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전한 세 가지 공포의 맛

[영화되돌리기] 옴니버스 영화 쓰리
허전한 세 가지 공포의 맛

2004년 봄 프랑스 극장가를 강타한 독특한 SF 영화 한편이 있었다. 바로 공상과학만화의 대가인 엥키 빌랄의 영화 임모르텔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유럽식 SF라는 사실 외에도 독특한 점들이 있다. 우선 대사가 영어인데도 불구하고 제작은 프랑스와 영국 그리고 이탈리아가 함께 했고 감독은 유고 출신이고 주연 배우들 역시 다국적 군단이었다. 국적을 초월한 이 영화의 배경은 다름 아닌 뉴욕. 그리고 영화 속에 주요 이야기는 이집트 신화와 비극이다. 이쯤 되면 유럽의 문화통일이 한 편의 영화 속에서 이루어진 듯싶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 영화가 세계를 공략하기 위해 유럽이 연합했다는 데 있다. 대사가 전부 영어였다는 사실은 영화를 제작한 나라라 프랑스라는 것을 생각해 볼 때 획기적인 사건이다.

사실 유럽은 갈수록 대형화되는 할리우드 영화와 경쟁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합작영화 시스템을 정착시켜왔다. 유럽은 워낙 인력 이동이 수월한데다 문화적 이질감도 적어 합작영화가 쉽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아시아도 최근 몇 년 사이 부쩍 합작영화가 늘었다. 최근 개봉한 아시아 3개국 옴니버스 영화 ‘쓰리 몬스터’의 전편인 ‘쓰리’는 2002년 우리나라와 태국, 홍콩에서 동시 개봉한 아시아 3개국 최초의 합작영화이다.

‘조용한 가족’의 김지운, ‘첨밀밀’의 진가신, ‘잔다라’의 논지 니미부트르가 참여한 이 영화는 모두 죽음과 공포를 소재로 하고 있다. 그런데 세 가지 에피소드에는 모두 관객의 허를 찌르는 재미가 숨어 있다. 우선 코믹 잔혹극을 통해서 신선한 웃음을 선사했던 김지운 감독의 변신(마치 ‘장화와 홍련’의 전초전과 같다), 영화 내내 코믹스럽다가 순간 관객을 오싹하게 만들고 마지막에 소름이 돋을 만큼의 감동을 주는 진가신 감독의 뒷심, 그리고 그 어떤 공포보다 가장 무서운 공포인 ‘지루함’으로 일관한 논지의 뚝심! 어쨌든 이 영화는 확실한 세 가지 공포를 보여준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 영화는 우리나라에서만 흥행에 참패했다. 우리나라 관객이 옥석을 가리는 잣대가 다른 나라보다 날카로워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태국과 홍콩에서의 엄청난 흥행에 비춰볼 때 우리나라에서의 흥행참패는 조금 당혹스런 결과다. 하지만 흥행에 대한 이러한 현격한 격차는 이 프로젝트가 가진 가장 큰 약점이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즉, ‘쓰리’는 각각의 나라에 어필할 수 있는 잔재미는 있지만 한 편의 옴니버스 영화로서의 완결성과 매력은 떨어진다는 얘기다. 이것이 굳이 3개국이 참여할 이유가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드는 이유이다.

‘쓰리’의 제작진은 아마도 아시아의 문화적 교류를 전면에 내세우며 영화를 기획했을 것이다. 하지만 실상 합작영화가 기대하는 것은 문화와 인적 교류보다 더 넓은 시장의 확보다. 그러나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두 개 나라가 참여했다고 해서 두 개의 시장이 생성되지는 않는다. 결국 아시아 문화 대 동맹이라는 그럴싸한 취지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은 완결성 높은 작품을 제작해 기왕이면 아시아를 넘어서 전 지구인들을 공략하겠다는 글로벌 마케팅에 대한 고려이다.

다행히 ‘쓰리’의 속편 ‘쓰리 몬스터’는 작품성과 상업성에 대한 고민이 많이 묻어난다. 이 영화가 과연 3개국에서 모두 흥행할지 두고 봐야 할 일이겠지만 벌써 베니스 영화제에 초청됐다는 소식이 들리니 글로벌 마케팅 하나는 성공한 셈이다.

정선영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4-09-08 13:38


정선영 자유기고가 startvideo@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