅은 말하자면 시민의 공동소유지로서 시민이 원하는 바에 따라 어떠한 목적으로 이용되어도 괜찮은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수 세기에 걸쳐 이 땅은 골프장 뿐만 아니라 양들의 사육지, 토끼농장, 그곳을 가로지르는 스월컨 개울가의 빨래터, 궁술 연습장, 승마장, 그리고 산책로 등으로 사용되어 왔다. 그리고 세인트앤드류스에서의 골프는 1400년대에 이르러 시작된 것으로 믿어지고 있다.

확실한 것은 1457년경 당시의 왕 제임스 2세에 의하여 골프금지령이 내려진 사실이다. 제임스 2세는 골프가 많은 젊은이들로 하여금 활쏘기 연습을 게을리 하게 한다는 이유로 금지령을 내렸던 것이다. 골프금지령은 제임스 6세 때까지 계속되었다.

한편 토끼농장은 중세경제에서 아주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세인트앤드류스의 토지를 둘러싼 토끼농장 경영주들과 골퍼들 사이에는 끊임없는 싸움이 벌어졌다. 특히 1797년경 파산한 시의회에서 세인트앤드류스의 토지를 몇 명의 토끼농장주들에게 매각함으로써 토끼농장은 골프장으로 이용되고 있던 토지까지도 잠식하기 시작했다. 세인트앤드류스의 토지를 둘러싼 토끼농장주들과 골퍼들 사이의 싸움은 그 후 약 20여 년간 계속되었다. 그 싸움은 지주이자 골퍼이었던 스트라티럼의 제임스 취이프가 토끼농장을 다 사들이면서 끝이 났다. 땅을 모두 사들인 취이프가 어떤 만찬장에서 참석한 사람들에게 세인트앤드류스의 토지를 골프장으로만 사용할 것임을 선언한 것이다. 그 이후 세인트앤드류스의 토지는 곧 세인트앤드류스의 골프링크스로만 이용되었다.

세인트앤드류스의 골프링크스에서도 올드코스는 골프의 전설과 신비가 넘쳐 나는 곳이다. 또한 그곳에서는 골프에서 가장 극적인 일들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올드코스는 본래 인아웃 각 11개씩으로 되어 있는 22개의 홀로 구성되어 있었다. 한 홀을 마치면 골퍼들은 전 홀에서 두 클럽 이내의 곳에서 티업을 하였다. 그들은 다음 홀에서의 티업을 하는데 사용하기 위하여 홀아웃하면서 한줌의 모래흙을 파가야 하였다. 뒤에 로얄앤에인션트골프클럽으로 발전된 세인트앤드류스골퍼회는 1764년 올드코스의 몇 개의 홀들이 너무 짧다며 통합하기로 결정하였다. 이 결정은 22개의 홀로 구성되어 있던 올드코스를 현재와 같이 18홀로 변모시켰고, 그 후 전 세계의 모든 골프 코스의 표준이 되었다.

또 올드코스가 조성되어 있는 가시나무숲을 지나는 통로가 너무 좁아 같은 홀을 나갔다 들어오는 방법으로 플레이를 하였다. 19세기가 되어 골프가 급속도로 대중화되면서 골퍼들은 서로 다른 조로 플레이를 하는 동안에도 자신들이 같은 홀에서 플레이하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 이를 구분하는 방법으로 첫 아홉 홀에서는 하얀색의 깃발을, 두 번째의 나인 홀에서는 붉은색의 깃발을 사용하는 방법이 일반화되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올드코스 플레이는 시계방향과 그 반대방향으로 병행하여 진행됐으나 톰 모리스가 1번홀의 퍼팅그린을 분리시면서 시계반대방향으로만 진행되기 시작했다.

입력시간 : 2004-07-28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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