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동기의 골프이야기] 골프도 체력이다


지난 금요일 오후 우연히 모 골프장 L사장 사무실에 들렀었다. 평상시에는 좀처럼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던 분이 그날은 자신의 골프에 관해 말했다. 학생시절부터 골프를 시작했다고 했다. 물론 중간에 사업에 몰두하며 얼마 동안 골프를 중단한 적은 있지만, 그래도 전혀 골프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햇수로 따지자면 골프경력이 벌써 20년이 훨씬 넘었다고 했다. 그런 L사장이 요즘 골프를 하는데 심각한 고민이 있다고 했다. 모든 샷의 비거리가 줄어든 것이다. 특히 드라이버의 비거리는 50야드는 줄었단다. 혹시 주말에 약속이 없으면 함께 골프를 하러 갈 수 없겠느냐고 제안하였다. 때마침 약속이 없었던 나는 부랴부랴 이곳 저곳 골프장에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도 휴가철인데다 무더운 날씨가 때문인지 N골프장에 자리가 하나 있었다.

L사장의 신장은 175센티미터, 체중은 65킬로그램 정도 되어 보였다. 굳이 말로 표현하자면 뚱뚱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깡마른 것도 아니었다. 얼굴은 대체적으로 뽀얗고 곱상해서 구리빛 을 넘어 거무스레한 나와 비교하면 누가 보더라도 L사장의 체력이 단단하지 않음을 쉽게 알아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골프장 사장으로 있는 덕에 내노라 하는 프로들도 많이 알고 특히 구옥희 프로에게서 스윙을 지도 받은 적도 있다고 했다. 첫 홀에서 티샷을 하는 것을 보고 있노라니 스윙하는 폼이 나이에 걸맞지 않게 아주 매끄러웠다. 연습장 1개월 다니다 얻어온 볼을 가지고 한강고수부지에서 독학하였던 나와는 달리 L사장은 정식 레슨을 받고 골프를 하였음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첫 홀에서 티샷한 볼은 페어웨이 왼쪽 나무사이로 들어갔다. 2번 홀에서 티샷한 볼은 내 볼에 한참 못 미쳤다. 파3 홀인 3번 홀에서 티샷한 볼은 제대로 맞았다 싶었는데도 그린에 올라가지 못했다. 파5홀인 4번 홀에서의 티샷은 토핑되었다. 그렇게 가다가 9번 홀에서의 티샷도 토핑되어 볼이 그만 연못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러자 L사장이 물었다.

“ 도대체 무엇이 잘못 되었습니까? ” “제가 보기에는 백스윙할 때 왼쪽 어깨가 더 돌아가야 한다고 판단됩니다. 저의 경우에는 왼쪽 어깨가 오른발 엄지발가락까지 가도록 몸을 비틀려고 노력하고 있지요. 백스윙할 때 왼쪽 어깨가 충분히 돌아가지 않으면 다운 스윙시 여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큰 근육을 사용할 수 없게 되지요. 물론 왼쪽 어깨가 충분히 돌아가지 않는 한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팔로만 볼을 치게 되지요. 그 때문에 힘을 실어 볼을 쳐낼 수가 없게 됩니다. 설사 맞는다 해 깎여 맞기 때문에 십중팔구는 슬라이스가 나지요. 그래서 비거리도 나지 않고요…”

렇게 대답하면서도 L사장의 가장 큰 문제점은 체력에 있다고 생각했다. 체력이 뒷받침 되지 않으니 당연히 자신감도 결여되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L사장은 그 날 우리 일행들이 16번 홀에 이르렀을 때에는 라운딩을 거의 포기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목욕탕에 가서 이렇게 말했다. “ 변호사님은 군살이 하나도 없어 몸매도 좋지만 참! 체력이 좋으시네요.”

지난 달 막을 내린 전영 오픈 바로 뒤에 열렸던 US Bank 챔피언쉽 대회 때의 일이다. 국내 언론사에서는 최경주 선수의 우승을 점치고 있었다. 그 이유로 직전에 있었던 전영 오픈에서 우승권에 맴돌 만큼 컨디션이 좋았을 뿐 아니라 대회마다 우승을 넘보는 간판 선수들이 대거 불참한 사실을 들었다. 그러나 나의 예견은 달랐다. 최경주는 불과 일주일 사이에 미국에서 영국을 오가는 장거리 여행을 하며 쉬지 않고 경기에 참여해 우승은커녕 컷 오프 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전영 오픈의 최종라운드가 열리고 있던 로얄트룬의 2번 홀에서 직접 최경주를 보았을 때 최경주도 미켈슨처럼 전영 오픈이 열리기 한 2주 전에 이곳에 왔었더라면 상황이 아주 달라졌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적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최경주는 그 대회에서 컷오프당했었다.

골프가 다른 운동에 비해 상대적으로 체력에 영향을 적게 받는 운동인 점은 틀림없다. 그러나 골프에서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체력이다. 체력이 뒷받침 되지 않는 정신력이나 테크닉은 무용지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프장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은 이를 간과한 채 지나치게 스윙이론에만 매달리는 경향이 있다.

입력시간 : 2004-08-18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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