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시즌서 3연패 뒤 파죽의 8연승으로 '밤비노의 저주'서 벗어나

보스턴, 저주의 사슬을 끊은 '기적' 가을의 전설을 쓰다
포스트 시즌서 3연패 뒤 파죽의 8연승으로 '밤비노의 저주'서 벗어나

보스턴 레드삭스 선수들이 9회말 마지막 타자를 아웃시킨 뒤 마운드로 몰려나ㅘ 뒤엉키며 기뻐하고 있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 가을의 전설’이 마침내 완결됐다.

10월 28일(한국 시각) 세인트루이스 부시스타디움에서 벌어진 월드시리즈 4차전. 보스턴 마무리 키스 폴크는 3 - 0으로 앞선 9회말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마지막 타자 에드가 렌테리아와 마주 섰다. 렌테리아의 타구가 폴크 앞으로 굴러가 1루로 송구되는 순간, 부시스타디움은 흥분의 도가니로 변했다. 보스턴이 86년간 자신을 괴롭혀 온 ‘ 저주’를 끊고 ‘ 기적의 드라마’를 완성하는 순간이었다.

1918년 월드시리즈 우승을 비롯, 그 때까지 15번의 월드시리즈에서 5차례나 우승할 정도로 당대 최고의 명문 구단이었던 보스턴. 1920년 베이브 루스를 양키스에 팔아 치울 때만 해도 2004년까지 우승의 기쁨을 맛보지 못할 지 아무도 몰랐다. 그들은 이를 루스의 별명에 빗대 ‘ 밤비노의 저주’라 불렀다.

- 저주가 뭐길래!

보스턴은 그 동안 수많은 스타플레이어를 배출해 냈다. ‘ 마지막 4할 타자’ 테드 윌리엄스(40~50년), ‘ 타격 3관왕’ 칼 야스트르젬스키(60~70년), ‘ 포수왕’ 칼톤 피스크(70년대), ‘ 안타 제조기’ 웨이드 보그스(80년대), ‘ 최고의 유격수’ 노마 가르시아파라(90년대). 그들의 목표는 단 하나, 저주의 사슬을 끊는 것이었다. 하지만 미리 짜여진 각본처럼 결과는 항상 보스턴의 ‘ 극적인 패배‘였다.

보스턴은 모두 4차례 월드시리즈에 나가 공교롭게도 모두 7차전에서 무릎을 꿇었다. 46년과 67년 연거푸 세인트루이스에 발목이 잡혔는데, 특히 67년엔 상대 에이스 밥 깁슨에게만 3패를 당하는 수모를 당했다. 75년 신시내티 레즈와의 7차전에서는 3-0으로 리드하다 7회 동점을 허용한 뒤 9회 빗맞은 안타를 맞고 졌고, ‘ 로켓맨’ 로저 클레멘스가 활약했던 86년에는 뉴욕 메츠와의 6차전 연장 10회 1루수 빌 버크너의 어이없는 알까기로 역전패했다. 클레멘스는 99년 양키스로 이적해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 보스턴 팬들의 마음을 더욱 쓰라리게 했다.

이후 보스턴은 99년과 지난해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에 올랐으나 ‘ 저주의 가해자’ 양키스에 모두 패해 월드시리즈 문턱에서 물러났다.

-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보스턴 펜웨이파크 인근 술집에서 TV중계를 지켜보던 레드삭스 팬들이 우승이 확정되자 환호하고 있다.

9월 1일. 보스턴 시민들은 “ 올해야말로 저주가 풀린다”고 환호했다. 매니 라미레스의 타구에 맞아 한 소년의 앞니 2개가 부러졌는데 그 소년이 살고있는 곳이 바로 루스가 살았던 집이었던 것. 양키스는 그날 클리블랜드에 0-22로 참패했고, 보스턴은 파죽의 10연승을 달렸다.

‘역저주’의 조짐이었을까. 신기하게도 소년의 앞니를 부러뜨린 라미레스는 월드시리즈에서 0.412(17타수 7안타) 1홈런 4타점으로 활약한 공로를 인정받아 최우수선수(MVP)의 영예를 안았다. 라미레스는 “ 나는 ‘ 저주’를 믿지 않는다. 운명은 자신이 만드는 것이고 우리가 바로 그렇게 했다”며 감격했다. 하지만 이런 간단한 말을 할 수 있기까지 무려 86년간의 세월이 흘렀다.

올 포스트시즌 출발은 좋았다. 첫 관문인 디비전시리즈에서 서부지구 우승팀 애너하임 에인절스를 3연승으로 간단히 제압했다. 월드시리즈 길목에서 만난 것은 숙명의 라이벌 양키스. 보스턴은 올시즌 맞대결에서 11승8패의 우위를 보인 것은 물론, 팀타율(0.269-0.244)과 팀방어율(4.61-5.31) 모두 양키스를 압도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예상과 달랐다. 보스턴은 1, 2차전에서 메이저리그 최강의 원투 펀치 커트 실링 - 페드로 마르티네스를 앞세우고도 고전 끝에 패했고, 3차전은 8-19로 참패를 당했다. 3연패에 빠진 보스턴을 두?야구팬은 물론 전문가들까지도 “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보스턴의 우승은 없다”며 혀를 내둘렀다.

그러나 그 ‘ 기적’이 일어났다. 4차전 연장 12회 데이비드 오티스의 끝내기 홈런으로 기사회생한 보스턴은 5차전 포스트시즌 최장 혈투인 5시간 49분간의 사투 끝에 오티스의 이틀 연속 끝내기 결승타로 지옥에서 탈출했다. 기세가 오른 보스턴은 6차전에 실링의 부상투혼 속에 포스트시즌 타율 1할대의 물방망이 마크 벨혼이 행운의 3점홈런을 때려 대역전극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날 핏빛으로 물든 실링의 양말은 진정한 레드삭스의 진정한 상징이 됐다.

결국 3연패 뒤 기적적인 4연승의 대역전극으로 월드시리즈에 진출한 보스턴은 내셔널리그 챔피언 세인트루이스마저 4연승으로 제압, 포스트시즌 8연승으로 쾌속질주하며 오랜 숙원을 풀었다. 공교롭게도 월드시리즈 초창기 우승팀 보스턴은 100번째 월드시리즈 챔피언이 되면서 저주가 깨졌다.

이제 ‘밤비노의 저주’는 영원히 전설로만 남게 됐다.

▲ '염소의 저주'에서 '맨발의 저주'까지

메이저리그에는 아직도 풀지 못한 ‘저주’에 애태우는 팀들이 있다.

보스턴의 우승 소식에 마치 자기 일인양 흥분하고 있는 팀이 있으니 바로 시카고 컵스다. ‘ 염소의 저주’에 시달려 온 컵스는 1908년 이후 무려 96년동안 단 한번도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다.

45년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와의 월드시리즈 4차전에 애완 염소를 데리고 컵스의 홈구장 리글리필드에 나타난 한 농부가 입장을 거절당하자 “ 이 구장에서 다시는 월드시리즈가 열리지 않으리라”는 저주를 퍼부었다. 그 해 3승4패로 고배를 마신 컵스는 이후 우승은 커녕 월드시리즈 진출조차 못했다.

지난해 플로리다 말린스와의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 6차전에서 관중이 파울 타구를 잡는 바람에 역전패한 사연은 이미 널리 회자되고 있는 이야기.

컵스와 함께 시카고를 연고지로 하는 화이트삭스엔 ‘ 맨발의 저주’가 있다. 1919년 신시내티와의 월드시리즈에서 패한 시카고삭스는 승부조작 도박에 가담했다는 일명 ‘ 블랙 삭스 스캔들’에 빠졌다. 이듬해 가담자 8명은 ‘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를 선언됐지만 메이저리그 커미셔너의 직권 아래 영구 제명됐다.

문제는 그 중에 ‘ 맨발의 조’라는 별명을 가진 조 잭슨이라는 선수가 있었는데, 문맹인 그가 도박사와 공모한 선수들이 연판장을 내밀자 영문도 모른 채 그냥 ‘ X’자 서명을 했다는 것. 억울하게 내쫓긴 잭슨이 저주를 건 탓인지 화이트삭스는 이후 포스트시즌에서 단 한번도 승리자가 되지 못했다.

오미현 기자


입력시간 : 2004-11-03 16:30


오미현 기자 mhoh@sportshank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