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히트 몰고 다니던 가요계의 영원한 마이너리티

[추억의 LP 여행] 정원(下)
빅히트 몰고 다니던 가요계의 영원한 마이너리티

그날 시민회관 객석에는 출연 교섭을 위해 상경한 지방극장의 쇼단장들이 즐비했다. 정원의 정열적인 무대를 본 지방극장 쇼단장들이 홀딱 반했던 것. 그 때부터 시민회관 무대의 단골 가수가 되면서 그는 극장 쇼의 슈퍼 스타로 떠오르는 계기를 마련했다. 당시 극장 쇼 무대에서 12번씩 앵콜을 받은 가수는 정원과 미 8군 여가수 최진이가 있었다.

재건 열기가 높았던 당시, 관객들은 느린 곡 보다는 빠른 노래를 좋아 했다. 또 관객들은 극장쇼의 스타로 떠오른 쟈니리와 정원 가운데 “누가 노래를 더 잘 하냐”며 경쟁을 부추겼다. 첫 대결은 서부역 앞 봉래극장. 팝 가수들만 출연하는 쇼에 라이벌 의식이 발동한 정원과 쟈니 리는 한 무대에 서지는 않았지만 대중의 큰 관심을 모았다. 당시 청바지에 청재킷을 즐겨 입었던 정원, 트위스트 김, 쟈니 리는 속칭 ‘양아치 클럽’으로 불리며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다.

소문을 들은 박성배 킹레코드 사장이 음반 취입을 제안해 왔다. 두 달이 지나도록 무소식이던 그가 연락도 없이 동대문극장 무대로 찾아 와 녹음을 요청했다. 계약된 공연을 펑크낼 수 가 없어 다음날 마장동 스튜디오로 갔다. 작곡가 오민우, 작사가 전우, 미 8군 밴드의 샤우더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취입 곡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정원에게 킹박은 “평소에 부르던 곡을 부르면 된다”고 했다. 만두국으로 점심을 먹을 때 전우씨가 “하운드 독을 어떻게 부르냐”고 물었다. 노래를 불러주자 전우씨가 즉석에서 가사를 쓰고 제목을 ‘사냥개’로 정했다. 작곡가 오민우의 ‘허무한 마음’도 피아노 반주를 듣고 멜로디를 외워 곧 바로 동시 녹음에 들어갔다. 황당했던 데뷔 음반의 녹음은 단 이틀만에 종료되었다.

녹음 후 지방 공연을 돌던 중 재킷 사진 때문에 찾아 온 킹박과 대전에서 급히 상경해 국도극장앞 사진관에서 촬영을 했다. 일주일 후 부산공연 때 사방에서 울려 나오는 자신의 노래를 들었다. 1966년 10월 데뷔 음반 ‘정원과 샤우더스’가 발매 되었던 것. 또한 ‘허무한 마음’이 빅히트가 터지자 킹박은 흘러간 노래 모음집 등 연이어 정원의 기획성 음반을 찍어냈다.

당시 킹박은 보따리 장수 수준의 제작자. 음반은 인기리에 팔려 나갔지만 메이저 음반사가 아닌 킹에서 홍보를 하지 않았던 탓에 방송엔 출연할 기회도 잡지 못 하고 심지다방 등 다운타운가를 돌며 홍보를 해야 했다. 또한 ‘미워하지 않으리’ ‘내 청춘’등이 히트 퍼레이드를 벌였지만 돈 한 푼을 주지 않아, 그랜드레코드로 전속을 옮겨 버렸다. 다급해진 킹박이 다시 음반을 찍자며 60만원의 거금을 뒤늦게 건냈지만 물 건너간 상황이었다.

67년 영화 ‘금송아지’의 주제가와 라디오 연속극 주제가 등을 많이 불렀다. 또한 여수수고 동창 박노길의 형인 박노식과 친해 단역배우는 물론 심호섭 감독의 음악 영화 ‘청춘은 즐거워’에 이태신, 트위스트김, 남석훈, 김세레나 등과 함께 출연하기도 했다. 단 한 곡도 방송 챠트에 오르지 못했지만 정원은 청와대 행사에 김진규 등과 단골로 초대 받았던 극장 쇼 무대의 슈퍼 스타였다.

하지만 레이찰스처럼 흐느끼는 창법으로 노래한 빅 히트곡 ‘내 청춘’이 창법 저속으로 금지가 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67~68년은 그의 전성 시대. 지방 신문사, 방송국의 10대가수상을 무려 50여개나 수상했다. 그 여파로 69년 초 빅 히트곡 ‘허무한 마음’이 정창화 감독에 의해 영화로 제작되었다. 영화는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2003년 부산영화제에서 정창화감독 회고전 때 재상영되어 “저주받은 걸작”이라는 호평을 이끌어 냈다.

아세아를 거쳐 71년 메이저인 오아시스로 옮겨 ‘울지 않으리’ 등을 발표하며 활동을 이어 갔다. 특히 성인 여성팬이 많았던 그는 연상의 여인과의 스캔들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직설적인 성격이었지만 패싸움이 나면 앞장 섰던 의리있는 성격으로 선배들의 귀염을 받았다. 하지만 주류 방송 가수가 아닌 탓에, 후배 가수 남진이 자신의 춤을 흉내를 내도 오히려 자신이 남진을 흉내낸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그러다 TBC 가요 관련 수상자 선정 때 싸움이 벌어졌다. TBC측에서 사전에 수상자를 정해 놓았던 게 원인이었다. 이에 TBC는 정원의 음반을 모두 훼손시켜 버렸다.

이에 가요계에 환멸을 느낀 그는 그 동안 수상한 트로피와 음반까지 모두 부셔버렸다. 또 자신이 가수로 기억하는 것 자체가 싫어져 활동을 중단하고 80년대 초 부동산업에 뛰어들었다. 그를 대접해 주었던 가수는 지금도 황제급의 가수로 군림하고 있는 후배 나훈아. 그의 초청으로 일본 오사카에 건너가 함께 공연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 후 7년 정도 일본에서 술집을 경영하는 사업가로 변신하기도 했다. 또한 91년엔 나훈아의 도움으로 신보 ‘인생은 본전’을 발표해 화제가 되었다.

한 때 남진 나훈아를 능가하고 영화배우 신성일에 버금가는 세금을 냈던 인기가수 정원. 그는 “젊은 시절 충분히 연습을 못하고 음반을 발표할 수 없었던 환경 때문에 지금도 내 노래를 음반으로 듣는 게 싫다”고 한다. 또한 “적어도 방송에서는 가수들 족보를 정확하게 알고 순서만큼은 지켜주면 좋겠다”고 불편한 속내를 털어 놓는다.

식당을 운영하며 가끔 시군에서 개최하는 무대에 오르는 그는 “장남으로 가장의 책임을 가지고 힘겹게 살아와 내 노래엔 한이 맺혀 가슴에 촉촉이 맺히는 것이 있는 것 같다. 이제는 인기보다는 자존심을 지키며 시골에서 직접 상추 등을 재배하면서 조그만 카페를 만들어 부르고 싶은 노래를 하며 조용하게 살고 싶은 소망 뿐”이라고 덤덤하게 말한다. 그는 2004년 초 조용하게 신보를 발표했다.

최규성 가요 칼럼니스트


입력시간 : 2004-12-22 15:34


최규성 가요 칼럼니스트 kschoi@hk.co.kr