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자본주의적 인간, 백수

[영화 되돌리기] 위대한 유산 & 라이터
탈자본주의적 인간, 백수

행복한 결혼식 장면.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신랑에게 말한다. “날 행복하게 해 줘.” 이어지는 신랑의 단호한 한 마디, “싫어.” 일본의 만화가 하스코 다지로의 ‘행복한 백수’의 첫 장면에 나오는 대사다. 이 만화의 주인공 하지메는 학교를 졸업하고 한 번도 돈을 벌어본 적이 없는 한량으로, 근대 자본주의가 그토록 증오하는 우리 시대 무능력자의 표본이요, 노동하는 주체가 절대적으로 적대시하는 게으른 루저(loser)다. 만화 제목처럼 진정한 이 시대의 백수다.

그런데 흔히 실업자를 달리 칭하는 말로 쓰이는 백수는 사실 실업자와는 조금 다르다. 단순히 일자리가 없다고, 노동을 하지 않는다고 백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실업자는 자본주의 사회로의 진입을 끊임없이 시도하지만 백수는 하릴없이 노는 동안 이미 탈자본주의화가 진행된 자다. 그는 하지 않음(無爲)을 미덕으로 삼고 청빈함을 삶의 지침으로 여기고 취하기보다 모름지기 모든 것을 버리는 탈자본주의적 인간형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이 미덕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백수는 눈엣가시일 수 밖에 없다.

이렇듯 사회에 대한 책임 불이행으로 때로는 비난의 대상이 되는 백수는 영화 속에서 종종 가볍게 희화화되곤 한다 (물론 백수들에 대한 사회의 책임불이행으로 연민의 대상이 되는 일이 다반사지만). 대표적인 캐릭터가 영화 ‘위대한 유산’의 창식(임창정)과 ‘라이터를 켜라’의 봉구(김승우)다.

‘위대한 유산’의 창식은 자발적 백수의 전형이다. 일단 고학력자로 언제든지 주류사회에 편입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도 그는 백수적 삶을 지향한다. 왜? 돈을 안 벌어도 소소한 일상의 재미를 추구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 대단한 야망은 버리고 부의 축적에 무관심하다면 이 냉혈안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그런대로 주변인에 빌붙어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들이 있다. 비디오 가게나 만화방 주인과 안면 트기, 무료 영화 시사회, 무료 시식, 무료 관람, 무료 참석 등 무료에 관한한 줄줄이 꿰기 등. ‘위대한 유산’의 두 주인공이 백수 남자와 비디오가게 여자인 것도 따지고 보면 이러한 백수 현실에 충실한 설정이다.

‘라이터를 켜라’의 봉구는 비자발적 백수의 전형이다. 그는 거의 사회적 행위 무능력자에 가까운 ‘꼴통’이다. 영화는 사회와 친구가 그를 왕따시킬 수 밖에 없는 그만의 꼴통같은 모습을 부각시킨다. 회비도 안낸 동창회 모임에서 죽어라 안주빨만 세우고, 어중이떠중이 다 통과하는 유격 코스에서 혼자 덩그러니 낙오자가 되는 그는 태생적으로 백수일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 두 영화는 백수를 전적으로 개인의 문제로 환원시킨다는 문제가 있다. 영화 속 이야기만 따라가면 ‘위대한 유산’의 창식은 스스로 일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지극히 게으른 놈이고 ‘라이터를 켜라’의 봉구는 일할 능력이 선천적으로 없는 멍청한 놈인 샘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능력한 인간으로 낙인 찍힌 창식과 봉구가 주류 사회에 편입하지 못한 것을 개인의 무능력함으로만 몰아 부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가 제시하는 능력과 무능력의 경계가 우리의 인식만큼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더 이상 능력있는 자가 성공하는 곳이 아니다. 토익 만점을 받아도 공무원 시험 만점을 받아도 취직이 안 되는 세상이다. 능력에 대한 기준이 모호해서 더욱 불안한 시대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다.

요즘에는 전처럼 백수를 희화화 하려는 영화들이 없다. 이들을 가볍게 다룰 수 없는 데는 백수가 더 이상 우스꽝스러운 개인이 아니라, 우울한 시대의 자화상이기 때문이 아닐까.

정선영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4-12-22 15:32


정선영 자유기고가 startvideo@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